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짓다
밥을 짓는 게 아니다. 사랑을 짓는다.
갓 결혼 한 새댁이 앞치마를 곱게 두르고 정성스레 밥을 짓는다. 밥 물을 맞추는 일부터 쉬운 일이 없다. 엄마가 음식 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기만 했기에 직접 하려니 힘이 든다. 많이 어설프지만 남편을 위해 밥을 짓는 모습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저녁을 차리고 두근두근 남편의 반응을 살핀다. “어때요?” 남편은 활짝 웃어준다. 정말 맛있는지,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솜씨를 압도한 건지, 남편의 행복한 미소에 안도할 뿐이다. 행복을 선물하고 싶었던 목적은 달성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밥 짓기의 시작.
요리에 관심 없던 내가 가족을 위해서는 어디서 용기가 나는지 고기나 생선을 손질하며 씨름을 한다. ‘사랑이 없으면 못하겠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감에 따라 밥하는 손길은 더욱 바빠졌다. 이유식부터 잔치 음식에 이르기까지 밥 짓기와 함께 한 세월은 어느덧 17년 차가 되었다. 충분히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즐겨 할 수 없는 밥 짓기. 초등학생 때 매일매일 억지로 써야 했던 일기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덧 요리사가 되어있다. 가족은 언제나 나를 성장시킨다.
내가 밥하는 사람이 되고 보니 순간순간 친정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밥은 해 주는 것만 먹을 땐 결코 그 수고를 알 수 없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상은 엄마의 사랑 그 자체였다. 엄마는 아프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밥 짓기를 거른 적이 없으셨다. 밥과 함께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있었음을, 내가 밥하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도대체 어떤 힘으로 그 오랜 세월 매일매일 가능했던 걸까?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밥 짓기다.
사랑이 가득 담긴 밥을 잔뜩 먹고 자랐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해 주고 싶지만 참 어렵다. 아이들이 커가니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한 끼에 정성을 더한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조미료. 사랑 한 스푼, 행복 한 스푼을 넣어 지은 밥에는 힘든 세상을 이겨나갈 힘이 있다. 엄마가 해 주는 밥은 몸만 키우는 게 아니다. 마음도 키운다.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길 바라며 열심히 사랑 밥을 먹인다.
일을 하기 시작하니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부실하게 먹은 날엔 눈물을 꾹 참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본다. 조금만 힘내서 움직이면 가족을 위한 최고의 밥상이 뚝딱 만들어진다. 된장찌개 하나, 계란말이 하나에도 엄마가 해 준 밥이 최고라며 먹어주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다. 고픈 배를 채우느라, 하루 일과를 재잘대느라 손과 입이 바빠진다. 하하 호호 우리 집 식탁 분위기는 햇살보다 밝다. 하길 잘했다. 나는 밥으로 사랑을 먹이고 가족은 또 다른 사랑으로 되돌려준다.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흩어진 후 식탁에 앉아 있자니 하루의 고됨이 밀려온다. 나 먹으려고는 안 할 것 같은 밥. 여전히 누군가가 해주는 밥이 좋지만 오직 맛있게 먹어 줄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 게 아니다. 사랑을 짓는다. 나를 밥 짓게 하는 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