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연 Apr 24. 2023

은퇴

58 개, 59돼지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이제 다 내려놓고 가란다.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가란다. 자기들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가란다. 법적으로 그렇단다. 울화가 치밀고 무엇이라도 잡아 두들겨 패주고 싶다.

스물여섯부터 지금까지 부려먹었으면서 미안하단 말 한마디는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이제부터는 쉬란다.  너희들도 생각을 해봐라. 그게 어디 쉬는거냐.  


언젠가부터 은퇴에 대한,  또는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TV를 보던가 유투브를 보던가 이에 관한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했다. 내 유투브 구독란에는 대부분 이런 주제의 유투버들이 점령을 한지 오래다. 슬기로운 정년. 올바른 은퇴준비 그리고 노후준비는 이렇게 이렇게 하라는게 대부분이다.

안다,   

너희들이 그렇게 쌍나발을 불지않아도 안다. 다 이해한다. 그러나 내마음은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바로 앞까지 온 은퇴를 나는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다 . 이 유투브 저 유투브 짜집기해서 만들어진 내용들, 오년전이나 지금이나 씨하나 틀리지않고 입을 터는 노후설계 전문가들.  젊은 녀석이, 노후란 노자도 만나보지 못한 대갈빡에 소똥도 안벗어진 녀석이 노후준비는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떠든다. 마치 결혼 한번 해보지 않은 중이 부부생활에 대해서 훈수를 두는 것 같다. 누가 누굴 가르칠려고 덤비는가?

니들이 게 맛을 알어?

언젠가 건강프로에 나온 가정의학과 의사의 말이 기억난다. 건강하게 살려면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으란다. 그래 이것도 안다. 과일,채소 좋은거 잘도 안다마는 과일값이 누구집 똥개 이름인가? 삼시세끼 과일 먹으면 참 좋겠다마는 그렇게 먹을만큼 주머니에 전이 넘치질 않는다.


58개, 59돼지들,

전후에 공장에서 찍어내듯 태어난 세대들, 그때는 한해 백만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났고 18세가 될때까지 12만여명이 하늘나라로 갔으며, 예비고사를 본 아이들이 50만명이 넘었다.  고등학교 동창회 명부를 보니 480명중에서 서른두명이 죽었단다. 그런 개미떼 같았던 새대는 지금 모두 은퇴라는걸 했고 뭘 하면서 소일을 하는지 눈에 보이지를 않는다. 그들이 궁금하다. 너희들도 나를 궁금해 할지 모르겠다.

이제 이 세대들은 힘이 없다. 식들이 잔소리를 해도 깨갱 소리도 못내고 겸연쩍게 웃을 뿐이다. 이 나라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이 세대들은 종이신문만 열심히 읽고 세뇌되어 그렇게도 욕하고 싸웠던 수구꼴통들이 잘한다고 투표를 해준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는거다.

거울을 본다. 머리카락은 새치를 넘어서 백발이 되어 간다.  마누라에게 염색해 달라고 부탁하기가 쪽팔려서 '꽃을 든 남자' 염색약 하나 사서 직접 쳐바른다.

나는 몰랐다. 아버지께서 식사를 마치시고 왜 더럽게 밥상머리에서 이를 쑤셨는지를,  왜 소변기와 친구되어 그렇게 오래 서 계셨는지,  앉았다 일어설때 냉큼 일어나면 될 것을 왜 준비동작이 필요하고 "아야야~" 소리를 버릇처럼 내셨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러나 이제 안다. 아버지의 그때와 나의 지금은 데칼코마니다. 똑같다.

"니도 한번 늙어봐라, 이노므 자슥아"  아버지의 그 말씀이 나도 모르게 내입에서 튀어 나온다.

문뜩 손을 본다. 내 손이 아니다. 굵게 튀어나온 손가락 마디며, 짜글짜글 잔주름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살면서  손을 자세히 볼 짬이 그렇게도 없었나. 짬이 없어서 못본게 아니다. 그동안은 젊은 피부를 그런대로 유지를 하고 있었으므로 변하는걸 느끼지 못한거다.

