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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Feb 18. 2022

 만화가의 훌쩍 떠난 우리나라 여행기

전라도 강진 여행

 언제나 훌쩍 가볍게 떠나는 나의 여행은 거창한 계획이란 건 없다. 엑셀로 일정표를 만드는 일도 없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정해졌지만 형식은 무작정이 맞다. 청소며 빨래며 표 안 나는 주부의 일을 해놓고 떠나려니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었다. 둔산 터미널에 도착하니 광주 가는 버스가 11시 55분에 있다. 강진에 직접 가는 버스가 없어 광주 가서 갈아타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시간이 꽤 흐르겠다. 대전 정부청사에 정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다. 여행은 가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이다. 대전에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미 여행 중이다.


 월요일에 여행을 떠난다는 건 다른 사람과 달리 나만 역주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 조차 묘한 즐거움이다.  나 혼자만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가서 실컷 거닐다 오는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내가 존재했던 2011년 8월은 어느덧 과거의 강물로 흘러가 버리겠지만 이 순간만은 영원히 새겨지겠지.     


 원래 아침을 안 먹는데 여행을 가니 특별히 먹어볼까? 하는 심정으로 집 옆 맥도널드에서 맥모닝 세트를 사 오길 잘했다. 안 그랬음 차 시간 때문에 점심까지 굶을 뻔했다. 대전 정부청사의 정자에 앉아 소시지 맥머핀과 해시 포테이토와 커피를 마신다. 초록색 잔디 언덕들이 겹쳐있고 그 뒤로 정부청사 네 쌍둥이가 겹쳐 서있다.

  

강진 다산초당을 가게 됐는지라 박석무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를 차 안에서 내내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정약용의 마음이 되어 보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에도 다빈치형의 다재다능한 천재가 있다면

 세종대왕과 정약용이다. 해박한 지식--장원급제, 주옥같은 한시들, 그림, 글씨, 많은 저서, 정조 때 화성을 쌓는 데 많은 공헌을 한 거중기의 설계자, 배다리의 설계자였다. 당파싸움과 소용돌이 속에서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일생을 거의 유배생활로 보내지만 나쁜 일이 항상 나쁜 일이 아니었다. 500여 권의 저서를 완성하고 많은 책을 읽어내며 의미 있는 많은 시들을 읊조리던 정약용이었다.    


 -단 저자의 말처럼 한시 말고 훨씬 전대의 정철이나 외가 쪽 친척 윤선도처럼 아름다운 한글로 된 시를 썼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ㅡ 아들들과 아내에 대한 사랑을 실은 서간문들.. 특히 막내아들의 죽음을 유배지에서 접하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눈물이 났다.     


  책을 읽다 보니 강진터미널에 도착한다. 아주 작은 터미널을 나오자 시내버스들이 승객을 기다리며 서 있다

 영랑생가가   450M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정도 길이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며 걷는다. 가다 보니  김영랑 기념관이 먼저 보인다.  남쪽이라 이국적인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 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영랑 김윤식 시인의 사진이 있다.  '내 마음을 아실이'라는 시의  "내 마음을 날 같이 아실이가 계신다면 눈물방울과 보람 보배인 듯 드리리....  "라는 시구가 캘리그라프로 써져 있다. 남도 사투리의 맛을 이렇게 잘 살린 시가 있을까 싶은 '오매 단풍 들겠네'도 보이고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절절한 시구 "모란이 지고 나면 내 한 해는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울옵니다.ㆍ중략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역설의 대표적 표현이라고 수업할 때 매번 말하지만   소름 끼치는 절창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라는 예쁘디예쁜 시도 있다.


사실 김영랑은 1920년대의 감상성과 이념성을 탈피하여  시는 단지 시일뿐이다.라고 부르짖어 1930년대 시문학파를 결성했다. 아름다운 언어를 갈고닦는 순수시를 대표하지만  그런 시만 지은 게 아니라"독을 차고"등과 같은 일제에 저항하는 의지를 담은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영랑 전시관을 돌다 보니 가족사진도 보이는데 시인은 다른 분에게 비해 넉넉한 풍채다. 유리관 안엔 서양화에 큐피드를 그린듯한 천사 같은 외모의 서양 여인이 있는 엽서가 보인다. 알고 보니  프랑스의 미뇽이라는  아가씨란다.  뒤에 시를 한 편 적어 놨는데 아직 미발표된 시라고 한다. 사진만 보고도 시상이 떠올릴 미모인가 보다.

    

전시관을 나와 생가 올라가는 길에 길냥이가 보인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여지없이 부른다. 당연히 외면하고 간다. 옆을 보니  시문학파 기념관 공사 중이다. 지금쯤은 완공됐을 거다.   시문학파가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변영로, 등등 누구였는지 헤아려 본다. 생가에  도착한다. 입구엔 황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내가 들어서자 일어나길래 혹 티브이서 본 명물 안내견인가 해서 지레 감격해서 말을 건네 본다. 하지만 황급히 도망가는 걸로 봐 유기견인 모양이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불쌍하다. 먹을 것을 주고 싶었지만 수중에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김영랑 시인 은 잘 사셨던 분이었나보다. 집이 꽤 넓다.  곳간 , 우물과 장독대 , 본채 , 부엌 , 별채까지 두루 갖춘 집이다.  뒷마당 울타리 뒤   얕은 언덕엔 대나무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러니 시인이 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마당의 하늘과 나무들도 때마침 절묘한 풍경화를 보여준다. 그러다  혼자 돌던 나는 깜짝 놀랐다.   방안에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놀란 거다. 김영랑 시인의 마네킹이 한복을 입고 옛날 상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신다. 혼자 다니다 보니 겁쟁이 기도 하고 잘 놀라게 된다.


