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던 아이의 카덴차

무대 밖에서 이어지는 삶의 연주

by 비플렛 쌤

딸은 초등학교 2학년쯤,

조수미 같은 성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던 아이였다.

전국 동요대회와 방송국 노래대회를 오가며

긴장보다는 자신감으로,

노래와 몸짓으로 무대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동요대회에서는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자

SM 기획사라며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내게 동의를 구한 적도 있었다.

그날 이후

동네는 잠시 떠들썩했다.


바야흐로 소녀시대가 나오기 전이었고,

몇 해 뒤에는

같은 지역의 중학생이던 한 아이가

‘뷔’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은 그렇게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꽤 가까이 있던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정해진 길 위에 서는 일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아이의 노래를 듣는 순간,

노래하는 딸을 바라보는 시간은

그저 참 행복했다.


딸은 결국 노래를 전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선택에 대해

아쉬움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꿈을 포기했다기보다

꿈을 다른 자리에

조용히 옮겨 놓은 얼굴이다.


오늘은

예전에 반주했던 남성합창단 단원님의 초대로

딸과 함께 소프라노 공연을 보러 갔다.

클래식 기타, 피아노, 성악.

각각의 소리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리에서 반짝였다.

다채로웠고,

마치 영역을 나누어

세 번의 공연을 본 것처럼

모든 연주가 또렷하게 남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끼와 테크닉, 음악성이

과시 없이 흘러가던

소프라노의 연주였다.

유려했고, 고왔고, 화려했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감탄이라는 말 말고는

다른 표현이 필요 없었다.


그 순간 문득

이 무대를 객석에서 바라보고 있을

부모님의 마음이 떠올랐다.

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찰 것 같은 마음.


공연이 끝난 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어떤 분은 나와 딸이 똑같다며

“20년 전 얼굴과 지금 얼굴이

나란히 있다”라고 했다.

그 표현이 재미있어서

잠시 내 옛 시절도 함께 떠올랐다.

마치 시공간이 겹쳐진 듯한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이 말했다.

“엄마, 내가 성악 안 하길 잘한 것 같아.

난 저렇게 끼가 넘치게 연주 못했을 것 같아.”

그 말 속에는

그 연주에 대한

깊은 존중이 담겨 있는 듯했다.


노래하던 아이는 자랐고,

그 아이는 이제

노래를 바라보는 어른이 되었다.


음악에서 카덴차는

곡의 흐름이 잠시 멈춘 자리에서

연주자가

그동안 쌓아온 기교와 감각,

자기만의 호흡으로

가장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이다.

정해진 박자도,

정답도 없이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남는 순간.


어쩌면 딸은

노래하지 않으나,

자신만의 카덴차를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리를 내지 않아도

자신의 삶 속에서 반짝이며,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다른 이의 연주 앞에서

기꺼이 감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대 밖에서 이어지는 삶의 연주에는

소리보다 오래 남는 것들이 있다.

추억도, 이야기들도.

어린 딸과 엄마가 손을 잡고

함께 걸어온 시간도

그렇게 조용히 연주된다.

오래전 핸드폰 노트펜으로 딸을 그려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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