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참상을 오락거리로 치부한 나를 반성하며
오늘날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매일 뉴스 기사는 정치, 경제를 넘어 기후까지 불안과 뉴노멀이라는 키워드로 뒤덮여있죠.
이 와중에도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전쟁이 아닐까 싶습니다.
21세기에 전쟁이라니 싶지만 지금 현재도 중동 전쟁, 러-우 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이 실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난민이 발생하는 전쟁 기사를 보더라도 이제는 익숙해진 저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끼곤 했는데요.
특히 러-우 전쟁 중 우크라이나의 스파이더웹 작전 중 드론이 날아가서 전투기를 폭격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익숙함을 넘어 멋지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오늘은 전쟁을 반대한다는 생각을 가진 제가 어떻게 전쟁이라는 것에 익숙해지고 오락거리 정도로 뉴스를 보게 됐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전쟁이라는 것에 익숙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미국의 문학가 수전 손택(Susan Sontag,1933~2004)이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에서 현대의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타인이 겪었던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죠.
손택은 현대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연민에 그치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의 원인을 꼽습니다.
1. 오락거리가 돼버린 전쟁
손택에 따르면 인간의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으로서, 기독교 예술이 지옥의 묘사를 통해서 수세기 동안 이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시킨 것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에서 콜로세움에서 격투를 즐긴 것이 이를 증명하는 사례로 들 수 있겠네요.
2. 고통의 타자화
전쟁, 내전 등으로 인해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대부분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입니다.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그런 고통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 즉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진국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그 고통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기 때문에 나와는 무관하며 고통을 받는 그들에게는 연민을 느끼는 데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즉, 이미지와 영상으로 보여지는 전쟁에서 참혹함은 희미해지고 스펙터클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남게 한다고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전쟁과 같은 참혹한 뉴스를 바라봐야 할까요? 손택은 그 방법에 대해서도 제시해줍니다.
이미지로 보이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과 연결돼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라고 말이죠.
앞서 얘기했든 21세기에 전쟁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즐기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고 있는 폭격, 전쟁이 어떤 참상을 빚어내고 있는지 숙고해야 인간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반전의 메시지에 동참하는 등 행동할 수 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에 근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택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글을 전해드리며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