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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게 힘이라고? 누가 그래요?

by 임진채

막내아들 광주에게 부탁해서 온습도계를 하나 구했다.

사무실 실내 온도를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무실은 창문과 출입문을 최대한 열어놓았고 선풍기를 2대 틀고 있는데 29, 8도다. 낮은 온도가 아니다.

지금 시간은 8시 25분. 이른 아침이라는 것이 사실이나, 사무실이 동향이니 이 시간에 햇살이 직통으로 들어오는 시간이다. 여태까지는 이 상태에서는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 아침이기 때문이다. 덥다는 느낌이 들어도 아침에는 그냥 참는 게 나를 포함한 모든 늙은이의 상식이다.

아, 드디어 30도에 들어섰다. 그래도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고 결정 못 하겠다.

이 여름 들어 계속해서 머리가 무겁고 괜히 짜증이 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도 결정하지 못하고 온도계만 들여다보고 있다.

얼마까지 올라가나 확인하는 거여?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야? 어지럽지는 않아?

온도계는 2022년 2월 16일 교정 필증이 붙어 있는 카스(CAS) 제품이다.

아. 드디어 31도 통과! (무슨 마라톤 중계방송하는 거여?)

지금 시간은 9시 30분. 내 관례로 하면 정확하게 한 시간은 더 지나야 에어컨을 켠다. 그런데 실내 온도가 31도라는 것을 알고 나니 어째 숨 쉬는 것이 편치 않은 것 같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내 중학교에 2학년 때 교실 칠판 위 한쪽에는 태극기, 그 옆에는 ‘급훈: 아는 것이 힘’이라는 액자가 걸려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아침의 경험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저 빌어먹을 온도계가, 실내 온도가 31도인데 고개 좌우로 흔들다가 병든 닭처럼 고개 푹 숙이고 앉아 있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내 생각을 밝히자. 온도계가 없었다면, 그러니까 내가 앎이 없었던 어제까지는 별 고통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아는 게 힘이 아니다. 아는 게 병인 게다.

나 혼자 중얼거렸다.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멍청한 데는 약도 없다고 하셨는데·····.”


주섬주섬 일어나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다.

현재 실내 온도 31.4도. 설정 희망 온도 28도.

에게? 겨우 28도야?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오뉴월 볕은 1도가 천지(天地) 차(差)다”라고 하셨다.

아 참, 공자님이란 말죽거리에 살고 계신다는 그분을 말한다.

나도 아직은 뵙지 못했고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전에는 그 동네의 통장이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이 경우도 다른 분으로 단정해버리면 곤란하다. 우리는 그런 성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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