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위기의 사춘기
10. 누군가의 장애물은 누군가에게는 오아시스가 되고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공부하려면 환경이 중요하다. 솔직히 우리 가정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나는 새벽부터 12시까지 일한다고 나가 있고, 남동생은 피시방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게임이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좋지 않지만 우리 식구는 내 아이의 면학에 최대 장애물이라고 생각되는 게임 덕분에 먹고 산다. 반대로 피시방에 오는 사람들은 힘들게 일하고 잠시 머리 식히러 오는 오아시스 같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 피시방을 우리 형제들이 마음을 모아서 10년이 넘도록 운영하고 있다. 오픈했을 때만 해도 이 동네는 피시방 격전구역으로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시간당 500원 하던 곳도 생겼었다. 그 와중에 동생은 오히려 가격을 올려서 성인들만 오도록 해서 조용한 피시방 환경을 만들었다. 덕분에 동네 단골 분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와 주시면서 이웃사촌처럼 돈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커피집도 이런 분들이 많이 오면 좋을 텐데 하며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것은 내 동생이 만드는 에너지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내가 어렸을 때 업어주며 돌봤던 동생이지만 따뜻하고 고운 마음씨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점은 본받아야 하는 점이었다.
한편, 한창 코로나가 퍼져서 절정기였을 때는 사회 전체가 패닉상태였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그래서 사회의 규칙이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운영하는 피시방은 10년 전에 오픈 당시부터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되어있었고 컴퓨터 테이블과 흡연 부스 설치 등으로 인해 이미 환기와 닥트 시설이 철저히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축’이라는 이야기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가며 우리 피시방 때문에 코로나가 퍼진 것처럼 지탄을 받았었다.
우리 가족은 생계를 위해 사회가 정해 놓은 법을 지켜가며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그렇게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는 약자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상처를 주는 맹수처럼 변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니, 코로나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속성은 원래 그래왔다는 것을 코로나 덕분에 깨달았다. 나는 정부의 방침 때문에 우리가 더 힘들어졌다며 원망했지만 동생은 그래도 정부 대처가 이만하니까 그나마 더 큰 피해가 없는 거라며 정부 방침이 그렇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숙연하게 받아들였다. 어릴 적 나를 의지하며 컸던 동생이 지금은 가족 모두가 의지하는 듬직한 기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