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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Feb 01. 2024

#7. 잘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반듯한 것

자신이 궁금하다면 십문십답

“가위질이 이게 뭐야~ 반듯하게 잘라야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보통 여자아이들은 소근육이 빨리 발달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7살이 되도록 연필 쥐는 것도 서툴렀고, 젓가락질도 잘 못했고, 가위질도 잘 못했다. 나와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는 일찍이 잘하던 것들을 말이다. 언니는 심지어 6살 때 미술학원에서 나간 대회에서 국회의원이 주는 금상도 받았는데 나는 7살이 되도록 크레파스를 힘없이 끄적일 뿐이었다.      


그날은 유치원에서 오징어를 만드는 날이었다. 8절지의 반에는 커다란 세모, 작은 세모로 몸통을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10조각으로 나누어서 오징어 다리를 표현했다. 그런데 오징어 다리 자르는 일이 힘들었다. 가위가 헐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10조각으로 잘랐다. 그리고 열심히 만든 오징어를 집에 갖고 가서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평소에 나의 성과물에 대해서 늘 칭찬을 해주던 엄마가 이날은 약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가위가 이상해서 그런 것 같다고 변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뒤부터 왠지 반듯한 것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예민 스위치가 켜졌다.

 

내가 어릴 때 문방구에 가면 8절지 크기의 마분지에 인형과 인형 옷이 프린트된 종이 인형을 팔았다. 나는 때때로 종이 인형을 사서 오리면서 놀았는데,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검은색 테두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검은 테두리의 제일 바깥 라인을 따라서 잘라야 할 것인가, 검은 테두리의 한가운데를 따라서 잘라야 할 것인가가 고민되었다. 검은 테두리의 중간을 자르겠다고 마음을 먹고 잘랐는데 그 중간을 벗어나면 오징어를 자르던 그날이 생각이 났다. 역시 나는 반듯하게 가위질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자를 사용해서 길이를 재고 직선 긋는 법을 배운다.    

 

“3cm를 그려보시오.”     


종이에 자를 올리고 연필로 3cm를 그어보려고 하니 또 눈금이 신경 쓰였다. 눈금의 두께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시작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딱 가운데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는 걸까. 나는 내가 제대로 3cm를 그었는지 궁금했고 틀렸을까 봐 걱정됐다. 3cm를 그릴 때 오징어를 잘랐던 그날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어떻게 그려도 약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그 오차에 대해서 전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다행히 나의 불안은 중학교 1학년 때 유리수를 배우면서 해소되었다. 0과 1을 반으로 나누면 1/2, 그것을 반으로 나누면 1/4, 그것을 또 반으로 나누면 1/8... 이 수를 더 나누면 나눌수록 엄청 작은 숫자가 된다는 것. 그래서 자의 눈금마저도 완전히 정확한 것도 아닐뿐더러 3cm를 그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러니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그리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자와 멀어졌다. 나는 중고생 때 월간 주간 스케줄표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곤 했는데 그때 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삐뚤어지거나, 각도가 안 맞거나, 좀 휘어지면 표가 많이 나는 얇은 펜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얇지 않은 색연필로 적당히 내 마음에 들게 표를 그렸다. 그렇게 반듯하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이 글을 쓰기 전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내가 어릴 때 소근육이 정말 늦게 발달되었는지, 내가 가위질 못하고 온 날을 혹시 기억하는지를 물어봤다. 엄마는 내가 딱히 늦된 기억은 없다고 하셨고, 오징어를 만든 날도 기억에 없다고 하셨다.    

  

나를 다시 돌이켜 보면 나는 남들이 무심코 넘기는 아주 작은 반응 하나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기억도 못하는 정말 사소한 말 한마디를 오랫동안 곱씹었던 거다. 


나의 아이들도 정말 사소한 일에 걱정을 할 때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사소해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지만 예전의 나처럼 자신을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걱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걱정에 오래 매여있지 않도록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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