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온몸에 수십 개의 모래주머니가 달려 있다. 무력함은 여전히 침대 밑에서 버젓이 날 노린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 저 방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가서 물이라도 마셔야 출근할 수 있다.
한발 늦었다. 미래에 전 남편이 될 남자가 TV를 켜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 저녁 활화산을 품은 내 주먹은 그가 숭배하는 70인치 TV를 박살 내려다 미수에 그쳤다. TV는 난데없고 심한 찰과상에도 간신히 소리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계속 시도한다. 투덜거림 혹은 욕설 같기도 한 몇 마디의 지껄임. 이내 그의 유기체 리모컨이 소파로 힘없이 떨어진다. 거실을 배회하는 걸음 소리. 작은북, 큰북. 작은북, 큰북. 그의 걸음에 맞춰 내 심장은 아슬한 연주를 시작한다.
이제 그는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현관을 나설 것이다.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암묵적으로 현관 입구 방과 거실은 그의 공간이다. 거실에서 저녁 내내 TV를 보는 모습이 보기 싫어 안방으로 피해 버린 것이 경계가 되었다. 그 후 우리는 경계를 침범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외롭다. 아니 외로움을 자처했다. 그의 인생에서 우선순위는 일이고 둘째도, 셋째도 일이다. 일을 위해서라면 가족은 가끔 중요한 자리에 차고 나가는 고급 시계쯤으로 치부했다. 결혼 생활 십오 년. 엄마는 사십 대 후반에 들어서 웬 새삼을 떠냐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미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갔다. 면역체계가 망가져 수시로 알레르기가 올라왔고 자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주말마다 좀비로 거듭나는 엄마를 보고 급기야 중학생 딸아이는 독립을 권유하다 못해 독촉까지 했다. 아이를 위해 버티고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당혹스럽고 창피했다.
사실 그동안 꼭 행복할 필요는 없다고 다독였다. 행복하지 않아도 삶은 살아졌다.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문득 만나는 따스한 벚꽃의 흩날림. 발밑으로 파고드는 붉은 단풍 몇 장. 그들이 주는 편린의 위로는 망각을 담을 수 있는 약통이 되어 나를 안심시켰고 그때는 울음을 쉴 수 있었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참고 또 참고, 참다 보면 우리 가정에도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삼키려다 게워 내는 일의 무한 반복. 식도를 거쳐 위와 십이지장까지 온통 염증 투성이다. 아이의 양육 문제, 가정을 꾸려나가는 그 모든 일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그를 탓하기란 이제 얼마나 쉬운 일이 되었나.
내가 쏟아내는 말에는 원망과 비난, 가시 돋친 독설로 가득했다. 서서히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했고 경제적인 계산과 사회적 시선 앞에서 헤어질 결심을 결심에 그치게 했다.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에게도 언젠가는 뛰쳐나갈 기회는 올 것이라고. 아이가 대학만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든 내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독립을 멋지게 해내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있었을까.
일주일마다 피부과를 다니고 독한 약을 먹는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냐는 의사의 질문을 받고 씁쓸하게 웃는다. 딸아이의 상담 교사로부터 면담 전화를 받는다. 이 세 가지는 일 년 전부터 생긴 현상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수행하기로 선택했고 끔찍함마저 지겨워진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퇴근을 하고 그가 없는 거실 한가운데에 선다. 소리까지 죽은 TV. 싱크대에 말라붙은 시리얼. 소파를 차지한 그의 양말과 수건들. 나를 바라본다. 꾸역꾸역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내가 읊조린다. 순간 오늘 아침 거실에서 혼자 지껄이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바라본다. 애써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그와 결혼하기로 했을 때의 기억,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 역시 엄연하게 따지고 보면 내가 선택한 것이다.
인생사는 계속적이고 무수히 반복적인 선택의 연속이라 하지 않던가. 출근하려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 점심 메뉴로 김치찌개를 먹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는 것. 모닝커피를 마시기로 한 것. 이들 모두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선택 버튼을 눌렀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야 하거나, 더 나은 것이라서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일 년 동안 그와 부딪히기 싫어 나 스스로를 세 평 방에 가두었으며 그의 발자국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동선을 피하려고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무엇보다 딸아이의 마음을 아프고 힘들게 했다. 그 모든 것중에서 최악은 남편이 변하지 않는 이상 선택지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단정해 버린 나의 고집스러운 생각과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나는 생각도 선택해야 했다. 떠오르는 대로, 보이는 대로, 감정대로 생각하게끔 두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나는 현재를 갈망한다.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랑과 웃음, 다정함을 꺼내어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현관 도어록음이 울렸다. 지금은 안방으로 들어갈 것인지 거실에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아니 그전에 그를 향한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선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먼저다.
문이 닫힌다. 그의 얼굴이 보인다. 내가 눈물을 닦는다. 놀란 그가 다가온다. 나에게. 점점. 가까이.
그가 말한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