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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타국에서 안정적이긴 어려운 걸까?

고용불안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by 여름청춘


캐나다에 온 지 6개월 차. 방향을 잃었다 아니 잃어가고 있다.

바로 이전 글을 쓸 때만 해도 캐나다의 생활에 잘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역시 타지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다. 안정이 되어가는가 싶으면 어림도 없다는 듯 새로운 일들이 발생한다. 매달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곤 했는데, 작게는 갑자기 충치를 때운 보철물이 떨어진다거나, 하나밖에 없던 백팩의 지퍼가 고장 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던 카페에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해고 통지를 받는다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 등 매 달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찌어찌 잘 해결하며 타지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타국생활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고 있다.


사건의 발단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고용불안'이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나는 외국인친구들과 일하는 카페에서 바리스타 그리고 한인들과 일하는 일식집에서 서버 이렇게 투잡을 하고 있었다. 두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힘들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디든 그만두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었기에 하루에 13시간 넘게 일하며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게 지낸 지 두어 달쯤 지났을까 갑자기 일식집 사장님이 바뀌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존 사장님께서 가게를 내놓은 지 한참 되었었다고 한다. 그러다 마침내 가게가 팔렸고, 새로운 오너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너가 바뀐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오너부부가 함께 출근한다는 공지를 받았고, 여사장님이 서버로 함께 일하는 시스템으로 변경되었다. 사장님들과 같이 일하는 건 전혀 상관없었지만 기존에 혼자 일하면서 두둑이 받았던 팁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내가 초밥집에서 일했던 이유는 '팁' 단 하나였고, 팁이 줄어든다면 더 이상 일식집에 다닐 이유가 없었다. 새로 온 오너는 본인의 입맛에 맞게 가게의 운영방식을 하나씩 바꾸길 원했고, 기존의 시스템이 더 익숙했던 나는 하나 둘 불편해지는 부분도 생기면서 가게를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오너부부와 잘 얘기하며 마지막 근무일을 정했다. 그렇게 나는 카페에서만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상의 흐름이 조금 바뀌었지만 다시 루틴을 잡아가던 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지금 일하던 카페마저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린 것이다. 도대체 힘든 일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이런 클리셰는 왜 틀린 적이 없을까.


카페는 아직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두 달 뒤 그만 둘 예정에 처했다. 이유는 휴가 때문이었다. 두 달 뒤 2025년의 최대 황금연휴인 추석에 한국에서 시가족이 캐나다로 여행을 오게 되었고, 함께 퀘벡여행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정도의 휴가가 필요했고 나는 2달 전인 현재 dayoff 를 올려두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요청이 '거절'되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입사한 지 1년 미만인 근무자는 2일 이상 dayoff를 쓸 수 없다는 고용 규칙이 생겼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입사시점에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 비자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이곳에 일만 하려 온 게 아니라 일과 여행을 모두 즐기러 온 것인데 갑자기 생긴 이 카페의 고용 규정은 나와 같은 워홀러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내용이었다. 매니저도 이 사실을 알고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Joy. 하지만 윗선에서 이미 정해버려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일주일 휴가를 가려면 카페를 그만둬야 한대. 네가 원한다면 일주일 뒤에 다시 돌아와도 좋아'. 아니, 다시 돌아올 거면 이런 규칙을 도대체 왜 만들려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은 한국에서 가족이 와서 가족을 보겠다는 건데, 그마저도 허용이 안 되는 이 상황이 화가 났다. 매니저에게는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다.


일이야 다시 구하면 된다. 하지만 일을 구하면 바로 트레이닝 기간 동안 팁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기회비용을 따져보았을 때 나에게 손해였다. 팁을 떠나서라도 또다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레주메를 돌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합을 맞추고 일을 배우는 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이제 겨우 안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야 하다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30년을 넘게 살아가면서 이런 고용 불안에 놓여본 적이 없었다. 타국에서 맞는 고용불안은 더 마음을 시리게 했다. 한국에서 멀쩡히 회사 다녔으면 제대로 쌓여있는 연차 차곡차곡 잘 쓰면서 일주일 여행쯤은 거뜬히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겨우 일주일 쉬는 것 만으로 가게를 그만두라는 소리나 들으려고 내가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허무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달리 방도는 없었다. 나는 한 낱 널리고 널린 외국인 노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오늘도 나는 일을 하지만 이곳을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모험을 떠날지, 아니면 더럽고 치사해도 다시 돌아올지 고민하며 커피를 만들었다. 곰곰이 더 생각해 보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방법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세상 참 쉬운 게 하나 없다. 그러니 이게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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