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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

by 김지민

2024년 11월 10일 >>>


어느 집의 미국 유학 가 있는 아들이 부모님께서 경영하시는 사업장으로 안부 전화를 걸었다. 항상 엄마하고만 통화를 했는데, 그날은 아빠께 직접 근황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꼭 한 번 드리고 싶었다. 객지생활에 철이 들었는지, 아빠의 은혜를 잊고 산 것이 너무 죄송했던 것이다. 마침 “여보세요” 하고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

“응, 엄마 바꿔 줄게.”

“아빠, 그게 아니고요, 오늘은 아빠랑......”

“왜, 돈 떨어졌냐?”

“그게 아니라, 그 동안 한 번도 아빠한테 감사......”

“야, 너 술 마셨냐?”


1년 반쯤 됐나, 운전 중에 이 얘기를 채널 106.9 극동방송에서 듣고 거의 눈물이 날 만큼 웃었다. 지금도 여전히, 절로 킥킥 나오는 웃음이 좀처럼 멈추질 않는다. 그래, 누구냐, 잘 있느냐, 가벼운 인사 한마디 없이 즉각 나오는 첫 마디 “응, 엄마 바꿔 줄게”는, 하하, 나랑 100% 똑같다. 그 아빠의 둘째, 셋째 마디는 우리집 사정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잘 안다. 아들의 말을 자꾸 가로채는 아빠의 그 심정을. 용건만 간단히,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은 것이다. 평소에 워낙 서로 “소통” 없이 살아온 탓에, 길어질 것 같은 대화는 무조건 부담스러운 것이다.


아들이 만일 돈이 떨어졌다 했으면 “얼마? 그래, 알았다. 내일 부쳐 줄게.” 하고 끊었을 것이다. 만일 술을 마셨다 했으면 “내일 맑은 정신에 통화하자”며 또 금방 끊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진짜로 이튿날 전화를 하면, 평소처럼 “응, 엄마 바꿔 줄게” 하고 황급히 아내를 바꿔줬을 것이다.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아무튼 이 같은 라디오 방송이나 TV 연속극이 달리 재미난 것이 아니다. 마치 몰래 훔쳐본 듯 “내 얘기”를 하고 있으니 신기하고 유쾌한 것이다. 하하, 만일 그 아빠와 내가 실제로 만난다면, 우리는 눈빛으로만 서로 몇 시간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고, 그가 바로 나다.


우리 아이들은 대체로 미국시각 저녁/밤, 한국 오전 중에 전화를 한다. 그런데 그때는 주로 아내가 화단, 마당, 창고, 담벼락, 주차장, 옥상, 지붕 어디선가 조경, 잡초제거, 청소, 철거, 시설점검, 보수/보강, 페인트 작업 등을 하고 있기 일쑤. 따라서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면 내게 전화가 온다. 방에서 일하다가 그렇게 아이들 이름이 뜨면, 나는 내 다락방을 부리나케 뛰어 내려간다. “응, 엄마 바꿔 줄게.” 이 대사를 가능한 한 생략하려고 총알처럼 날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금방 찾아지면 핸드폰을 던져 주고 돌아온다. “그렇지 않을 때만” 통화 버튼을 눌러 하는 수 없이 그 대사를 읊고 계속 아내를 찾는다. 위의 아빠보다 내 증세가 약간 더 심각한 것이다. 자식들이 싫어서 대화를 피하는 것이 아니다. 한두 마디 하고 나면 더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살갑지도 않지, 기러기 아빠를 오래하여 서로 공감대도 없지, 원래부터 “자식은 방목”이라며 다 저희들 뜻대로 살게 내버려뒀지, 근본적으로 대화가 “습관화”돼 있지 않은 것이다.


