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아침에 기묘한 꿈을 꾸었습니다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 A씨가 있었다. 그 여성은 늘 무력감에 시달렸으며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노트에다 수업 중에도 틈틈이 죽고 싶다, 나의 삶은 더 이상 연명할 가치가 없다, 따위의 말들을 적어 넣곤 했다. 그는 무료한 삶에서 도무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무감각한 나날들을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그랬던 그에게 사건이 하나 생겼다. 국립도서관에서 원래 대출할 수 없는 고서적을 통사정 끝에 겨우 구했는데 그걸 누군가 훔쳐갔다. 나는 안다. 친하게 어울리던 어떤 동료의 짓이었다. 고가에다 역사적 가치가 엄청난 책을 그 사람 몰래 슬쩍한 것이다. 그의 삶에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전보다 더 심한 불면에 시달렸다. 이제 죽음도 마음껏 꿈꿀 수가 없는 딱한 처지가 된 그. 잃어버린 책을 찾아내든가 책의 역사적 가치에 부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두 가지 다 그에게는 방법이 요원했다. 그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커져만 갔다.
몇 안 되는 친구 중에 기자가 한 명 있었다. 우연히 그의 딱한 소식을 접한 친구는 그의 일화를 기사로 보도했다. 의외로 예상 밖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이 쏠려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인터넷상에서는 네티즌들의 갑론을박, 그 기사를 두고 수많은 댓글로 공방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중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들의 주된 요지는 "누가 그 여자의 자살권을 박탈하는가?", "그 여자의 자살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식이었다. 존중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걸까.
베스트댓글들에 나는 차례로 반대를 누르며 내 의견 몇 마디를 남겼는데, 내 말의 요지는 다른 댓글들의 의견과 사뭇 달랐다. "자살권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다. 한 사람의 삶이 그토록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적이라면 우리는 그의 생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방안부터 모색해야 한다. 그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는 일이라고 해서, 자살권을 인정하는 일이 그 사람을 위하는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을 나뿐만 아니라 실은 세상 모두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꿈_2011년 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