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말, 연시, 수많은 축하와 잔들이 부딪히는 사이 우울에 대하여
연말연시. 크리스마스와 온갖 연말을 기념하며 거리가 밝게 빛났다. 모든 사람이 꼭 행복해야만 하는 날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 해 동안 수고했다며 어깨를 도닥이고, 아쉬운 마음에 술잔을 부딪히는 것이 당연한 날들의 연속이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송년회를 위해 모인 직장인들을 수없이 봐왔다. 하루에 두 세 팀만 받아도 넓지 않은 가게 안이 가득 찼다. 하하 호호 웃는 소리가 허공을 메우고 서로를 위로하는 말들이 가득했다. 어쩌다 술에 취해 분위기가 흐려져도 누군가는 그 분위기를 풀었고, 풀어지지 못한 분위기는 다른 테이블로 전염되어 새롭게 행복과 아쉬움을 풀어놓는 자리가 되곤 했다.
나의 23년 연말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냈다. 미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났고, 사랑하는 이를 만났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동생도 뜻밖의 휴가를 나와 새해를 맞고 복귀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연말을 어떻게 보냈는가?
나는 정말 숨만 쉬었다.
코스모스 졸업반을 앞두고 심란해진 마음이 영 가라앉을 생각을 못했다. 먼저 졸업한 동기들을 보며, 그렇게 가치 있고 감사히 여겼던 한 학기의 소중한 내 휴학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내 자리는 있을까? 내가 사회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도망치진 않을까?
- 겪어보지도 않은 일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 불어나듯 몸집을 키웠다. 생각이라기보다 걱정과 염려에 가까운 것은 하얗게 소복이 쌓이는 눈이 아니었다. 밟으면 바스락거릴 낙엽도 아니었다. 발을 디디면 꼭 그 안으로 빠져 끝없이 허공을 유영해야 할 것 같은 암흑 같은 것이었다.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소식은 화려했다. 해외여행을 가서 애인과 새해를 카운트다운 하는 친구, 멋진 펜션을 예약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친구, 사람 많은 복작한 술집에서 술잔을 부딪히는 친구. 맛있는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친구도 있었다.
내 앞에 놓인 것은 빨간 국물의 라면이었다. 무언갈 새로이 할 마음이 없었다. 이상했다. 신년 계획, 자기 계발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하던 내가 이상하리만치 23년 12월부터 무언가 툭 꺼진 것 같았다. 종강 전에는 세워졌던 계획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종강 후 일주일 동안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조차 흐지부지 넘어갔다. 새해가 되기 전에는 버킷리스트를 써야지- 다짐했으나 볼펜을 잡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 새해가 밝으니 그마저도 다를 것이 없었다.
세끼를 꼭 라면만 먹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끼니도 제대로 과자나 빵 조각 같은 것이었다. 친구는 새해부터 라면이냐며 장난을 쳤다. 그제야 알았다. 내 마음에 무언가 이상징조가 생기고 있단 걸.
최대한 되새기려 했던 건, 특별한 날이라고 내가 꼭 행복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조건 초를 불고 축하를 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두발을 쭉 뻗고 잘 수 있으면 감사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 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려 눈에 불을 켰다.
그럼에도 어려웠다. SNS는 내게 졸업한 친구들이 1월 2일 자로 취업하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줄 의향은 있었다. 여력이 없었을 뿐. 열등감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무언가 감정을 적을 기력이 없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듯싶다.
내가 나를 바닥 없는 암흑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도록 계속해서 감사와 행복을 되새기려 한다. 세상이 모두 웃는데 내가 웃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온 마을이 잔을 부딪힌다고 나의 금주가 이상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어디선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에게, 해돋이를 보러 가는 지인을 방에서만 바라보는 당신에게 함께 힘내자고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썼다. 다음 글에는 더 웃는 나와 당신이 되었길, 되고 있길 바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