아들의 경우, 밥은 잘 챙겨 먹느냐, 직장은 재밌느냐, 기본 인사치레를 하고 나면 벌써 말문이 막힌다. 요즘 같으면 “사귀는 애가 팔에 문신 했다면서? 아빠 친구 딸들 문신 없고 착한 애들 많은데 좀 만나 볼래?” 하고 싶어도 새삼 입이 안 떨어진다. 이놈이 교회라도 다니면 “이번 주 설교는 어땠노?” 하고 묻기도 하겠지만, 교회도 안 간다. 게다가 “롹밴드(rock band) 공연 보면서 두 팔 흔드는 거나, 교회 안에서 그러는 거나, 결국 다 똑같은 거예요.”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간격을 메워야 할지 막막하다. 딸도 마찬가지다. 애들 잘 크느냐, 사위도 잘 있느냐, 하고 나면 대본에 더 이상 대사가 없다. 평소 지 엄마한테 “나는 아빠가 사업 망해 주신 것이 가장 감사하다” 하는 아이니, 더욱 할 말이 없다. 브릴리언트(brilliant.org) 회사일은 서로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장과 계약직, 우린 신분격차가 너무 크다. 간혹 무슨 좋은 제안이라도 할라치면, “아빠, 나는 그런 거 몰라요. 담당자랑 얘기하세요.” 하고 딱 자르니, 그간 자존심 충분히 다쳤다. 결국 내게 최선은, 핸드폰 들고 “최대한 빨리 뛰는 것”이다.


다 내 못난 성품 탓이지만, 나는 평생 이 “소통”이 문제다. 연애시절 합쳐서 아내와 만난 지 첫 31년간은, 소통하려는 아내를 내가 늘 막았다. 어렵게 무슨 말을 꺼내면 “또 뭐꼬? 이번엔 제목이 뭔데? 니는 항상 말은 맞는데 표정이 틀렸다.” 하며 싹을 자르고 대화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2014년에 “부부학교”로 개과천선한 후 지난 10년은, 거꾸로 아내의 “철권독재” 앞에 내 언로(言路)가 꽉 막혔다. 말을 시작도 안 했는데 입 모양만 보고 “안 된다, 틀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면박을 주니, 옛날의 나는 그래도 착했다. 심은 대로 거둔다더니, 나는 심은 몇 배로 당하고 있다. 여하튼 41년 주구장창 “소통 안 되는 것”은 여일(如一)한데, 그래도 지난 10년의 이 소통부재는 매우 희망적이다. 왜냐하면 소통이 “불필요”하여 부재하니까. 소통보다 훨씬 신속하고 효율적인 “명령-복종”으로 대체됐으니까. 그리고 이 체제 하에선 적어도 한 쪽의 삶은 너무 행복하니까.


나는 소통을 게을리하여 얻어맞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1년 전인 2018년까지 아버지는 매일 오후 아파트의 노인정 소모임에 가셨는데, 하루는 오시더니 다짜고짜 주먹으로 나를 치셨다. 죄목은 “그 집 아들은 뭐 합니까?” 하고 다른 노인들께서 물으시면 “대답할 말이 없으신 것”이었다. 인터넷은 뭐고, 브릴리언트(brilliant.org)가 어떤 회사고, 부산에 앉아서 미국 회사의 일이 어떻게 가능하고, 등등 얼마든지 조금씩 이해시켜 드릴 수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너무 죄송스럽고 후회스럽다. 그리고 교회에 가도 나는 소통이 없다. 내가 보기엔 거의가 짝퉁인데 저마다 진품이라 하니, 만 원 내겠다는 손님과 백만 원 달라 하는 주인처럼, 완전 소통두절 상태다. 나는 또 일년 내내 전화 오는 사람 하나 없다. 하루는 열 명이 둘러앉았는데, 전화벨은 울리고 전화는 안 받아 참다 못해 옷걸이 쪽으로 가 봤더니 내 전화였다. 나는 내 전화벨 소리를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은 오래돼서 또 생각이 안 난다.


아내는 매일 누군가와 소통하며 산다. 어쩌면 그렇게 종일 웃고 떠들고 얘기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나도 한때 잘나갈 때는 세상 별별 모르는 사람들한테서도 다 연락이 왔는데, 지금은 아무에게서도 전화가 안 온다. 그래서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그래도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옛날에는 이 소통부재의 삶이 그냥 무료한 것이 아니라, 항상 “불안”한 중에 무료했었다. 아주 평범한 말인데, 혹 “그 말”을 들을까 언제나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내색은 안 해도, 마침내 “그 말”을 듣는 순간엔 온몸을 찌르는 전율과 함께 공포가 엄습하곤 했다. 명령-복종이 체화(體化)된 지금의 삶에선 이제 더 이상 “그 말”에 대한 불안은 없다. 따로따로는 그저 친숙한 네 단어, 다 모여서 적절히 배열되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곱 글자의 “그 말”.


“여보, 얘기 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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