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낭만이 사라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어렸을 때는 대단한 날이었는데 언젠가부터는 평범한 휴일 중의 하나로 변하고 말았다.
농경사회가 붕괴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원래 추석은, 결실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있는데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줄어지니 감사할 사람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어렸을 때는 명절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게 새 옷이었는데 맨날 새 옷을 입는 아이들이 그날을 기다릴 이유도 없어졌다.
이제, 늙은이가 되어버린 내게는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장손이 아니기에 조상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목동에 계시는 형님댁에 명절 새벽에 식구 데리고 가면 되는 아주 홀가분한 처지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조카며느리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명목으로 형님댁에 가는 것을 중지하기로 했다.
명절에 목동에 모이는 건 나뿐이 아니라 사촌을 포함하기에 그 숫자가 꽤 많았다. 모여서 점심 한 끼 먹는 것인데 숫자가 많으니 준비하는 큰 집 며느리들은 정말 고생이 많았었다.
이제는 내 식구들만 모인다. 그래도 나 포함 열네 명이다.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집에서 점심 먹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아이들은 제 외가에 간다. 행사랄 것도 없이 간단해서 좋은데, 그 대신 아이들이 물러간 후에 둘만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 왠지 허전한 마음이 남는다.
그 대신 음식은 좀 넉넉하게 장만한다. 한 며느리 친정에 음식을 장만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그 몫까지 같이 준비하는 셈이다.
어제 다른 모든 형제에게 전화했다. 늙은 건 당연하고 나처럼 몸이 성치 않은 형제가 적지 않다. 나이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번 추석에도 고향을 찾아가는 인파는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행렬에 끼어본 적이 없다. 일가가 모두 객지로 나와버린 탓도 있지만, 고향이란 내게는 사무치게 그립거나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큰 명절이면 항상 공허감 같은 것을 느꼈었다. 이제는 그런 애잔함마저 사라진 것 같다.
이 나이의 내게 명절에 대한 감성이 남아 있기는 하는 것인가?
명절을 며칠 앞둔 지금,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