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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울 수 없는 돌

by 임진채

요즘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가 삼십 대에서 오십 대 초반에 이르는 나이 때 가장 인기 좋았던 술안주는 단연 군대 이야기였다.

나를 아는 여러 친구는 군대 이야기하면 이의 없이 나를 제일로 꼽는다. 그 친구들도 빤히 아는 사실인데 나는 군대에 간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담마진’이나 ‘부동시’로 군 면제된 것은 아니다. 다른 결격 사유가 있어서 군대에서 나를 피한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방돌이’라 불리는 방위소집으로 근무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내 병역 기록에는 ‘군 미필’이라고만 나와 있다. 내가 받은 마지막 처분은 ‘장기대기로 인해서 현역 입영을 면한다’였다.

현역 입영대상자로 무려 5년을 대기했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는 기밀(?) 사안이다.


내가 군대 이야기의 대가(?)가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군대에 갈 시기에 나는 부산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아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군대에 간 게 아니라 나만 붙박이로 부산에 남기고 친구들은 하나둘 군대에 가기 시작했다.

훈련병이야 당연히 외출 외박이 안 되지만 자대 배치를 받으면 여러 명분으로 휴가를 나온다. 나는 순서대로 나오는 녀석들 수발에 동원되었다.


나와 친구 사이인 대한민국의 군바리를 모두 조사해서 한꺼번에 휴가를 보내면 나는 얼마나 편했겠냐만 군대 수준이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부정기적으로 한 놈씩 휴가를 보냈다.


한 놈이 나오면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게 보통 일주일 정도다. 그놈이 불쌍해서 다른 친구 모아서 술자리 만들면, 그놈이 고상한 문학 이야기를 했겠나? 군대 이야기로 시작해서 군대 이야기로 끝낸다.

그놈을 귀대 시키고 나면 다른 놈이 또 나타난다. 그렇게 삼 년을 보내면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르는 것 빼고 다 알게 된다.

친구가 말년 휴가를 나올 때쯤에는 술 취해 횡설수설하면, “야! 이 자식아. 저기에 코 박고 자. 그 나머지 이야기는 내가 해줄게” 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나 자신도 모르게 도사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군대 이야기밖에 모르는 데 나는 수십 명의 이야기를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귀동냥이 풍부했었다.



우리가 상식이나 지식을 받아들이는 창구가 되는 곳은 눈과 귀다. 실물을 본다거나 설명하는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얻는다. 귀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것, 그러니까 소리를 듣는 것도 우리의 앎을 인도한다.

이런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면 눈을 감거나 귀를 막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하면 된다. 다른 방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효율이 떨어진다.


육 년 전부터 눈이 가렵고 아팠다. 여러 안과를 다녔다. 시력이 망가진 것은 아닌데 치명적인 것은 눈을 뜨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가는 곳마다 알레르기라고 하는 곳도 있고 아예 말하는 것을 꺼리는 곳도 있었다. 인공눈물과 다른 약으로 버틴다. 혈당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항상 같은 상태가 아니고 무슨 이변이 있으면 조금은 나아지기도 한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사 년 전에 건강검진을 받는데, 가만 앉아 있는데 곁에서 아내가 툭 친다. 돌아봤더니 의사가 “안 들리세요?” 한다. 소리가 나는 기계를 귀 양쪽에 대면 소리가 나는 쪽 손을 들어야 하는데 나는 그냥 얌전하게 앉아만 있었다.


집에서 식구들과 밥 먹으면서도 나는 항상 말이 없다. 먹으면서는 조용조용하게 말하는 게 보통인데 그걸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할 말이 있으면 아내가 큰소리로 통역을 한다. 보통 때는 입 움직임으로 어림짐작하는데 그 입이 음식을 씹는다는 용도로 움직이니 짐작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코로나 이후에는 어려움이 많다. 입을 막고 하는 말은 짐작하기 어렵다.

보청기를 사라는 권고도 있는데 왠지 가망 없는 폐물이 된 것 같아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지식과 경험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앎이 막힌 자에게 전에 쌓인 앎 외에는 더 이상 보급이 안 되는 것은, 결코 치울 수 없는 돌과 같은 것이다. 그 아득함을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두 가지를 세트로 겪고 있다.


그런 나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쯤이면 어물거릴 것 없이 사직원을 제출해야 할까?

마감하는 것에 미련이 별로 없는 것 같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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