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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Feb 12. 2022

중화요리

화려함과 소박함의 콜라보- 인화영의 추억

 대전여중 앞에 있던 인화영은 어릴 적부터 가족들의 외식 장소였다.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은 원탁의 가운데 음식이 돌아가는 유리판이 있었다. 여느 중국집처럼 붉은색과 금박이 사방에 물결치던 곳이었다. 배달을 하던 동네 중국집보다는 조금 고급스러웠다.


 그곳의 탕수육은 요즘의 찹쌀 탕수육은 아니지만 바삭하면서 딱딱하지 않은 튀김이었다. 그 튀김이 들여다 보이는 유난히 투명한 소스가 부어 나왔다. 당근은 길게 채 썰어 있고 오이가 젤리처럼 소스 속에 유영했다. 거기서 보기 드문 식재료였던 피딴도 처음 먹어봤다. 마치 삶은 달걀이 썩은 듯  검고 투명했던 피딴이 포크댄스 추듯 아롱사태, 청경채와 해파리와 야채를  빙 둘러섰다. 얇게 썰린 아롱사태는 투명한 젤리층이 잎사귀처럼 퍼져 오향을 머금었다. 해산물과 고기와 버섯, 채소가 채 썰어 들어간 유산슬도 맛봤다. 전분 소스가 이 모든 재료를 지휘하듯 감쌌다.


 인화영에서 특히 칭찬할만한 메뉴는 난자완스였다. 잘한다 해봤자 겨우 본전만 찾을 고기 다짐 메뉴는 한식엔 떡갈비, 양식엔 함박스테이크가 있다. 그런데 이게 맛있기가 쉽지 않다. 고기를  너무 잘게 갈면 소시지 같고 너무 굵게 다지면 씹혀서 불쾌하다. 인화영의 난자완스는 딱 그 중간쯤으로 고기 다짐의 미덕을 살렸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함의 모범답안이었다. 청경채와 죽순, 피망 등도 자기들도 단역에 불과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몇 가지 요리를 먹고  식사를 주문하면 유니 짜장(고기를 다져 만든 짜장)이나 기스면, 우동,진짜 예전 맛의 짬뽕 1인분을 작은  그릇 두 개에 나눠 주셨다. 아버지는 여기는 이래서 좋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은 특별한 날이나 가족들이 멀리서부터 모였을 때마다 인화영에 갔다. 그래서 중국집은 마음속에 즐거운 날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대전고 건너편 골목 스카우트 본부 옆으로 이전했을 때도 우리 가족들의 외식 장소였다. 지금은 장가가 아이도 낳은 조카가 아기일 적 단무지만 빨고 오다 나중엔 메뉴를 척척 주문했다.

"난, 탕(난자완스, 탕수육)"

가족들 모두 웃었다. 그 후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인화영은 없어졌다.


 그러나 넷째 언니의 국민학교 동창이 인화영이 새로 개업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대전여중 위쪽에 옛날 그 화교풍의 정통 중국집은 아니고 동네 중국집 같은 인화영이 나타났다. 반가운 맘에 가보니 주방장 분이 대를 이어 인화영의 맛을 재현해 내고 있었다. 탕수육도 예전의 그 맛이었다. 탕수육이 손님들 테이블에 날라져 올 때마다 탄성이 터졌다. 산처럼 쌓아 올려진 양 때문이었다. 난자완스도 그 맛 그대로였다. 우리 가족은 옛날의 재미있던 만화가 가득했던 만화가게를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사진을 찍고 내 블로그에 내 마음 그대로의 칭찬 일색의 포스팅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그 포스팅에 달린 덧글을 보고 내가 충격 먹을까 봐 지워 버렸다고 한다. 이런 곳을 맛있다고 심한 욕을 해놨단다. 욕의 내용은 보지 못 했고 다른 포스팅에도 드물게 그런 덧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 맛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분야라 그런 시비를 거는 사람은 이해불가다.


 그러다 인화영은 또 없어졌다. 하지만 금산 쪽에 새로 차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멀리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 가는지 늘 주차장이 붐비고 식당 안은 만석이다. 근래에는 아들, 며느리와 중국요리 안 좋아하는 남편과 가보았다. 난자완스 크기가 작아졌고 고기 다짐이 잘게 갈아진 쪽으로 기울었다. 데친 청경채를 가장자리에  장식한 것도 맘에 걸리지만 그래도 7할은 그 맛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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