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가 어렵다고?(16)
1950년대 후반부터 벌어진 일종의 퇴행은 「밤」에 와서 잘 드러납니다. 첫 행부터 “부정한 마음아”로 시작하죠. 그러면서 “너는 이런 밤을 무수한 거부 속에 헛되이 보냈구나// 또 지금 헛되이 보내고 있구나”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하늘 아래 비치는 별이 아깝구나”라고까지 합니다. 이 작품은 1958년 11월에 발표된 작품인데, 이 이상 어떤 진술도 또 재현도 없어서 확대해석하기는 힘들지만, 「봄밤」을 기점으로 김수영이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동맥(冬麥)」에서 그것을 이겨내 보려고 시도를 하죠. 하지만 극복이라는 것은 의지나 결의만으로는 되지 않죠. 「동맥(冬麥)」은 여러모로 읽어 볼 만한 작품입니다. 이 시에서 시의 화자는 그래도 “믿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김수영의 퇴행은 자포자기로서의 퇴행이 아니라 일종의 건강한-병듦입니다. 형용모순으로 보이지만 삶이나 역사는, 그리고 그에 응전하는 한에 있어서 우리의 영혼과 정신은 논리학적인 형용모순 같은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습니다. 건강을 잃지 않았으니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리지만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겁니다.
1연에서 “내 몸은 아파서/ 태양에 비틀거린다”를 두 번 반복한 것은, 그만큼 아팠기 때문이죠. 김수영에게는 절망과 함께 아파버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4‧19혁명을 최종적으로 좌절시킨 5‧16쿠데타 직후에도 그랬습니다.
앞에서 반복에 대해서 잠깐 말했지만, 제 경험으로 보자면 진정한 시인(작가)은 무언가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의 새로움을 말할 때, 주로 형식이나 표현된 언어의 새로움을 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만, 진짜 새로움은 김수영처럼 “새벽”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그것을 시적으로 구현해내려는 고투에서 이루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새벽”은 물론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그리고 유토피아도 아니지요. 또 개인의 수양으로 도달하는 내적인 깊이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 모두를 포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수영에게 시는 그것에 이르는 경로였죠. 4‧19혁명이 일어난 그해 6월 17일의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혁명은 상대적 완전을, 그러나 시는 절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게 아닌가.”
2연에서 김수영의 믿음은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을 꼭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정치적인 해석을 피할 도리도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의 반대편을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자신이 “비틀거리지도 않고 타락도 안 했으리라”고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자신의 “타락”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 관계가 있다는 뜻이며 이 “타락”은 현실의 관점에서 “타락”일 뿐, 도리어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김수영은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을 꿈꾸다 몸도 아프고 “타락”을 한 것인데, 굳이 “타락”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그러나 이 눈망울을 휘덮는 시퍼런 작열의 의미가 밝혀지기까지는/ 나는 여기에 있겠다”. 도대체 내가 바라는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은 무엇인가? 이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여기에” 충실하겠다는 겁니다. 앞에서 제가 사유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지금 김수영은 자신을 이렇게 아프게 하고 그 아픔을 못 견뎌 “부정한 마음”을 갖게 하는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에 대해서 더 깊은 사유를 해보겠다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서서요.
3연은 “여기”에 대한 시적 묘사입니다. 읽어 보도록 하지요.
햇빛에는 겨울 보리에 싹이 트고
강아지는 낑낑거리고
골짜기들은 평화롭지 않으냐―
평화의 의지를 말하고 있지 않으냐
“평화의 의지”가 살아 있는 “여기에”서 “뒤집어진 세상의 저쪽”을 더 깊이 사유하고 더 깊이 믿고 더 깊이 사랑하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햇빛에 겨울 보리에 싹이” 트는 “여기”가 곧 ‘저기’입니다. ‘저기’는 개척되는 게 아니라 “여기”에서 싹이 튼 덩굴이 담벼락을 넘어가 ‘저기’에서 피우는 꽃이며 열매입니다.
‘저기’는 “여기”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어쨌든 지금은 “적막”의 시간입니다. 동시에 “겨울 보리에 싹이” 트는 시간입니다. “겨울 보리에 싹이” 트면서 봄은 어쨌든 이곳으로 오는 중일 겁니다. 미래라는 시간은 신비의 영역도 아니고 환영도 아닙니다. 오직 “여기”에 있습니다.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적막 사이에서
“울고 간 새”가 떠나고 지금 나뭇가지는 적막에 휩싸여 있습니다. “울러 올 새”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리얼리스트 김수영』에서 저는 이 구절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했습니다. “적막 사이”는 적막과 적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느낌 그대로 “울고 간 새와/ 울러 올 새의” 사이에 있는 “적막”을 가리킬 뿐입니다. “적막 사이에서”를 ‘적막 속에서’로 읽으면 조금 의미가 명료해지려나요.
