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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Jan 18. 2024

#5. 좋아하는 운동이 있나요?  - 몸치의 수영

자신이 궁금하다면 십문십답

직장동료들과 영어책 한 권을 외우는 스터디를 하던 어느 날 책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I have two left feet.     


왼쪽 다리를 두 개 갖고 있다는 뜻, 바로 몸치라는 소리다. 이 표현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왼쪽 다리 두 개 있는 것 같은 사람,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 신경이 없다시피 했다. 길을 걷다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길이 조금만 울퉁불퉁하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보통 사람들은 넘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서 무릎과 손만 다치지만 나는 팔을 뻗지 못해 턱이 찢어져 봉합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올 수’를 받지 못할 때는 체육이 ‘우’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체육 실기는 만점을 받던데 나는 노력해도 기본점수밖에 못 받을 때도 많았다. 고등학교 입시 때 체력장 점수 20점이 있었다. 모두들 20점을 가뿐하게 받았는데 나는 2점이 감점되었다. 윗몸일으키기와 달리기에서 점수가 깎였기 때문이다.     

 

운동을 잘하지 못했지만, 운동을 못한다고 불행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나는 좋아하는 운동이 있었다. 바로 수영이다.      


나는 입이 짧아서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가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30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부모님 생각에는 내가 운동을 하면 배가 고파서 밥을 잘 먹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방학마다 수영 학원을 보내주셨다.    

  

수영은 너무 재미있었다. 수영을 하면 내가 숨을 컨트롤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물속에서 보글보글 공기를 내뱉고 물 밖에서는 공기를 들이마신다. 숨이 컨트롤되는 것이 눈에 보이니 역시 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이나 천장의 타일을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도 좋았다. 물속에서는 어떻게 움직여도 웬만해서는 다치지 않는다. 그래서 물속에서 앞 구르기를 하거나 물밖에서는 하지 않을 이상한 동작들을 하면서 신체의 효능감을 느끼는 것도 좋았다.      


나는 수영을 즐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짧고 가느다란 팔다리를 힘없이 휘적이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수영을 했어도 나는 여전히 마르고 근육이 없고 키도 작았기 때문이다. 수영 수업에서 내가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도 나는 뒷아이에게 추월당하기 일쑤였다. 만약 달리기를 했다면 뒷아이와 부딪혀서 넘어지고 다쳤을 텐데 수영은 다른 사람의 손이 내 몸에 닿는 것일 뿐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수영에서 내가 좋아한 것은 남들보다 빠르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있는 느낌 그 자체였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는 왠지 마음이 바빠서 가끔씩만 수영장을 찾다가 수영을 잊고 지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 생겼다. 어느 날 수영을 하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어린 시절 물속에서 느끼던 편안한 기분이,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날부터 수영이 너무 그리워졌다. 첫째가 만 4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만 2살인 둘째는 가정보육을 할 때였다. 만 두 살은 청개구리병이 걸리는 시기다. 찌여(싫어), 내가 내가 (할 거야), 안 해, 내 거 야를 외치는, 말이 통하지 않던 시기다. 게다가 첫째는 낮에는 수월했지만 밤마다 두 번씩 깨어 울었다. 밤낮없이 칭얼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고갈될 것 같았는데, 수영 꿈을 꾼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무의식의 외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첫째가 유치원에 간 시간에 무작정 둘째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든 수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다니던 산청군 수영장은 모두 네 개의 레인이 있었는데 오전 시간에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나와 아이를 포함해서 5명 정도의 사람들밖에 없다 보니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레인 하나는 오롯이 나와 아이의 차지였다.      


처음에는 아이를 업고 물속에서 걸었다. 아이는 내 등에 딱 달라붙어 물을 느꼈다.

아이가 물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아이를 업고 킥판을 고 발차기를 했다. 그리고 잠수도 가르치고 아이 손을 끌면서 레인을 왕복하기도 했다. 아이를 업은 채로 깊게 잠수를 해서 앞으로 쭈욱 나가면 아이는 “엄마 거북이다!”하면서 정말 좋아했다. 아이와 함께 물속에서 부비고 수영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이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니 둘째는 영법은 몰라도 물에 들어가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수영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첫째도 수영장에 함께 데리고 갔다. 첫째도 업어서 물속을 걷고 잠수를 가르치고 손으로 끌어주면서 시간을 보냈더니 물속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과 수영장에 가면 엄마 돌고래와 아기 돌고래가 된 기분이다. 아이들은 자유형 배영 평영은 모르지만 나를 따라다니며 수영한다. 이제 수영장은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즐거운 장소가 되었다.


재작년 겨울,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본격적으로 배워보려고 수영장에 등록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계단을 헛디뎌 발등뼈가 골절되었다. (역시 나의 운동 신경 ㅜㅜ) 3달을 깁스를 하고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지냈다. 당연히 우리의 수영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작년에는 발이 서서히 회복이 되었고 이번 겨울 방학 때 다시 제대로 수영을 배워보려 했다. 그런데 나와 아이들이 감기 기운을 주고받는 바람에 수영 등록을 하지 못했다. 두 번이나 좌절되긴 했어도 봄이 되면 아이들과 수영을 배울 생각을 하고 있다. 제대로 수영을 배우고 나서는  더 재미있게 수영을 즐기길 기대하면서.


여하튼, 잘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 수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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