 김영랑 생가를 나와 다산초당 가려고 여학생들에게  길을 묻는다. 친절하게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준 강진여중 학생들이다.    사진을 찍어달란다.. 귀엽다.  부채를 들고 있던 여학생은 벌겋게 단 내 얼굴이 안쓰러운 지 부채질까지 해준다.     

"다산초당 왜 가세요?"     

"거기 우리 집 쪽인데...  "  

"뭐하시는 분이세요?"     

"무전여행하시는 거죠?"

질문이 쏟아진다.

"난 돈 있는데. 돈 없이 하는 게 무전여행 아니에요?" 나의 대답이다.

"아 그렇죠."     

아무래도 돈이 없어 보였나? 그게 아니라 아줌마 혼자 여행하는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강진에서 다산초당 가는 버스를 놓치고 택시로 갔는데  이곳엔 또 시간 맞춰  버스가 없다. 친절한 택시 기사분이 콜비 안 받고 기다려주신단다.  내가 구경하고 올 때까지...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에 찍은 사진은 몽땅 다 심하게 흔들렸다. 마치 페이크 다큐처럼  "헉헉헉헉"  

마음은 급한데 올라가도 올라가도 다산초당은 나오질 않고  천천히 다녀오랬지만 미안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울울창창 대나무와 소나무 숲 사이로  사람은 없고 내가 길을 잘 못 들었나  하고 다시 내려온다.

택시기사분이 그 길  맞다고 멀찍이 따라와 주신다.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콜비 이상을 드려야 했었다.

  

 드디어 다산초당 보이긴 보인다. 호흡이 가다듬어지질 않아서  사진이 모조리 뿌옇다. 정약용의 고뇌와 그리움과 정진이 하나도 표현되지 못했다. 차 끓일 때 쓰던 넓적한 탁자 돌에선  백련사의 스님들과 차와 담소를 즐기셨다고 한다. 학업과 집필에 몰두하면서도 항상 백성들을 생각하고 위정자의 도리를 부르짖으며  자신은 검소하시기만 하셨으니 또한 존경스럽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엔 이런 말이 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입을 속이는 일만은 가능하다고 상추에 밥만 싸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입을 속이라 하셨다.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는 건 변소에 가서 힘만 들이게 된다고  하셨다.    비록 유배지였지만 멋진 곳인데  기사 아저씨께  미안해서 손을 들어 강진만을 찍기만 하고 돌아선다. 정약용 선생님의 마음이 되어 바다를 바라볼 예정이었지만ㆍㆍ



보리타작[打麥行]     

新獨酒如 白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大碗麥飯高一尺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飯罷取 登場立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雙肩漆澤 日赤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呼邢作聲擧趾齊 응해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須 麥穗都狼藉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雜歌互答聲轉高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但見屋角紛飛麥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 티끌뿐이로다.     

觀其氣色樂莫樂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了不以心爲形役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樂園樂郊不遠有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何苦去作風 客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오.                         

고시(古詩)      

제비 한 마리 처음 날아와     

지지배배 그 소리 그치지 않네     

말하는 뜻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묵어 구멍 많은데     

어찌하여 그곳에 깃들지 않니?"     

제비 다시 지저귀며     

사람에게 말하듯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     

홰나무 구멍은 뱀이 와서 뒤진다오."     


약용의 여러 시 중 좋아하는 것들                         



기사분이 내일 여행지를 추천해주신다.  해남에서 명량대첩 축제가 열리니 거기에 가보라고 하신다.

"오늘은 해남서 주무시고 우수영 기억하세요."  내일은 계획에 없던 이순신 장군을 만나러 가야겠다.               

해남서 골라 잡은 사파이어 모텔 4만 원이란다. 천 원에 세면도구 사실 거냐 묻는다. 산다. 저녁은 모텔 주변의 분식집에서 사 온  김말이 튀김에 떡볶이 소스 뿌린 것과 어묵이다.  검소함을 본받으려면 이만하면 훌륭한 음식이다.  여정중 기록한 메모와 그림, 나도 적어놓고 못 알아보는 것도 있다. 


 이번 여행에 동반한 세 권의 책은 다산  정약용의 책과 탁석산의 셰이크, 또 한 권은  다빈치의 노트북이라는 벽돌 책이다. 이 책 덕에  여행 내내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이런 미련 맞은 여행자가 있을까 싶다. 언니와 베이징 갔을 때도

"너 여기다 책 대여점 차릴 거야? 무슨 책을 이리  많이 가져온 거야?" 

그렇지만 언니도 이동 중 내가 가져온 책을 봤다. 여하튼 책 가지고 다니는 욕심이 많아 남편에게도 매번 지청구를 듣는다. 나중에 아들이 전자책 기기를 사줘도 해결되지 않았다.  모든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게 여행이지만 그래도 시각이 주가 될 텐데. 책 없이 여행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생전 처음 가보는 강진이지만 강진여중 여학생들과 친절한 기사분 덕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일어난다. 강진 사람들은 친절해라는.

       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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