그런데 여기서 “새벽”이 무엇인지 자꾸 파고들면 이 시간은 문제 풀이를 하는 국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김수영의 ‘절대적 완전’은 초기시부터 줄곧 추구됐다는 게, 이번 김수영 읽기의 제 가설이자 주제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작품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증명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말이 책으로 나와서 다른 분들이 읽게 되면 다른 의견이나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작품을 떠난 해석은 경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제 가설과 전제가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군요.
『노자』에서 ‘도(道)’를 일러서 “도가도비가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라고 하죠. 1장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더이상 도가 아니고, 도에 이름을 붙였다 해도 그 이름으로 계속 부를 수는 없다, 대략 이런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4장에서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나는 도가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늘보다 먼저인 듯도 하다(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그래서 다만 ‘도’라고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세상 만물을 스스로 그러하게 만든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속어로 ‘도가 텄다’고 하죠? 그것은 애쓰지도 않으며 억지도 없는데 그 방면에서 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잘 해낸다는 뜻이잖습니까? 무슨 매뉴얼이나 설계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척척 잘 해내면 ‘도가 텄다’고 하죠. 그것은 몸이 해내는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도’는 여러 이름으로, 여러 비유로, 여러 언어로 말할 수는 있지요. 어쨌든 우리에게 언어로 전해져야 하니까요. ‘도’는 언어가 없으면 전달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습니다.
「생활」, 「달밤」, 「사령(死靈)」, 「싸리꽃 핀 벌판」 등은 1959년 상반기 즈음에 쓴 작품들인데 상당히 우울하고 피로를 토로하는 시들입니다. 작품 자체는 그렇게 눈여겨볼 만한 작품들이 아닙니다만, 김수영이 1959년 하반기에 들어 기지개를 켜다가 1960년에 4‧19혁명을 맞이하는 내면의 드라마를 제대로 관람하시려면 훑어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활」의 마지막 연입니다.
생활은 고절(孤絶)이며
비애였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 간다
조용히 조용히……
「달밤」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 보다
나는 커단 서른아홉 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 않고 꿈을 버린다.
다른 작품의 예도 들어볼까 했는데, 그만둬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생활을 긍정하고 거기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가 했지만 어느새 김수영은 생활의 거미줄에 걸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생활이 과연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구름의 파수병」)을 심어준다고 하더라도 김수영은 분명 “새로운 목표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영롱한 목표」)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쨌든 생활이 그에게 어떤 아포리아를 던져준 것은 맞는데, 생활이라는 것이 사회나 국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수영 자신이 이에 대해 어떤 시적 기록도 남겨놓지 않았기에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만, ‘여기’에 충실한 리얼리스트로서 김수영이 그것을 놓쳤을 리가 없습니다.
많이 쓴 것은 아니지만 일기도 1957년부터 4‧19혁명 이전까지는 쓰지 않았는지 발굴이 안 됐는지 아무튼 없습니다. 여기서 김수영의 생활이 단지 자신의 가족만의 생활이었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56년에 쓴 「예지」라는 작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바늘구멍만 한 예지의 저쪽에서 사는 사람들이여
나의 현실의 메트르여
어제와 함께 내일에 사는 사람들이여
강력한 사람들이여……
‘메트르’에는 ‘주인, 선생, 지배자라는 프랑스어’라는 각주가 붙어 있네요. 전체 작품을 보면 더 잘 이해가 되겠지만, 아무튼 이 시는 김수영이 자신의 이웃을, 민중을 의식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자신을 “바늘구멍만 한 예지(叡智)를 바라면서 사는 자”라고 하면서 다시 “설움”을 토로하는데, “차라리 부정한 자가” 되면 “벗들과” “이웃 사람들의 얼굴이/ 바늘구멍 저쪽에 떠오르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김수영의 생활은 자신만의 생활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지의 저쪽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인, 선생이며 “강력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기독교 철학자 유영모, 함석헌이 발견한 민중도 이런 민중입니다. 씨알이죠. 씨알은 ‘맨사람’이면서 역사의 실질적 주체입니다. 억압받고 천대받으면서도 불꽃 같은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꽃 피우면서 자신을 살리고 자신을 살리는 일이 동시에 세상을 살리는 일이 됩니다.
십자가를 진 역사의 주체가 민중인데, 예수가 고난을 짊어진 민중 가운데에서 살고, 죽고, 부활했듯이 그러한 고난을 죽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가 곧 예수라는 믿음을 두 사람은 가졌습니다. 유영모, 함석헌을 통해서 민중신학이 등장한 것은 우리 지성사의 빛나는 흐름이지요. 김수영이 유영모, 함석헌을 이 당시부터 알았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함석헌을 읽었다는 증거는 남아 있습니다. 4‧19혁명 1주년을 맞아 쓴 산문 「아직도 안심하긴 빠르다」에는 다음과 같은 독설을 남겼습니다.
오늘이라도 늦지 않으니 썩은 자들이여, 함석헌 씨의 잡지의 글이라도 한번 읽어보고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는가 시험해 보아라. 그래도 가슴속에 뭉클해지는 것이 없거든 죽어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