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키우고 남편은 나를 키운다.
아내의 꿈을 키워 준 남편
분주한 아침 시간, 식구들이 모두 나가면 서둘러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가지를 정리합니다. 식탁 밑에 떨어진 반찬 조각을 치우는데 바닥에 흩어져있는 머리카락과 먼지가 눈에 들어와요. 언제 이렇게 지저분해진 걸까요? 분명 어제 청소기를 돌렸는데 말이죠. 어쩌면 엊그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쓱쓱 대충 청소를 하다가 어느샌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저는 정리 정돈이나 청소를 잘 못 해요. 사실은 잘 안 합니다. 워킹맘으로 너무 바빴다는 핑계를 대기엔 궁색하네요. 3월부터 다시 전업주부가 되었으니까요. 퇴사하면 집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저녁 식사로 요리 한 상쯤은 차려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름 포부도 컸답니다. 늘 바빴기에 집안일을 못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퇴사한 지 넉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 집 안을 둘러보니 참 가관입니다.
그래요. 시간이 없어서 집이 엉망이고 시간에 쫓기며 식사를 겨우겨우 차리는 게 아니었어요. 거실에 먼지가 신나게 굴러다녀도, 물건이 제자리에서 한참 멀리뛰기를 한 후에도 "휴" 하고 한 숨 한 번 내쉴 뿐 우선순위대로 움직입니다. 나에게 더 의미 있는 일부터 요. 놀이터에서 아이랑 놀아주기, 책 읽어주기, 숙제 봐주기 등 집안 일보다 더 신나고 즐거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물론 집안일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고요. 최소한의 것을 합니다.
제 일상에서 최우선 순위는 아이들이었어요.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니 또 재미있는 일들이 넘쳐나요. 지금은 나를 키우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책 읽기, 글쓰기, N 잡러... 집안일보다는 자기 계발이 훨씬 재미있어요. 퇴사 후 육아와 자기 계발을 병행하고 있는데요. 이제 4개월 차 아장아장 병아리입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는 집을 말끔히 정리해 놓고 싶지만,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네요. 가끔 남편이 무심코 내쉬는 한 숨소리를 들어요. 주부가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해서 미안한 마음과 자격지심에 찔려서 말합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요.
"여보, 나는 왜 이렇게 살림을 못 할까?"
남편이 따뜻한 눈빛으로 이야기합니다.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하지 마. 다 잘할 수는 없어. 당신은 아이들 잘 키우잖아. 글도 잘 쓰고. 사람마다 잘하는 걸 하면 돼. 괜히 스트레스받지 마."
아, 오늘도 남편은 저를 키웁니다. 남편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다 잘할 수는 없다. 잘하는 것만 하면 된다.' 맞아요.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지요. 잘하려고 욕심내지도 않으려고 해요. 어떤 일이든지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니까요.(집안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내가 뭘 잘하는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부족하지만 글 쓰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글감이 떠오릅니다. 시간적 제약 때문에 글로 풀어내지 못하고 글감만 쌓여갈 때면 제 분신이 딱 열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면 엄마, 아내, 딸, 며느리(시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시댁 식구들 챙기기), 작가, 주부 등등의 역할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글을 쓸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밤을 지새우며 오롯이 글을 쓸 때 참 행복합니다. 무슨 얘기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걸까요? 저는... 써야 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남편이 신혼 시절부터 '장 작가'라고 부르며 격려해준 덕분에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는 동안 남편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내의 꿈까지 키우고 있었더군요. 참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요. 후드득 떨어지는 글감을 얼른 담아봅니다. 그리고... 저도 아이들의 꿈뿐만 아니라 남편의 꿈을 키우는 아내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