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택의 무게
꿈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숏츠영상을 보다가 게임광고 같은 게 떴어. 약간 흥미가 생긴 나는 휴대폰게임 지시대로 화면을 터치하기 시작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 번째 게임화면에는 귀엽게 생긴 직장인 정도 돼 보이는 남성 캐릭터들 여럿이 정장을 입고 서있었어. 으음? 이게 무슨 게임이지?
문득 첫 번째 화면에 두 가지 선택지가 떴어.
"1. 가만두지 않는다" vs "2. 가만둔다"
그 게임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화면을 터치하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문항이 주어지는 식이었던 거야.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첫 번째 질문에 1번을 선택했어. 느낌상 2번 가만두는 것을 선택하면 그대로 질문이 종료될 것 같았거든.
그렇게 두 번째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고등학생쯤으로 추정되는, 푸른색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들 세 명이랑 브라운 계열의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 한 명, 그렇게 총 네 명의 캐릭터가 웃고 얘기 나누며 서있는 화면이 나왔어.
이번에도 두 가지의 선택지가 제시됐어.
"1. 복수를 진행하기" vs "2. 용서하기"
뭐 이런 말들이 적혀있던 것 같아. 나는 마음속으로, '어?! 뭐지? 아까 가만두지 않는다는 게 복수를 의미하는 거였고, 가만히 두는 건 용서를 뜻하는 거였나?' 그때부터 좀 당황스럽더라. 아무리 재미로 하는 게임이라지만 복수니 용서니 하는 무거운 단어들이 등장하니까 왠지 내 입장이 난처해졌어. 쉽게 고르면 안 될 것 같았어.
첫 번째 화면의 보기를 호기심에 곧바로 고를 때와는 다르게 머뭇거리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우물쭈물 1분 이상 시간을 끌었더니, 도움말이라고 해야 하나? 안내문구가 한 줄 뜨는 거야.
"앞에 고른 것과 같은 보기를 고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걸 보니 마음이 놓여서 다시 아까처럼 1번을 선택해 버렸어. "1. 복수를 진행하기"를 누르고서 내심 귀여운 복수(?)를 상상했던 것 같아.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안내멘트가 나오고 로딩이 조금 길어지네 싶더니 드디어 세 번째 화면으로 넘어갔는데, 화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내레이션 성우 목소리도 치직치직 갈라지면서 아주 음산하게 게임 스토리가 전개됐어.
게임의 전체 스토리는 학교폭력, 드라마 <더 글로리> 서사 같은 어두운 이야기였어. 어쩌고 저쩌고 마지막으로... 세 가지 보기가 빠른 템포로 촤르륵 등장했고 렉이 걸린 건지 세 가지 선택지 모두 터치가 먹통 됐는데;;;
아마도 2번이 "그냥 지나쳐간다"였던 것 같았고, 1번은 "칼로 찌른다(칼부림 어쩌고;;; 설명이 나오다가 말았어)"였던 듯해. 순간 소름이 돋고 멍해지더라;;; 어떻게든 2번 "그냥 지나쳐간다"를 선택하려고 안간힘을 썼어. 3번은 "복수와 용서의 기회를 전부 포기하는(으악. 내 삶을 포기한다였나?!;;;) 엔딩"이라서 그것도 안 내켰어.
그러다가 화면 위에 떠다니던 화살표 모양의 조그만 커서가 부엌칼 모양 흉기로 돌변하더라고. 어른 남자 셋, 교복 입은 여고생 하나, 성별이 다른 어린이 캐릭터 둘 이렇게 여섯 명이 모여 서있는데 부엌칼 커서가 저절로 옮겨 다니며 어른 남자들 캐릭터부터 마구잡이로 여기저기 찔러대고 캐릭터들이 작은 화면 안에서 도망도 못 가고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고 울고 피 흘리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금세 난장판이 되었어.
나는 놀라고 끔찍해서 계속 2번과 3번을 번갈아가며 빠르게 눌러댔는데 결국 캐릭터들이 다 죽고 나서야 게임창에 적막이 흐르고 화면이 어두컴컴해졌고, 얼마 안 지나서 내가 손에 땀이 나도록 들고 있었던 스마트폰은 배터리 방전이 됐어. 오늘 새벽에 꾼 기묘한 악몽은 꿈인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자각몽이라서, 내 뜻대로 재미있고 신나는 스토리의 꿈을 꿀 거라고 자신만만했다가 나는 너무 무서워졌어. 그래도 뭔가 크게 깨달음을 얻어서 다행스럽고, 좋기도 해.
평소에 "악을 악으로 되갚아선 안 된다"던 우리 엄마의 말씀도 엄청 와닿았고, 별것 아니게 보이는 선택이라도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함부로 무심코 아무거나 선택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어. 그리고 나의 복수 때문에 의도치 않게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선뜻 복수를 결심할 수 없겠지. 심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증오를 양분 삼아 응징하는 결말은 오히려 나에게 더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도 있을 거야. 남을 용서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게 어떤 건지 너무 알 것 같은 기분이야. 사는 동안 좋은 방향을 지향하고 뭐든 잘 선택하는 안목과 사리분별력을 키우고 싶어.
나는 웬만한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웠고 많은 걸 이 꿈을 통해 깨우쳤다고 생각했어서 상세하게 기록했는데, 왠지 지금은 혼자만의 감상에 함몰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늘 안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