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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火爐)라는 물건을 아세요?

by 임진채

화로(火爐)라는 물건을 아는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내 기억에 어른거리는 물건이니 아마 지금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 화로라는 물건은 어느 집에나 있던 물건이다. 형편에 따라 옹기에 불을 담는 집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무쇠로 된 화로를 갖추고 있었다.

저녁밥의 뜸을 들이고 나면 어머니는 항상 부삽으로 아궁이에 이글거리는 불을 화로에 담고 꾹꾹 누른 다음 안방으로 들여보낸다. 저녁을 먹고 상을 물리면, 밥상이 놓였던 자리에 화로를 놓고 그 둘레에 식구들이 빙 둘러앉는다. 모두 다 화로 위에 가지런히 두 손을 내민다. 긴긴 겨울밤이 시작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건넛방으로 가시면 나는 항상 할머니를 졸랐다.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항상 “옛날 옛적에·····.”로 시작한다. 그 이야기들을 지금은 다 잊었지만, 그 울림은 내 가슴의 어딘가에 줄 지어선 옥수수알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내 모든 감성은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때의 아이들 거의 모두가 다 그랬었다.


자다가 어쩐지 썰렁하다는 느낌이 들어 일어나보니 여정이가 나하고 같이 덮는 이불을 밑에 깔고 자고 있다. 이 녀석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깔고 누운 이불을 쉬 끌어낼 수 없을 정도로 커버렸다.


여정이는 제 동생이 태어난 후로 엄마 곁을 떠나 우리 방으로 왔다. 며칠을 셋이서 한 침대에서 자고는 하는 수 없이 여정이와 내가 침대 밑에 자리를 깔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내가 가운데 자면 간단한데 여정이는 한결같이 자신이 가운데에 자야 한다고 우겼다. 여정이가 가운데 자면 저녁 내내 빙빙 돌면서 할머니와 나를 발로 찬다. 나야 견딜만한데 할머니의 처지는 그게 아니다. 양쪽 무릎이 성치 않아서 자다가 슬쩍 스치기만 해도 기겁할 정도로 아파한다. 그러면 할머니가 내려가면 간단한데, 그건 할머니가 무릎 때문에 방바닥에 누우면 일어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여정이와 내가 내려가기로 했다. 다행히 여정이가 나를 따르는 편이어서 지금까지 같이 자고 있다.


지금 우리는 내가 어렸을 때처럼 3대가 한집에 산다. 그러나 일상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밥 먹는 짧은 시간이 끝나면 식구들은 모래처럼 흩어진다. 나는 컴퓨터 앞으로 가고 여정이 아빠는 골프 채널을 보고 여정이는 태블릿을 본다.


여정이는 나한테 물을 것이 없다. 할머니도 여정이에게 들려줄 옛이야기 같은 것은 없다. 당연히 여정이는 옛날 옛적에는 관심이 없다. 여정이가 아는 티브이 채널 돌리는 법을 나는 모른다. 그러니까 여정이가 내게 물을 일도 없어졌지만 존경할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인간이란 지식을 존경하는 오랜 습성이 있다.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지혜는 대를 물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검색’이 맡아버렸다.


여정이 밑에 깔린 이불을 힘겹게 빼내고서 나는 한참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떠오르는 것이 겨울밤의 화로였다. 숯불화로가 아니어서 은근할 수밖에 없는 그 기억은 다른 여러 가지와 함께 우리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

그때는 화로를 위로 밀어놓고 남은 식구가 한 이불 밑에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새벽녘에 오줌 싸러 일어나면 싸늘하게 식은 화로를 보곤 했다. 그때 느끼던 아쉬움 섞인 애잔함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상실감은 지울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세대 간에 단절된 일상 문화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내 이런 마음을 어떻게 여정이에게 전할 수 있을까를 골똘하게 생각한다.

화로(火爐)에 얽힌 정서(情緖)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교감할 수 있는 통로가 이미 오래전에 막혔을 수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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