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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연 Jul 04. 2023

정성 한아름

강화도에서 온 택배박스

오랜만에 동생이 여름철 건강을 염려하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우체국 택배의 도착을 알리는 문자가 있어 뭔가싶어 열어보니 이미 도착해있다네요.

슬리퍼 질질 끌고 현관밖에 나가보니 커다랗고 무쭐한 박스가 나 여기있소 하고 기다립니다.

강화도에서 온 박스.

그저께 강화도로 이사한 둘째누님께서 손수 지으신 감자를 보내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는걸 그새 잊고 있었네요.

아내와 함께 박스를 개봉했습니다.

순간 울컥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이렇듯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반정도는 감자이고, 그것도 흰감자와 자색감자로 섞여 있고,  동그란 호박두개, 대파 한단, 신문지로 정성껏 감싼 상추 한아름, 자색양파 세개, 흰양파 두개, 앙증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통마늘 여섯개.....

나이를 먹으면 눈물이 자꾸 난다더니만 눈물이 핑 돕니다.

세상에 이렇게 정성스러운 물건이 있을까요.

누님은 짐을 싸는 내내 보잘것 없는 못난 동생을 생각했을겁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누님을 생각하며 짐을 풀고 있습니다.

감사, 고마움...  이런 단어는 근처에도 올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나는 행복해합니다.

정이라는 것...

느낀다는 것....


쇼팽이 울려퍼집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광할한 대지가 화면 가득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넓은 누님의 정성이 내마음에 펼쳐집니다.

아내는 이 귀한걸 단 한개라도 썩혀 버려서는 안된다는 비장함으로 무장합니다.


밖에는 부슬부슬 장맛비가 내립니다.

그리고 누님의 동생사랑이 내가슴에 내립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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