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gion

Simon's View Ep.9

by Simon


민감한 주제일지 모르지만 최근에 깨달은 것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어렸을 때부터 운이 좋게도 다양한 종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슬람, 기독교, 불교, 힌두교, 가톨릭 등 다양한 종교들을 경험하기도 하였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부모님의 영향으로 모태신앙으로서 다녔지만, 억지로 다니는 느낌이었기에, 자유가 생긴 중2 이후로부터는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 나이 29살이 되자 싱숭생숭해진 마음으로, 가장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중에서 나이를 들어가면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해답을 최근 종교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종교의 긍정적인 요소를 보았다.


첫 번째로는 저번에 썼던 글에서 와 마찬가지로,


https://blog.naver.com/heim_travel/223633845290


The good Lord calls one of us home and

One won't have the other by their side

But Heaven knows that that won't last too long

Maybe some things last forever after all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The good Lord calls one of us home이라는 말이 매력적이었다. 죽음이라는 무섭고, 답이 없는 것을 집으로 부른다는 표현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두 번째로는 내가 좋아하는 이찬혁의 무대를 보고서 느꼈다.

죽음이라는 상황을 두 개의 노래에 엮어서 긍정적인 표현을 했다는 것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이찬혁의 장래희망'이라는 노래 가사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장래희망으로 Dream for the future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장래희망이었다. Funeral hope. 역시 이찬혁은 천재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라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종교인이기에 죽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의 퍼포먼스에서도 죽음이라는 상황을 청룡영화상이라는 축하파티하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죽음을 축제처럼 나타냄으로써 더욱더 전달 효과가 배가 되었다. 정말 이런 게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예술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멋있다.


세 번째로는 Laken이라는 여학생이 대학생 캠퍼스에서 조깅을 하러 가다가 불법 이민자에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 감명을 받았다.


Laken 어머니가 한 말인데 적어보자면,


Most importantly, I want to thank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Because without his sacrifices, Laken's story would have ended on that horrific day that she was taken from us. But because of him, we can continue living knowing that we will see Lakin again. There's no amount of change that will ever bring back our precious Laken. Our hope moving forward is that her life saves lives. We're so thankful that her passion for helping others and her legacy for doing goo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will carry on. Thank you.


(번역 자료 영상은 여기 위에 있다. )


어머니 입장에서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일어나서 자녀가 죽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도,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her legacy가 Jesus Christ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말이 매력적이었다.


(슬픔에 대한 승화 +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영향) 비극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었다. 단지 종교 하나로 인하여.


역시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의하여 동일한 상황에서도 다른 방식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종교는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반영하며, 사회와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어렸을 때 역사를 공부하면서 특히 삼국시대를 배울 때, 종교를 도입하면 왕권이 강화되고, 그 후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전성기가 찾아왔다고 배웠다. 예를 들어, 고구려는 소수림왕이 불교를 도입한 후 광개토대왕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신라는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한 후 진흥왕 때 국가가 강성해졌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왜 종교 도입이 왕권 강화와 연결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세상의 질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과거보다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하게 보였던 사회 구조가,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체계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져도, 결국 사람들의 자발적인 순응이 없다면 강제성을 띠기가 어렵다.


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만든 사회적 약속일뿐이고, 처벌을 통해 지키도록 강요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종교는 그보다 더 깊이 사람들의 가치관과 윤리를 형성한다. 법을 강제하기 전에, 사람들이 스스로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법과 제도가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사회에서는 종교가 일종의 최후의 양심처럼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종교를 통해 사람들이 공통된 가치관을 공유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국가의 안정과 발전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국민들이 같은 목표와 목적을 가지게 되면, 나라가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종교와 정서적인 분위기는 나라의 분위기와 정서를 가져온다.


우리나라는 부정하기 어렵지만, 유교(confucianism) 문화의 영향권이다. 그에 따라 영향을 많이 끼치게 되는데, 나이에 대한 권력이 얻게 된다. 그에 따라, 나이에 따른 사람들 관의 호칭도 달라지고, 다양한 존칭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사람이 되는 문화가 된다. 또한, 얼마나 유교적인가에 따라 조상을 모시는 게 중요하게 되어, 차례 문화와 장례 문화가 발달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사회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문화가 있다. 그에 따라 인종, 나이,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 같다. 이게 사람들의 가치관에 반영되어서 어떠한 직업을 가지더라도 존중받는 사회가 되는 것 같다. 만약 그 직업이 희생을 하는 직업이라면 (군인, 소방관, 환경미화원, 등) 더욱더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는 의식하에 존중을 받게 된다.



장례식과 결혼식 문화에도 큰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한국에서는 격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선호하며, 수많은 화환과 축하 메시지가 마치 훈장처럼 전시된다. 누가 어디에서 보냈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로 인해 결혼식장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빠듯하게 진행된다. 예식은 마치 의식처럼 순서대로 진행되며, 신랑 신부조차도 시간에 쫓기듯 움직여야 한다. 축하의 자리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하는 형식적 절차처럼 느껴진다.


