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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Jan 25. 2024

#6.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요? - 배신의 맛, 라면

자신이 궁금하다면 십문십답

“아니, 엄마!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리면 어떻게 다 먹어요?”    

 

때때로 친정에 가면 엄마는 음식을 잔뜩 차리셨다. 엄마와 함께 살았을 때 내가 잘 먹었던 음식, 또는 엄마와 함께 살지 않았을 때 전화로 먹고 싶다고 투정했던 음식, 방학 때나 휴가 때 와서 잘 먹은 음식을 모두 차리실 기세였다.


엄마는 딸이 모처럼 친정에 왔을 때 엄마의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가길 바라셨을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음식을 많이 못 먹는 나는 진수성찬이 늘 부담스러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입이 짧았다.  예민한 감각 때문에 식감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향이나 맛이 강하면 먹기 싫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아마도 소음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잘 먹은 음식도 연달아 먹으면 질려서 못 먹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달걀말이를 나는 잘 안 먹었다. 달걀 안에 들어있는 채소도 이물감이 느껴져서 기분이 나빴고, 흰자와 노른자가 잘 섞이지 않은 부분에 탄성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싫었다.

달걀 프라이의 너무 익은 부분은 딱딱해서 싫고 촉촉한 부분은 비려서 싫었다.

나물반찬은 오래 씹으면 밧줄처럼 엮이는 것 같았는데, 삼키려고 하면 목에 걸리는 느낌이 들어 싫었다.

김치는 매워서 못 먹고, 된장국은 이상한 냄새가 나서 싫었다.

미역국은 미끄덩거리는 식감이 싫어서 먹기 싫었고, 소고기뭇국은 어이없이 부서지는 무의 식감과 고기 씹는 느낌이 싫었다.

멸치볶음은 멸치가 입안을 찌르는 것 같아서 싫었고, 진미채는 씹을 때 이 사이에 끼는 느낌이 싫었다.    

  

어찌나 밥을 안 먹었던지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고작 130cm 정도였다. 이런 나를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엄마는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 다른 집 아이들이 무슨 반찬을 잘 먹는지 물어봐서 만들어주기도 하셨고, 같은 재료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음식을 만드셨다. 이런 내가 뭔가를 잘 먹는 것은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특별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음식을 조만간 다시 만들어 주면 나는 질려서 먹지 않았다.   

   

가끔씩 엄마가 만들었던 정체불명의 음식의 맛과 향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한다. 엄마도 즉흥적으로 만들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음식의 맛과 향이 생각나는 날에는 피식 웃음이 난다. 나 때문에 울 엄마 고생 많이 했네~ 하면서.      


여하튼 중학생 때 급성장기가 오기 전까지 엄마는 까다로운 나를 먹이기 위해 고생을 하셨다. (요리하는데 고생하는 것을 기본값으로 만들어 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 그래서 내가 집에 오겠다고 하면 뭘 차려줘야 할지 고민이 되셨던 것 같다. 엄마는 다양하게 많이 차리기 전략을 쓰신 것 같은데, 나는 엄마가 차려놓은 진수성찬을 보면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다 못 먹으면 마치 엄마를 배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내 위는 식탁 위의 음식을 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도 알잖아. 나 많이 못 먹는 거. 제발 먹을 만큼만 차려주세요.”     


결국 나는 엄마에게 조금만 차려달라고 잔소리를 했다. 정말 배부른 소리라는 것은 잘 알지만 엄마의 과도한 정성이 싫었다. 너무 많이 차린 음식을 보면 식욕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시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가면 늘 진수성찬을 차리셨다. 한 끼에 된장국, 해물국, 김치찌개, 채소쌈, 해물찜, 해물전, 채소전, 생선구이, 소고기구이, 김치 2~3가지, 장아찌 2~3가지, 나물 2~3가지, 계란을 6개는 족히 넣었을 계란찜을 차리셨다.      


‘헉... 이걸 어떻게 다 먹으라고...’   

  

시어머니가 엄마보다 더 많이 차리시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어머님이 바라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 먹었다. 그렇게 다 먹고 나면 체해서 다음 끼부터는 굶게 되었다. 점차 요령이 생겨서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님은 그것만 먹고 어떻게 사냐고 걱정하는 소리를 하셨다. (어머님은 남은 음식을 다 드셨다. 음식을 남기면 지옥에 가서 먹어야 한다며. 어머님은 본인이 드실 수 있는 양을 계산해서 요리를 하셨던 거다. 어머님은 대식가셨다)      


친정이나 시댁에 다녀오면 먹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라면이었다.

몸에 좋지도 않고 별 정성도 없는 라면.

라면에 다른 것을 넣으면 안 된다. 파도 양파도 해산물도 넣지 않는다. 딱 달걀만 한 알 넣는다.    

  

그날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냄비를 앞에 두고 그릇에 라면을 덜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후루룩 먹으니 체한 기분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릇을 들어 국물을 호로록 들이켜니 그 과도한 정성의 부담도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가 배신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배신의 맛. 그런데 그 배신의 라면이 참 맛있었다.     


두 번째로 라면을 그릇에 담으며, 어머님들이 나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시는 부담이라 생각하는  내가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내 스스로 항변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정성 들여 맛있게 음식을 주셔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고. 어차피 그것을 다 먹는 것은 불가능한 거였다고. 그리고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체했으니까 내가 그 정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와 어머님의 정성에 감사하는 것과 내가 먹는 양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부모님 집에 가서든, 시댁에 가서든 맛있게 차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도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맛있게 먹었다. 남는 음식이 많아지자 처치가 곤란하셨던 건지, 이제는 엄마와 어머님 모두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내가 먹겠다는 것을 그나마 적당히 만들어 주신다. (내 양보다는 여전히 많이 차리시지만 예전보다는 적게 차려주신다.)     


이제는 친정과 시댁에 다녀오면 라면을 먹지 않는다... 가 아닌 라면을 먹는 날도 있다. 친정 시댁에 다녀오면 밥 하기가 귀찮아서 라면을 먹기도 하고 치킨이나 햄버거를 시켜 먹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라면이 배신의 맛이 아니다. 그냥 밥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고마운 맛이다. 역시 라면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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