거울을 본다. 눈 아래 불룩이 지방층이 쌓였고, 입가에는 팔자주름이 깊게 고랑을 팠다. 모가지 피부는 값싼 레자가죽처럼 움직일때마다 주름이 잡힌다.  앉았다 일어나 보자. 뚜둑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머리카락은 놀랍도록 가늘어졌다.  누님은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철사라 했었다. 이발소에 가면 아저씨가 바리깡 부러질까 겁난다고 했었다.

자꾸 화가 난다. 작은 일에도 화부터 난다.

전보다 목소리가 커진 아내의 잔소리에 화가 난다. 자식들의 작은 언행도 못마땅하다. 담장 구석에 몰래 버려진 캔커피 깡통을 보면 잡아다가 패주고 싶다. 주차장에 담배꽁초 버린놈을 잡아다가 족치고 싶다. 아파트 단지 공원에 개똥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뉴스를 보다보면 세상에 죽일놈들 천지다.

개, 돼지들아. 너희들은 안그러냐?


온전한 노후를 위해서는 적게 잡아도 월 350만원은 있어야 한단다. 노후의 품위를 지탱하려면 400만원은 있어야 한단다. 400만원이면 연봉으로 따지면 세전 5,000만원이 넘는다. 가능한가? 70, 80대 노인이 월400만원 버는게 이 나라에서 가능한가? 대한민국 은퇴자들중 몇%가 죽을때까지 이만한 월수입을  올리는 범주에 속할 수 있을까? 이게 안되면 개 돼지처럼 살아란 말인가? 그래서 개띠 돼지띠로 태어났나 보다. 무슨 근거로 이따위 통계수치를 제시하는가?

, 돼지띠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집한칸과 자식들 교육비로 모두 소진해버렸다. 예금통장에 돈이 없다. 그래서 집값 오르게 해주는 정권이 장땡이다. 자기들이야 도둑질을 해먹든말든 상관없다. 노후의 마지막 지킴이는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연금개혁한다는데 만약 내가 받을 연금액수가 한푼이라도 줄어들면 그 정권은 모두 죽일 놈이 되는거다. 두고봐라. 죽었다 깨어나도 투표 안해준다.

그런데 죽을때까지 350만원, 400만원을 매월 마련하라니... 제정신으로 말하는건가 싶다. 


인생 90세를 산다면 아직 30여년이 남았다. 누가 그러더라. 재수없으면 100세까지 산다고...

이 기나긴 세월을 무엇을 하며 살아야 되는걸까? 어떻게 살아야 되는걸까?

무엇이든 일을 하란다. 일을 하자니 아프다. 일을 하자니 겁이 난다. 일을 하자니 용기가 안난다. 일을 하자니 만사가 귀찮다.

쉬고 싶다. 눕고 싶다.

점차 근육은 빠져나가고 근력 또한 약해진다.

운동하란다.

안다. 운동해야 한다는거. 그러나 귀찮다. 한다고 해도 억지로 한다. 두려워서 한다. 막연한 두려움은 내 모든 각과 행동을 지배한지 오래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니도 늙어봐라,  이노므 자슥아"


그 날을 향한 초시계는 쉼없이 째깍거린다. 이제 얼마 남지않았다. 남들 다 하는 은퇴라는걸 나도 한다. 님들 다 하는데 들 못하랴.

그러나 내 손에서 일을 놓는다는 것. 나는 이게 정말이지 두렵다. 이때껏 해오던, 무의식중에도 반복하던 일들에서 손을 떼면 이 손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무엇으로 내 아내를 먹여살려야 하나.


오늘도 나 먹으라고 주방에서 덜그덕 거리는 아내의 뒷모습을 본다.

가슴이 먹먹하다. 짠한 마음을 애써 감춘다.

아이들이 왔다 갔단다. 주말인데도 자지도 않고 콧배기만 비치고 갔다고 아내는 내내 섭섭한 기색이다. 애들 온다고 이것저것 음식이라도 만들었나보다.  그런 아내를 보고있자니 괜히 화가 난다. 애들이 빨리 가서 화가 나는게 아니라 아내 마음이 안좋은걸 보는 것이 화가 난다.  누구라도 아내를 나쁘게 하면 화가 난다.

"니들도 늙어봐라. 이노므 자슥들아"





작가의 이전글 소리"음" 즐길"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