장례식에서도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근조기 문화'다. 이는 마치 고인이 살아생전 얼마나 큰 업적과 영향력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역할을 한다. 내 시각에서 보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진시황의 병마용갱처럼 남겨진 자들의 상징적 표현 같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조차도 평가의 대상이 되고, 남은 사람들은 마지막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고인을 기리며 그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결국,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정해진 틀 안에서 정형화된 방식으로 진행되며, 마치 기계처럼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축하와 애도의 본질보다는, 사회적 기준에 따라 증명해야 하는 하나의 절차처럼 변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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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보여주기 위한 장례식 문화는 주로 유교 문화권에서 많이 나타나며, 무슬림 국가나 기독교 국가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결국, 그 나라의 종교적 기반이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우리의 삶의 가치관과 사회적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문화가 유교적 가치관과 자본주의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보여주는 문화’가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는 나이에 따라 일정한 업적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마치 단 10%만이 살아남는 나이별 퀘스트는 오징어 게임처럼 매 순간 발생을 하고, 성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이별로 해야 할 일, 이루어야 할 성과에 끊임없이 쫓기게 된다.


2025 : 대학 -> 직업 -> 재산의 축적(부동산, 자동차, 등) -> 결혼 -> 자녀 -> 자녀의 성과 -> 자녀의 결혼 -> 장례식의 근조기


조선시대: 과거급제 -> 관직생활 -> 명예 -> 자녀 -> 자녀의 성공 -> 자신의 가문의 성장 -> 큰 규모의 제사



이처럼 시간에 쫓기는 사회에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여유조차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존중해 주는 법을 잊어먹고, 다른 사람의 노력을 비난하여 낮춰 자신과 그 사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을 과장하거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남들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경쟁하는 관계 속에서, 결국 '진짜 나'와 '사회 속 나' 사이에 괴리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가면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가면을 쓴 나는 웃고 있을지 몰라도, 가면 속 진짜 나는 점점 병들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진짜 나’의 행복이 사라지고, 깊은 허무함과 공허함 속에 빠지는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경쟁의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은 어쩌면 존중받기 위해 자신을 악마에 팔아서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준에 통과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같다. 단지 장례식 옆에 더 멋있는 '근조기'를 달기 위해서 한평생을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한국 사회는 유교적인 문화에 미국의 기독교 문화의 영향에 따라 혼돈의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 마치 조선시대 말, 기독교를 믿어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인원과 유교적 문화를 지키기 위해 단발령을 하지 않기 위해 시위를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서서히 바뀌어 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방식을 취할지 알아보려면, 조선말 개화기 시절 우리의 선배들이 어떠한 선택을 내렸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상황과 우리는 약간의 시차가 있을 뿐, 상황은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되거나

사람들을 가르쳐서 사회를 바꿔보거나

어쩔 수 없이 적응해서 만족하거나 살거나


3가지 방법이 있다.



저번 크리스마스에 운이 좋게도? 3형제, 가족 모두 한국에 있고, 3형제 모두가 운이 좋게도? 전부 솔로여서 다 같이 특별히 교회를 방문했다. 설교가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나도 되지 않고, 외국어를 듣고 어려운 한국어가 나와서 어려웠지만, 교회라는 매개체로 인해서 바쁜 일상으로 인해 해체되었던 가족들이 우연히 모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두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정리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요약하자면 어떠한 종교도 상관없이 종교를 통해서 죽음이라는 것, 시간이 흘러 늙어간다는 것을 극복하는 법이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한 방법이고, 이전의 인류의 선배들이 극복한 방법이었다. 또한 종교라는 것이 최소한의 인류의 법을 만들어주기에 바람직하고, 가족의 해체를 막아 최소의 행복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작년, 인도에서 배낭여행을 하다가 북부 지역인 라다크에 가게 되었다. 우연히 한국인들과 함께 3박 4일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더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에 한국인들과 동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함께해 보니, 생각보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는 나이대도 비슷했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한국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부산, 울산, 강원도, 서울 등 사는 지역도 다르고, 대학생, 기자, 초등학교 교사, 사장님 등 직업도 다양했지만, 한자리에 모여 자유롭게, 그리고 평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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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대신 기록해 준 블로그>


https://blog.naver.com/kimyb16/223197065777


정말 어려운 사회고 힘든 사회인 것 같다. 어떠한 종교를 통해서라도 잠시 쉬어가는 법을 배워 멀리서 세상이 흘러가는 톱니바퀴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것 같다. 꼭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가치있는 인생일까? 모두들 인생을 주연처럼 자신감 있게 소중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럴만한 가치 가있는 세상이고, 행복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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