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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말 Jul 12. 2024

말리지 마, 다 물어뜯을 거야

이천십사 년 유월의 이야기

다음 달이면 누리가 태어난 지 일 년. 

리트리버는 보통 십이 개월이면 다 성장하는데 이십구 킬로그램인 누리 역시 성견 티가 물씬 난다. 사료는 아침, 저녁 두 번.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 분 미만. 어마어마한 식탐 소유견으로 냉장고 문소리만 들려도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리트리버는 피부가 민감하고 귀 가려움증도 심해 인공 간식은 주지 않고 주로 자연식을 먹이고 있다. 삶은 계란, 황태, 닭가슴살, 초록 바나나, 딸기, 사과, 블루베리, 삶은 토마토, 노란 파프리카, 상추, 오이, 찐 양배추 등등등. 


특히 과일이 앞에 있으면 누리의 흥건한 침은 강물이 되어 거실에 흐른다. 수건 두 장은 기본으로 깔아놔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식탐이 많다는 건 우리 가족만의 비밀이다. 어디 가서 식탐이 엄청 많다고 얘기하면 누리가 싫어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회사와 학교로 집이 비어있는 시간이 많은 평일에는 간식을 덜 먹고 온 가족이 집에 있는 주말에는 간식을 더 먹게 된다. 결국 식탐의 문제는 우리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도 연결돼 있는 셈이다. 


누리 입으로 간식이 들어가기까지의 단계는 대략 이렇다. 

1단계- 간절하고도 흔들림 없는 눈빛을 장착한 후 다소곳이 앉는다. 

2단계- 반드시 간식을 먹고야 말겠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3단계- 인내심에 인내심을 계속 더하며 절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인내심이 많이 요구되는 날은 홍해의 기적도 일어난다.   


3단계 과정이 끝나갈 무렵 나의 손은 어느새 누리의 입에 간식을 넣어주고 있다. 무엇에 홀린 듯 스르르 손의 자동화가 이루어진다. 반려견들이 간식에 진심이라고 하더니 누리는 진심에 간절함과 치열함까지 겸비했다. 그런 누리에게 좌절을 맛보게 할 수 없었다. 맞다. 그럴싸한 이유로 간식을 주는 견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이다. 

 

식탐 문제와 동시에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위기가 있었으니 바로 누리의 물어뜯는 습관이었다. 리트리버는 보통 사 개월에서 육 개월 사이에 이갈이를 시작하는데 누리는 오 개월이 지나면서 옷걸이와 효자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더니 식탁 의자와 책꽂이, 장판, 소파 등 이빨이 들어가는 대로 물어뜯었다. 

   

결국 내부 솜까지 뜯긴 소파는 마당으로 실려 나갔고 방방마다 찢어진 장판과 벽지는 투명테이프로 기워 누더기가 됐다. 쓰레기통을 뒤져 거실에 어지럽혀 놓는 건 예사였고 그러고 나면 더 해맑은 얼굴로 침대에 올라가 꼬리를 흔들어 댔다. 신이 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소위 악마견 시기가 누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온순한 성격이지만 활발하고 기운이 넘치는, 한마디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해두자. 1일 1 산책을 하고 있지만 산책을 가려고 대문을 열 때마다 전력질주로 마당을 박차고 나가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반기는 행동이 커다란 앞발로 점프해 넘어뜨리는 것이다.

 

언제나 누리를 예뻐만 할 것 같던 딸도 이때만큼은 누리와 싸울 기세였다. 대문 앞에서 들리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늘 이런 고성이었다. 

“누리, 하지 말라고오!!”


이런 에너지가 폭주하는 시기가 최소 일, 이년 더 이어진다는 인터넷 검색 결과에 우리는 고민에 들어갔고 어느 저녁 강이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수영을 생각해 냈다. 마침 강이 가까이 있고 그 물은 맑기까지 했으니 원반만 사면 수영 준비는 할 게 없었다. 바로 다가오는 토요일, 시험 수영을 위해 작고 야트막한 소가 있는 연하계곡으로 향했다. 

 

무더위가 시작되려는지 기온은 삼십 도를 웃돌았고 계곡물에 원반을 던지자마자 누리가 풍덩, 뛰어든다. 진정한 개헤엄의 자세를 보여주려는 듯 얼굴을 꼿꼿이 들고 네 발로 물살을 가르며 원반을 향해 나아가 덥석 물어 오는 누리. 성공이다. 이제 강으로 가면 되겠구나.


우리는 집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줄기 몇 곳을 답사한 후 일주일에 두세 번 누리와 수영을 즐겼다. 주말을 이용해 가는 날이 많았지만 평일 퇴근 후 바로 가기도 했다. 누리가 수영을 기다렸으므로. 


효과는 대만족이었다. 폭주하던 에너지가 조금씩 사그라들더니 수영을 다녀온 날은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다음날도 전날의 피로를 푸느라 평소보다 더 많이 잠을 자거나 누워 있었다. 물론 저녁에는 질주가 계속됐지만.

          

물론 수영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청소하기다. 수영을 끝내고 온몸의 물기를 털어내려는 누리의 몸짓은 못해도 서너 번. 한 번씩 털 때마다 강물의 비릿함은 누리의 털과 콜라보를 이루며 차 구석구석까지 날아가 꽂히는데… 처음엔 울고 싶었다.


마른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물티슈로 꼼꼼히 닦아내다가 나중에는 네다섯 개의 수건을 반으로 잘라 사용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물기 없애기의 무한 반복. 거기에 누리 샤워까지, 뒷정리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빡셈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남은 여름을 보내면서 내 일기장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쓰여있겠지. 오늘도 누리와 수영을 다녀왔다. 오늘도 누리와 수영을 …. 청소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진짜 너무 힘들 …. 


그렇게 누리의 사춘기 같은 시절을 무난하게 넘겼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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