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부통령“ J. D. 밴스의 자서전
<힐빌리로 대변되는 백인 노동자 계층의 트럼프 선택을 파헤친 내부자의 서술>
전에 영화로 봤었는데, 책으로 읽어보고 싶다고 느껴서 읽어보게 됐다. 최근에 빈곤퇴치에 대해서 고민이 있기도 했고. 다듬지 않아 거친 글이지만 우선 남겨본다.
이 책은 미국 레드넥 가정의 현실과 거기서 엘리트로 성장한 자신의 배경의 차이가 무엇이었을지 고민하는 젊은 정치인 J. D. 밴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저자는 가족이 마약, 폭력에 휘말리면서 송사로 인해 사회복지사, 판사, 변호사들을 어린 나이게 만나게 되고, 이들이 방송용 억양으로 발음하는 것을 보고 생경해한다.(p. 193) 그러니까 그 전까지 저자가 생활하던 반경 안에서 멀쩡한 표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
저자의 조부모들은 최상의 교육을 받거나 교양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저자에게 정신적 지지를 해주고 돌아올 수 있는 “가정”을 제공해 주었다. 반면 저자의 어머니는 공부를 잘해 간호조무사라는 직업도 있었으나 마약 중독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끊임없이 연애와 결혼을 반복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 저자도 외조부모의 밑에서 자랐으므로 양육환경은 별반 다르지 않았고, 공부를 어린 시절 잘했던 것도 동일하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어머니와 그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바로 할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노출 빈도, 그리고 배우자의 차이에 있었다.
저자가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할머니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대학을 가고, 예일대 로스쿨을 가게 되며 계층사다리에 탑승했다. 중간중간 에이미 추아 교수 같이 자신의 삶에 진정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 또한 그가 성공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부유하고 안정적인 인도인 가정에서 자라난 여자친구와 비교했을 때 갈등상황 해결방식, 생활양식(아비투스)에서 많은 차이를 목격하고 놀란다. 가령 여자친구네는 절대로 싸울 때 언성을 높이거나 폭력적으로 굴지 않으며, 대화로 풀려고 한다. 그 결과 둘이 부딪힐 때 저자 본인은 언성을 높이거나 상황을 회피해 버렸으나 그에 대해 여자친구는 이해할 수 없어한다. 여자친구 덕에 본인의 갈등상황 해결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쳐나간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회피형 연애의 본질을 여기서 깨달을 줄이야…
결국 양육환경이 정말 중요하고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사랑과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공동체 또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과거에는 그것이 종교 공동체일 수도 있었을 테고, 현재는 복지가 그것을 대신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물론 현 미국 복지체계의 맹점을 지적하고는 있다. 삼촌이나 이모가 보호자보다 더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에도 배제된다거나 하는…
이미 그 시기가 지난 사람은 그런 가정에서 자라서 사랑을 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그런 배우자를 만나 안정적으로 변했듯이.
안정적이고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지속적인”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부모가 사랑을 가져도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그 가정이 지속되지 않으면 아무리 애가 똑똑해도 망가지기 쉽다는 뜻이다. 저자의 어머니 또한 간호조무사로 일했음에도 쉽게 마약에 빠져들었다. 이혼하고 배다른 애 한 넷 낳고 그 애들이 정신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악순환은 반복되고. 저자의 가족 구성원 각각을 들여다보면 그 고리를 끊은 사람과 안 끊은 사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이 저자가 트럼프 지지하는 게 코미디이긴 한데, 트럼프가 대선 때 유일하게 이 계층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었기 때문에 저자도 초반에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어도 점점 응원하게 됐다고 한다.
레드넥의 트럼프 선택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조모는 제8조 프로그램, 즉 “복지의 여왕”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며 트럼프 주장과 결을 같이 한다. 결국은 이들도 물을 떠다 주는 식의 복지가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기존 미국 민주당 정책이 레드넥의 지지를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힐러리는 너무 엘리트적으로 접근했던 것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유가 아닐까. 다만 힐러리 자서전 읽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부모가, 특히 아버지가 좀 엄했다는 내용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는 진짜 사랑으로 대했고, 조부모대의 폭력 고리를 끊기 위해서 노력했던 내용으로 기억한다. 언젠가는 그 고리를 끊고 자식에게 안정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고 현실적이었던 나는 대학에서 사랑과 연대를 배웠다. 그 이후로 나는 결정적인 인생의 기로에서 때마다 ‘낭만적인 ‘ 선택을 좀 더 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좀 더 무형의 가치를 찾아서. 나는 그 선택의 기저에는 삶과 내 주변인들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는 내가 박애와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탈선하지 않고, 주변인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 성취를 이뤄내는 것은 힐빌리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고행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안심시키고 싶어서라도 공부와 성취를 건강히 지속해나가려고 할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계속 배우자를 강조하지만, 충분히 그 상대는 친구, 공동체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지지를 잘 배웠기 때문에 상처받은 영혼에게도 사랑을 쏟아줄 수 있는 사람을 어떤 관계로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리라.
결국 love wins all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제목을... 힐빌리의 노래/ 힐빌리 전상서 이런 거였으면 좀 한국 독자들에게 더 잘 어필될 거 같기도 하당...!
++ 7.16. 트럼프가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