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화 - 피아노 대신 회피를 전공한 왕자님

꿈 많은 예술가의 벨기에 정착기

by 벨기에 꾀꼬리

유학 나오기 전에 미팅, 소개팅은 많이 해 봤지만 연애다운 연애는 해 보지 못했다. 그렇게 남자를 좋아했는데, 막상 내가 진짜 원하는 남자는 어떤 스타일인지 몰랐던 것 같다. 유학을 나온 후에는, 음악에 몰두하다 보니 같이 음악생활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에 정착하고 싶으니까, 이왕이면 벨기에 피아니스트면 좋겠지?라는 막연한 상상을 가지고 열심히 유학 생활을 하던 중 피아노를 전공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와, 이 거지 같은 아저씨는 왜 이렇게 나한테 집적대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그의 행색이 흡사 홈리스 뺨치게 자유로웠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계기로 공원을 거닐며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연주할 곡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그를 만난 해 크리스마스에 그의 할머니의 성에 초대되었다. ’ 성이라니?! 왕자님이었어?!‘ 알고 보니, 그의 할아버지는 피카소와 아주 절친한 친구에다가 그 성을 직접 지은 유명한 건축가였고, 그의 가족은 미들 네임이 한 페이지 정도 되는 귀족 가문이었다. 그의 할머니 방에 걸려 있던 값비싼 피카소의 작품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음에는 우리 엄마의 성도 보여주고 싶어.” 내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처음 벨기에 가정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그게 성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처음 만나는 남자의 부모님을 만나 뵀다.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싫지 않았다. 거기에 예술을 사랑하고 존중해 주는 예술가 집안이라니! 그와 썸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고 싶었다. 뭔가 관계가 진전이 될라고 하면 그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일주일 뒤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연락을 해 왔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회피형 남자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자식 회피형이 확실했다. 데이트를 하면서 관계가 진전 되려 하면 일주일간 연락이 없었다. 나를 가지고 노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빠져버린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그의 연락을 기다리게 됐다. 그렇게 썸만 타다가 4월, 내가 인종차별주의 교수님에게서 퇴학 통보를 받고, 그는 진심을 다해 나를 위로해 줬다. 그도 2번의 퇴학의 경험이 있었고, 매학년 유급을 당해서 26살에 나이에 아직 학사를 하고 있었던 걸 알고(어쩐지 피아노 진짜 못 치더라), 동병상련 그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게 됐고, 그 계기로 우린 사귀게 되었다.


나는 곧 독일 입시를 다시 도전하기 위해 잠시 벨기에를 떠날 예정이었고, 우리 사이는 더 애틋해졌다. 5월에 있었던 그의 생일에 또 그의 할머니 성에서 안 되는 요리 솜씨로 한식 한상을 거하게 차려 주었다. 그땐 몰랐지. 그렇게 세상을 다 줄 것 같은 눈을 하고 같이 간 일본 언니한테 그날 밤 키스를 시도했을 줄은. (이 사실은 그와 헤어지고 난 다음 해에 알게 되었다.) 회피형이 아니라 바람둥이였어?! ㅡㅡ


2달 동안 왕복 10시간 걸리는 독일 비스바덴 지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애틋한 만남을 이어가다가, 입시가 안 돼서 결국 그가 그렇게도 노래를 부르던 엄마의 성에서 같이 지내게 됐다.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대책 없이 온 나는, 내가 너무 나약하게 느껴졌다. 시골에서 프랑스어도 배우고, 함께 음악도 하면서 재미있게 방학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그의 부모님의 반응이 너무 차가웠다. 아직도 프랑스어를 안 배웠냐며 나를 불청객을 보듯이 했다. 크리스마스 때 따뜻하게 말해주며 그와 어떡해서든 엮으려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결국 이틀 만에 나는 다시 짐을 싸서 독일 친구네 집에 갔다.


내가 먼저 시간을 가지자 해 놓고, 미친 듯이 매달렸다. 나는 불안형인 게 확실하다. 온전히 사람 자체를 사랑해 본 게 처음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매일 친구와 술을 마시고, 데이팅 어플도 깔아보고, 밤새도록 이별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3달 정도 이별 후유증 겪고, 그에게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다. 안트워프 학교 입시를 보러 벨기에 오는 김에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진짜 이별을 고했다. 나는 진짜 그를 내 마음속에서 끊어내고 싶어서 용기를 낸 건데,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잊을만하면 연락을 해댔다. 그럴 때마다 흔들렸다. 그를 잊기 위한 몸부림으로 미친 듯이 데이팅앱을 했다. 커피 마시고 펍에 가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생활에 활력이 돌았다. 그가 여전히 그리웠지만, 참을만했다. 그리고 그가 잊혀 갈 때쯤, 그 해 겨울, 나는 운명의 짝을 만났다. 다음 화에 계속.


P.S. 그놈은 매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 작년까지 페북, 와챕, 전화번호 등 모든 것을 차단해도 어떻게 나의 부계정을 찾아 연락을 해서 애를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성도 낡아 빠지고, 창가에는 파리 시체만 100개 정도 되고, 이불은 쿰쿰하고. 생각해 보면 왕자님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완전 콩깍지였던 거지! 그나저나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전화가 오려나?ㅋㅋ




*함께라서 단단한 우리의 이야기, 인스타그램 @magazine_dandan을 팔로우하시고 전 세계 각자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글 미리보기부터 작가들과 일상을 나누는 특집 콘텐츠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브런치 매거진용 하단 단단로고.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8화 - 타국에서 안정적이긴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