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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 여인 Jun 22. 2022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설. 거. 지. 밥 짓기의 단짝 친구. 둘은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꼭 붙어 다닌다. 질투가 나서 떨어뜨려 놓으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느샌가 다시 꼭 붙어있다. 둘은 꼭 붙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주부 일상 top 3를 차지하며 언제나 환상의 짝꿍임을 과시한다. 굳이 둘 중에 뭐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단순한 게 매력 포인트인 설거지를 선택하겠다. 하지만 이 또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전업주부로의 생활을 마감하고 워킹맘이 되자, 집안일할 시간이 부족해졌고 버거웠다. 남편이 잘 도와줬지만 매번 반복되는 설거지가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잘 사용할 수 있을까 싶어 구매를 미뤄왔던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았다. ‘살림도 역시 장비 발이구나.’ 대충 헹궈 넣으면 살균 건조까지 해 주니,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설거지를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문제는 소량의 설거지만 있는 경우다. 고작 그릇 몇 개 씻으려고 전기를 한 시간 동안이나 가동할 수는 없었.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아니지’ 가족은 한 팀이다. 드디어 팀 웍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가족회의를 소집했.


“아들아, 이제 너도 다 컸으니 네 용돈은 네가 직접 벌어 쓰거라.”


매일 저녁 설거지를 하고 한 달 용돈 5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아들의 경제활동은 이렇게 설거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도 나누고 경제교육도 시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감당했다면 더없이 뿌듯했겠지만 말이다.


  

  꾸준히 하기란 어른도 힘든데 중2 아들에게 쉬울 리가 있나. 수북하게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면 한숨부터 쉰다. 돈 버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가르칠 수 있어서 감사한 순간이다. 학원에서 늦게 오는 날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아들아, 너는 공부를 하거라. 엄마는 설거지를 할 테니.’ 나는 기꺼이 싱크대 앞에 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주방 세제를 상큼한 과일향으로 바꿨다.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들으며 설거지를 시작한다. 단순노동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싹싹 비워진 그릇들을 보니 잘 먹어준 가족들에게 고맙다. 코끝에 살랑이는 향기와 맨손에 뽀드득거리는 느낌이 좋다. 사랑하는 가족이 먹을 음식을 담았었고, 앞으로도 담아낼 그릇들을 몇 번이고 정성 들여 헹궈낸다. 식기세척기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마음이다.


  

  음식의 흔적을 씻어내며 하루 동안 내 안에 일었던 거친 파도가 잔잔해진다. 흐르는 물과 함께 얼룩진 마음도 투명해진다. 말끔해진 그릇들에 나의 미소가 투영된다. 마음을 바꾸니 설거지는 어느새 향기로운 일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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