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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 여인 Mar 29. 2024

세상에 이런 사위 없습니다.

사골 끓이는 남자

내 나이 스물여덟, 처음으로 연애다운 연애를 시작했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를 만나보기도 전에 그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교제를 반대했다. 엄마는 특히 더 완강했는데 부모님 뜻을 어겨본 적이 없던 나는 견디기 힘들어 일방적으로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오랜 시간을 만난 게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매일매일이 눈물바다였다.

고작 일주일을 버티고 엄마의 반대보다 그와의 이별이 더 괴로워서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요." 내 목소리를 듣고 울먹이는 그를 따라 나도 울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어쩌란 말인가! 그의 깊은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저릿했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고 엄마도 언젠가는 그를 인정해 주실 것이다. 짧은 이별의 고통을 겪고 나니 오히려 확신이 생겼고 여전한 반대에도 꿋꿋하게 만남을 이어갔다.




중간에서 보다 못한 아빠가 나서서 그가 인사 오는 걸 허락해 주셨다. 그를 처음 본 부모님은 서글서글한 모습에 마음이 놓이는 눈치셨다. 일사천리로 그의 부모님과 같은 큰 형님 내외분과 상견례를 했다. 만난 자리에서 결혼 날짜도 잡았다. 일 년 간의 마음고생이 끝나는 행복한 날이었다. 부모님이 반대했던 사실이 무색하게 남편은 장인 장모님께 살갑게 잘해드리고 부모님도 막냇사위를 예뻐하셨다.

엄마는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을 줄 줄 아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사랑도 못 받고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또, 막내딸이 시부모님 사랑 듬뿍 받으며 살길 바랐는데 그 바람이 물거품이 됐으니 한편에는 속상한 마음도 있으셨겠지 싶다. 그래도 문득문득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한번 보지도 않고 부모 없는 설움을 안겨주었고, 마음 편히 데이트 한 번 할 수 없게 만들었던 엄마였다. 너무나 가슴 아픈 기억이라 쉽게 잊히질 않았다.

내가 남편이었다면, 나를 반대했던 부모님께 이토록 잘할 수 있었을까? 딸인 나보다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처가댁 가기에 앞장선다. 100번쯤 들었을법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들어드리고, 늘 어깨가 아프다는 장모님께 다정한 손길로 안마도 해드린다. 목욕탕 가는 걸 좋아하는 장인어른과 함께 목욕탕도 가고,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도 늘 부모님을 먼저 생각한다. 이런 사위가 또 있을까?



어느 주말, 구수한 냄새에 잠에서 깨니 남편은 사골을 끓이고 있었다. 엄마가 류머티즘으로 편찮으시고, 입맛이 없으셔서 통 못 드시니 산해진미가 다 소용없었다. 그런 장모님을 위해 새벽부터 정성껏 사골을 끓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사위가 하루 종일 살펴 가며 끓인 사골을 친정에 가져가니 엄마는 무척이나 감동받으셨다. 그리고 아주 맛있게 드셨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엄마는 왜 그렇게 마음 아프게 했을까?

2 년 전, 엄마는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엄마가 가끔 나에게 묻는다. "사위랑 어떻게 만났어?" 엄마가 흡족한 듯 해맑게 웃으며 또 묻는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났니?" 처음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엄마에겐 더 이상 나를 그토록 아프게 했던 기억은 없다. 나도 지웠다. 엄마가 혹시나 사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남편은 엄마에게 최고의 사위로 남을 것이다. 남편이 부모님께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보면 늘 떠오르던 말이 있다. '세상에 이런 사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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