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끔 이상한 모습으로 자란다

'왕부리 팅코'를 아시나요

by 신지후

고등학교 2학년 때, 즐겨보던 만화가 하나 있었다. 왕부리 팅코.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올 만큼 귀엽고 엉뚱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만화였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들이 종종 있었다.


어느 날 팅코의 정수리에서 검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자라기 시작한다. 점점 길어진 머리카락은 엔젤섬의 끝에서 끝까지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다들 상서롭지 못한 불길한 징조라고 말했고, 결국 팅코는 마을에서 추방 명령을 받는다.


그날 밤 팅코는 눈물을 흘리며 잠들고, 다음 날 아침 머리카락은 팅코도 모르는 사이 지붕을 뚫고 솟아오르더니 거대한 나무가 된다. 벚꽃처럼 생긴 분홍 하트잎이 흩날리고, 마을은 환해졌다. 알고 보니 그 머리카락은 사랑의 근원이었던 것.


당시 스무 살이던 작은언니랑 나는 TV 앞에 앉아 그 장면을 함께 보며 울다가 웃었고, 오래도록 우리 둘만의 추억이 되었다. 팅코의 머리카락이 사랑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우리 마음도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은 언제부터 사랑이 되는 걸까. 왜 우리는 그것을 늦게 알아보는 걸까. 왜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사랑은 낯설고, 기묘하고,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 일은 쉽지 않지만, 지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랑은 때로 이상한 모습으로 자라고, 이상하다고 버려졌던 것에서 사랑이 자라날 수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 왕부리 팅코는 그런 걸 가르쳐준 만화였다.


지금도 작은언니와 나는 그 시절의 왕부리 팅코 이야기를 꺼내며 조용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