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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이 세상에서 제일 스위트한 내 편

꿈 많은 예술가의 벨기에 정착기

by 벨기에 꾀꼬리


전 남자 친구와의 끝맺음을 뒤로 데이팅앱에 중독이 되었다. 나는 데이팅앱을 정말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미친 듯이 하고 있더라. 매칭이 되긴 했는데, 그 전날 취해서 매칭이 된 건지, 도무지 내 스타일이 아닌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끈질기게, 그리고 충실하게 늦으면 늦는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바로바로 답장을 했다. 그는 데이팅앱에 회의감에 빠져있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메시지를 주고받은 지 2개월 만에 만나기로 했다.




나는 정말 그에게 관심이 없던지라, 그만 늦잠을 잤다는 핑계로 저녁 6시 약속에 1시간을 늦었다. (나는 그때 개망나니 인생을 살고 있었다. 퇴학의 여파가 컸다고 해 두겠다.) 그의 첫인상은 그냥 그랬다. 재미없는 모범생정도. 그래서 계속 내 룸메이트와 DM만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웃으며 내 반응을 살폈다. 그와의 만남이 너무 지루했던 나머지, 나는 내 룸메를 불렀다. 그가 귀엽다고 한 룸메의 말을 듣고 한 번 더 만나 보기로 했다.




두 번째 데이트는 크리스마스 마켓의 스케이트장. 그는 나보다 스케이트도 못 타면서, 자꾸 돌아보며 내가 괜찮은지 살폈다.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그가 잡아줬다. 참 이상했다. 근처에 사는 그의 친구가 자신을 보러 왔단다. 그의 친구들은 힘내라며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 왜 유난이지? 그날 나는 그를 집으로 초대해 룸메와 함께 비빔밥을 먹었다. 그가 조금 편안하게 느껴졌다.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헤어질 때 그가 말했다. 사랑한다고.




뭐?! 두 번째 데이트에 사랑한다니! 미친 건가? 알고 보니, 나는 그의 인생 첫 데이트 상대였고, 그는 데이팅앱 스와이프 다섯 번만에 나를 만났다. ’ 27살의 나이 먹고 데이트 한 번 못 해 본 게 말이 되나? 나보다 심한데?’ 그는 나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주일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내 답장에 칼답으로 성심성의껏 그의 마음을 표현했단다. 그리고 우리의 첫 데이트를 위해 10년 만에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연락을 했단다. 우리의 데이트가 정해지자마자 그 친구와 내가 사는 지역의 모든 좋은 술집을 사전 답사했단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그는 매일 편도 1시간 지옥의 교통체증을 버텨가며 우리 집에 왔다. 사귄 지 한 달이 채 안 돼서 우리는 나란히 코로나에 걸렸다. 우리 집에서 함께 격리를 한 이후로, 그는 여성 플랫이었던 우리 집에서 6개월을 무전취식했다. 물론 그가 내 자매 같은 룸메들의 설거지와 요리를 도맡아 하는 암묵적 합의하에. 그 이후로 우리는 집을 구해 동거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미래를 꿈꾼다.




얼마 전 그는 나와 함께 한국의 부모님을 방문하여 결혼을 허락받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충실한 기사라고, 평생 나 하나만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순간 그가 나의 백마 탄 왕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웅장한 성은 없지만, 나에게 충실하고 나에게 평생을 바칠, 그런 남자가 내 인생에 나타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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