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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세요?

by 임진채

사진관에서 봉투를 열어보는 순간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태극기 흔들며 고함지르는 모습의 뉴스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런 해괴(駭怪)하게 생긴 영감이 힘없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사진이 이래요?” 하려다가 황급하게 입을 막았다.

나로 말하면 이십 년이 넘게 카메라를 메고 다녔고 자신을 사진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런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요즘은 핸드폰이 좋아져서 남더러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이 없지만, 예전에는 흔히 그랬었고 그럴 때마다 찍힌 사람에게서 자주 듣던 소리다. 변하지 않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었다. 아니, 혼자 중얼거렸었다.

“원판 불변의 원칙인데·····.”

그걸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실물이 그런데 나더러 어쩌란 말인지요·····.” 정도일 것이다.

사진 속의 영감은 머리가 하얀 것 빼고는 다 동의하기 어려웠다. 무주구천동에서 갓 올라온 것 같은 영감은 눈이 휘둥그레하니 놀라고, 물에 젖은 빨래처럼 얼굴 전체에 잔주름이 짜글거렸다.

“으~~음. 얼마지요?”

“이만오천 원입니다?”

“예?”

이 말도 번역하자면 그렇게 비싸냐는 소리다. 그 내심에는 사진을 사진같이 찍지도 못하고 하는 핀잔도 들어 있다.

“..............”



운전 면허증 갱신에 붙일 사진을 찍은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차를 없애버린 사람이다. 몇 년을 지하 주차장에 쉬고 있던 차가 겨울이면 배터리가 방전되어 계속 보험회사에 연락하는 것이 귀찮아서다. 그건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고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하고 선의의 제삼자를 위해서 내가 운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다.

나는 부담이 없어서 좋은데 아내는 아쉬운 게 많은 모양이었다.

나도 막상 적성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고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전에 촬영 여행을 다닐 때부터 생각한 것인데, 중고 캠핑카를 사서 아내하고 같이 작정 없이 여러 곳을 다니고 싶었던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혹시 모른다 싶어서 면허는 살려두고 싶었다.

힘없이 들어서는 내게서 사진을 받아든 아내는 잠시, 그래 아주 짧은 순간 사진을 보더니, “잘 나왔네, 뭐” 한다.

참았던 울화가 치밀고 올라온다. 반백 년을 같이 산 뺑덕어멈 같은 이 노파가 같이 화를 내주지는 않고 잘 나왔다니·····.

그래서 누구를 향하는 건지 자신도 알 수 없던 분노가 다시 치민 것이다. 눈꼬리가 슬슬 올라가는데 말없이 밥상을 손가락질한다. 항상 하던 짓이다. 필요하더라도 말은 줄이자는 그런 몸짓인 게다.

숟가락을 들다가 그냥 두고 일어섰다.

“이 빌어먹을 놈의 된장국은 쉬는 날도 없나·····.”

이 상황도 쉽게 설명하면, 고함을 지르고 싶었는데 또 그 빌어먹을 목소리가 협조를 안 한다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면, 혼자 중얼거리고 일어났다는 정도이다.

집을 나서려는데 책상 위에 있던 늙고 마른 영감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너,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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