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엄마. 예민한 아이 키우기
최근 가족들과 오사카와 교토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우리는 교토에서 제대로 여행을 못했다. 둘째 아이와 남편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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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우리는 점심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앞의 호텔에 짐을 풀었고 저녁은 도톤보리에서 킨류 라멘을 먹었다. 어둑어둑한 하늘, 반짝이는 간판들, 북적이는 사람들.
저녁에 외식을 하다니 감격스러웠다.
우리 식구는 원래 저녁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남편은 미혼시절에는 저녁마다 친구들과 술 먹는 재미로 살았다고 하지만 나는 평생 저녁 시간에 잘 돌아다니지 않았다. 뉴스에 나는 안 좋은 사건들은 대부분 밤. 새벽 사이에 일어나는 것 같았다. 위험한 시간에 굳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지면 몸의 에너지도 쭉 떨어지는 느낌이라 집에서 쉬고 싶었다. 아이들도 나의 영향 때문인지, 나를 닮은 건지 저녁에는 집에서 쉬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진주에는 10월마다 유등 축제를 한다. 오후 5시쯤부터 밤까지 유등을 구경하고 먹거리를 사 먹을 수도 있는데, 집에서 2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유등축제를 보기 쉽지 않았다.
둘째가 7살 때였다. 유등축제장으로 나섰는데 둘째가 유등축제 매표소 앞에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보챘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멋진 유등을 구경해 보려는데 집에 가겠다는 둘째를 보니 다 내 탓인 것 같았다. 나를 닮아 밤에 피곤하고 밤에 무서워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제부터 유등이 많으니 좀 더 보자고 설득했지만 아이가 보지 않겠다고 하니 결국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밤에 돌아다니는 걸 피곤해하고 무서워하는 아이와 도톤보리에 와서 라면을 먹게 되다니...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둘째 날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날 걷기 기록을 보니 25000 보나 걸었다.
셋째 날은 교토의 여우신사(후지미이라이)와 청수사(기유미즈데라)에 갔다.
여우신사에서 아이들은 소원적기 체험도 하고 도라이(문) 사이도 걸어 다니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청수사로 가는데, 빠른 길로 가려고 밋밋한 대로로 올라갔더니 둘째는 지치기 시작했다. 내가 청수사 입구에서 티켓을 사는 중에 아이는 남편에게 이렇게
"나는 이제 그만 보고 싶어."
남편은 너 또 그런다며 화를 냈다. 너는 엄마랑 알아서 호텔로 돌아가고 남편은 첫째랑만 보고 가겠다며 화를 냈다.
남편과 첫째는 청수사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둘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온 이유는 멋진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인 것 같은데, 이제 좋은 경치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돌아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우리 조금만 더 볼까?"
아이를 데리고 청수사 구경을 했지만 둘째는 아빠가 자기에게 화를 내서 겁이 나서 그런지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청수사를 다 보고 자연스럽게 산넨 자카. 니넨 자카로 내려갔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은 둘째에게
"너 이런 뚱한 표정으로 구경이나 제대로 하겠냐. 구경하면서 많이 걸으면 너 또 짜증 낼 텐데 그냥 빠른 길로 돌아가자."며 밋밋한 길로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는 남편 눈치를 보며 역을 향해 걸었고,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애초에 산넨 자카. 니넨 자카로 올라갔더라면, 아니면 처음에 청수사와 산넨자카. 니넨 자카를 보고 나중에 여우 신사를 봤다면 아이도 즐겁게 구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텔로 돌아와서도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남편은 다음날 일정도 둘째가 좀 힘들다고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지 않겠냐며 애들 데리고 다니기 싫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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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둘째는 왜 유등 축제 티켓 판매소 앞에서, 청수사 티켓 판매소 앞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내 과거를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경험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일 앞에서 누군가 "새로운 일, 잘해보자!"라고 이야기하면 갑자기 너무 부담되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새로운 일, 새로운 결정 앞에서 나는 내가 모든 일을 망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망칠 일이 아니라면 최악의 상황이 나를 기다릴 것만 같은 기분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나는 쉽게 포기하고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았었다.
최근 유니클로 창업주 야나이 다다시의 <성공은 하루 만에 잊어라>를 읽었다. 야나이 다다시는 남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위기를 잊지 않고 대비를 하고 성장을 하는 사람이었다. 최악을 늘 생각하지만, 그 최악을 어떻게 대비하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둘째는 최악을 생각하며 포기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포기보다는 대비하고 부딪혀 보는 삶을 아이에게 제안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둘째를 불렀다.
"둘째야. 혹시 청수사에서 앞으로 더 고생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어?"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역시 이 아이도 나처럼 최악의 결과를 생각하고 피하고 싶었나 보다.
"둘째야. 엄마도 어릴 때 너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안 좋은 일일까 봐 도전도 못하고 피한 게 되게 많아. 그래서 많이 발전도 못했고 아쉬운 점도 많아. 우리 앞으로 일이 좀 걱정이 되더라도 한 번 도전해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피하지 말고 대비를 하며 살아보는 건 어때? 그러니까, 엄마 말은, 우리 내일 오사카 시내 구경이 좀 힘들 수도 있지만 시내구경 나가볼까? 어때?"
둘째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알겠다고 했고, 남편에게 사과도 했다.
넷째 날, 우리는 페리를 타고 카이유칸도 가고, 아베노 하루카스 300 전망대도 보고, 덴덴타운 가챠가챠의 숲에서 뽑기도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다리는 무척 아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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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난 너무 쉽게 걱정하고 포기했지만 아이는 좀 더 도전하고 실패도 해보고 이 모든 걸 좋은 경험으로 배우길 빌어 본다. 나도 아이와 함께 좀 더 도전하는 엄마가 되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