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분 중에 사십을 갓 지난 분이 있다. 참으로 열심히 사시는 분이다.
남편은 운동선수 출신이다. 국가대표였지만 투포환이라는 비인기 종목이기에 전성기에 시청에 잠깐 소속되었을 뿐 그 후에는 바로 잊히고 말았단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대개가 그러듯이 정직하고 가식이 없고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해서 지금은 택시 운전을 한단다.
운동할 때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도 좀 있었으나 친구나 이웃의 보증을 거절하지 못해서 모든 것을 남의 채무를 대신해서 갚느라 다 탕진하고 지금은 겨우 월 셋집에서 딸 둘과 넷이서 생활한다고 한다. 나하고 친분이 있는 남편도 곁에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열심히 일하신다.
두 분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데도 살림이 펴지지 않는 것은 큰딸의 공부 뒷바라지 때문이라 한다. 지금 고3인데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음악 공부를 하는데 단순히 성악가나 가수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 대학에서 강의하고 싶어 한단다. 당장 데뷔가 목적이 아니고 정상적인 음악 공부를 해야 하니 입시 준비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아이가 대학만 졸업하게 뒷받침해주면 고맙겠다고 진지하게 부탁을 하는데 부모로서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겠냐고 한숨을 쉬면서도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면 그 애는 틀림없이 본인의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모가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은 천륜이다. 자신들의 현재나 노후 같은 것은 전혀 생각 없이 자식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일구월심으로 전력을 다하는 것은 어쩜 본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네 사람살이의 기본 가치관은,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고 자식들은 장성한 후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근간으로 삼아 왔다. 지금도 자식에게 쏟는 지극한 본능은 조금도 변질이 없다.
단지 장성한 후 부모를 봉양하는 효도는 애석하게도 남아 이어지지를 못하고 있다. 이제는, 부모들은 무조건 주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 하게 되었다.
예전에 자식의 교육에 진력한 것이 자식이 잘되면 그 덕에 말년을 호강 받을 수 있다는 보상심리도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그런 불문율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게 누구의 탓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늙어버린 부모나 앞으로 금방 늙을 것이지만 현재는 젊은 부모들의 앞날이 걱정일 뿐이다.
지금 노년기에 접어든 그 세대들은 자신의 형편에 따라 부모들을 충실하게 봉양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봉양 받아야 할 때 이르러서는 자식들에게 의탁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 된 것이다.
길가의 은행나무 잎이 누렇게 물들면 가을이고 그 잎들이 땅바닥에 뒹굴면 겨울이다. 겨울이 삭막하니 건너뛰고 바로 봄이 왔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가 자신의 성정에 맞지 않는다고 삿대질하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피조물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한숨을 멈추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게 된다.
2010. 9. 14에 쓴 글을 많이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