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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연 Apr 22. 2023

소리"음"  즐길"락"

작은 초상화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아니 음악을 좋아한다. 아니 오디오를 좋아한다. 나는 제법 노래를 좋아한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사랑도 어느정도 깊으며, 젊었던 시절에 꿈꿨던 리스닝룸도 아직 져버리지 않은 꿈중 하나다.

나는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곧잘 들으며 살았다. 아내와 나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했다. 그 당시 잠시 쉬는  시간에 계단실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종종 노래를 불렀다. 계단실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서 목소리를 울리게 만들었고 조금만 목소리를 가다듬어도 평소 내가 지닌 목소리의 서너배는 좋게 들렸다. 내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르니 내가 노래를 참 잘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나중에 털어놓은 사실이지만 자기는 목소리 좋은 남자가 좋은데 그때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호감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청년시기에는 신촌의 한 경양식집에서 클래식음악  DJ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음악을 잘 알아서 클래식음악 DJ를 한 것이 아니고 시골에서 상경해서 밥얻어 먹는 대신 빈자리를 채운 것 뿐이었다. 그때 지금도 읊조리는 오페라 아리아들을 알게 되었고 누구누구의 몇번 교향곡 등 얕고 넓은 음악지식을 습득했다.  카라얀의 미들네임이 von인데 영어식으로 불러서 "본"이 아니라 "폰"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요즘은 라디오나 TV에서는 우리나라 노래, 즉 트롯트나 K-Pop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라디오만 켜면 팝송이 밤낮으로 흘러나왔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클래식을 들으므로 뭔가 있어보이는  미묘한 우월의식 같은 것도 느끼며 살았다. 가끔 시간이 나면 종각근처나 명동에 있던 클래식 감상실에 가서 깊은 의자에 몸을 파뭍고 손가락으로 지휘흉내를 내며 음악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봤을까 창피하다.

DJ라는걸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오디오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파워앰프는 무엇이 유명하고 프리앰프는 무슨 브랜드가 최고고 스피커는 어떻고 턴테이블은 어떤걸 택해야하고 카트릿지는 무엇 아니면 안되고.....

매월 서점에 들러서 월간 오디오 잡지를 보면서 꿈 아닌 꿈에 젖기도 했다. 내입에서는 세계적인 오디오브랜드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세운상가나 용산 전자상가에 있는 오디오샵엘 가고 청음실에서 테스팅을 해보면서 짧디짧은 지식으로 아는척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 하게 자연스럽게 음에 대한 변별력이 생긴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구성악기들의 소리가 분리되어 귀에 들어왔고 그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장대한 사운드로 가슴을 쳤다. 지금도 연주를 듣거나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때면 음정과 박자, 그리고 화음의 실수 등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나는 아직도 노래를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오디오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나는 어떤 노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를 아는 노래가 별로 없다. 찬송가나 CCM도 마찬가지다. 자막시설이 없으면 노래를 끝까지 할 수가 없다.  누가 노래를  시키면 참 난감하다.

나는 지금도 클래식음악의 족보를 잘 모른다. 무엇이 몇번인지, 누가 작곡한 곡인지도 잘 모른다. 너무 유명하다거나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을 빼고는 기억도 안난다.  음악이란 소리"음"", 즐길"락"이 아닌가. 왠지 가사나 그 음악의 배경보다는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한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교향곡은 1악장부터 4악장 마지막까지 뜻도 모르면서 거의 틀리지 않고 읇조릴 수 있다. 누구의 곡인지도 모르면서 듣고 또 듣는다.  굳이 작곡기와 작품을 연관지으며 듣기보다는 흘러나오는 음악 자체를 받아들이고 느낀다.  암기식, 객관식 교육의 결과물로 무슨곡의 작곡가는 누구,  어떤 작곡가의 대표곡은 무엇, 하는 식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을 음악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술사적으로 무슨파에는 누구누구가 있고 그 특징은 무엇이고 대표작으로는 뭐가 있다는 식이다. 그 대표작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런식으로 음악이나 술을 접하기는 싫었다. 보고 듣고 느껴서 정말이지 내자신이 생각했을때 너무나 좋다고 느꼈다면 그 작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고 연구할 것이고 내가슴속 깊이 간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참 좋다라는 생각과 함께 행복감을 느끼면 되는거 아닌가..


나는 지금껏 소위 좋다는 오디오를 한번도 내소유로 가진 적이 없다. 특히 유명하다는 외국산 오디오는 더욱 그렇다. 결혼하고 신혼방을 꾸렸을때 생전 처음으로 국산 스피커를 산 것이 유일하다.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고 평범한 보급품이었다. 알텍랜싱100, 아직도 그 스피커가 눈에 선하다. 아내는 아직도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단칸방에 살면서 어느날 스피커 두짝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오더란다. 참 철도 없다고 생각했더란다. TV 드라마를 보다보면 소품으로 둔 오디오가 눈에 쑥 들어온다. 반갑기 그지없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용산근처엘 가면 전자상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곳을 재건축한단다,  표현되지 못하는 아련함이 몰려온다. 나의 젊었을때의 한페이지가 찟겨 나가는 것 같다.

 

이젠 노래를 한자락 불러보려고 해도 성대가 허락을 하지않는다. 조금만 고음을 올려도 삑사리가 나고 만다. 음악을 듣겠다고 폼잡고 거실소파에 앉으면 음악보다는 TV드라마나 유투브로 리모컨이 움직여진다. 꿈에 그리던 오디오 하나를 사고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 돈이 있으면 아파트 대출이자갚지 오디오를 살 용기가 나질 않는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그리고 나의 젊었던 시절도 그 세월에 실려 속절없이 날아가 버렸다. 내가 좋아 했던 것들도 내가 바랐던 것도 모두 빛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있어서 행복했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7080팝송을 작은 부루투스 스피커에 구동시킨다.

내마음에는 노이웨스트민스터에서 울리는 음보다 더 정겹다.

눈을 감는다.

그러면 저편에서 손가락을 까닥이며 커다란 해드폰을 낀 핼쓱한 젊은 내가 소리없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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