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임용 낙방, 그리고...
요즘 날씨가 슬금슬금 따뜻해진다.
햇볕이 부드럽고 바람은 나른하다.
덩달아 몸도 마음도 자꾸 느슨해지는 느낌이다.
어제는 일요일이라는 핑계로 알람도 꺼두고,
그냥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일? 뭐 되겠지.” 그런 기분으로 말이다.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는데, 웬걸.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눈을 떴더니 아침 8시였다.
늦잠은커녕 몸이 알아서 기상 모드로 돌아가 있었고, 다시 눈을 붙여보려 했지만 머리는 이미 맑고 눈은 말똥말똥했다.
이불속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어느 시기의 내가 떠올랐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그 시절의 나...
그 시작은 몇 해 전, 내가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곳이 폐업하면서부터였다.
처음 면접을 앞두고 찾아본 유치원 리뷰에는
“급식비 천 원마저도 환불해 주는 곳”이라는 말이 있었고, 과장인 줄 알았지만 막상 일해보니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중심으로 하는 운영 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사장님은 정말 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이셨다.
“우리 아들이 여기만 왔다 갔다 하면 입이 대빨 나와. 여기는 이것저것 투자하고 TV도 몇 대씩 있는데, 우리 집은 허름하다고 불평이야.” 라며
웃으시던 그 모습도 기억난다.
교사로서, 사람으로서, 그분의 진심이 느껴졌고
나도 마음을 다해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우리 유치원도 버티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렇게 줄어드는 아이 수와 맞물려 유치원은 서서히 문을 닫게 됐다.
폐업 소식을 친구에게 전했을 때,
조용히 듣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영어는 잠시 멈추고, 공립 유치원 임용시험을 준비해 봐. 안정적이고, 너랑 잘 맞을 거야.”
공립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말에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안정적인 직장.
나도 이제 그런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는 책장에서 영어 독학서를 내려놓고,
거의 1년을 임용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노량진까지 오가며 2차 시험도 준비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기분만 남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고,
의욕도 자신감도,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좋아했던 영어에 대한 애정마저도 잃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침대에 기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말 그대로 흘러가는 하루 속에, 내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 시기,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한 유튜버의 말을 듣게 됐다.
단순한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 번아웃: 오랜 시간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상태
- 챗지피티 설명 참고
그리고 순간, 예전에 다녔던 영어 모임이 떠올랐다.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함께 웃고 떠들며 즐겁게 공부하던 따뜻한 기억들.
나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영어 모임에
나가보기로 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모임 사람들은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영어를 붙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누군가 내 영어 실력이 늘었다고 말해줬을 때, 정말이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차올랐다.
오래전 내가 영어를 좋아했던 그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모임에서 만난 한 사람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고,
영어도 좋아하잖아요. 영어학원 유치부로 취업을 하는 건 어때요?”
그 말은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솔직히 너무 하고 싶었지만, 내가 과연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나는 테솔 자격증부터 준비하기로 했다.
*테솔(TESOL):
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의 약자로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법, 주로 영어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준비하는 자격증이다
- 챗지피티 설명 참고
그리고 영어학원에 지원하고 몇 번의 이력서 탈락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서울의 한 영어 학원에서 면접을 봤고,
원장님은 내 가능성을 믿어주셨다.
거의 2년 반 만에 마주한 빛이었다.
영어를 다시 붙잡으며 나는 점점 나를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가끔 상상한다.
만약 영어가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마 평생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갚아도 모자랄 것이다.
고마워, 영어야. 나를 다시 일으켜줘서.
* 표지 출처: Unsplash('h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