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마음, 집이 없어졌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늘 생각하던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내가 그 예외를 두는 관계가 생겼다. 사람을 두고 힘들어할 바에야 차라리 끊어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마음을 떠내는 일’은 내게 버거웠다.
내 주변 사람들은 ‘감자야,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면 차라리 끊어내는 건 어때?’라고 말한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끊어내고,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래도 나을 일이다. 지금보단 낫겠지. 하지만 그게 정말 나를 편하게 할 수 있을까? 나를 정말 쉬게 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온전히 그 사람을 알지 못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갖가지 의문점들은 결국 내 마음을 곪게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의 꼬리물기는 오히려 연을 끊는 행위 자체에 힘겨움을 느끼게 했다. 어려웠다. 더 어려웠던 점은, 내가 이 사람 때문에 지쳐간다는 걸 알면서도 연을 끊어내지 못한다는 거였다. 사실 자체가 제일 어려웠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도달하는 결론은 그리 대단하지도, 내게 있어 최선인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그 어딘가를 빙빙 맴도는 것뿐이었다.
한 번 연을 끊어내긴 했다. 상대방은 내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고, 갑작스레 뜸해진 연락의 빈도수에 대해 설명하길 바랬다, 어쩌다 한 번 연락을 받으면 그에 대해 깊은 자신의 속 이야기로 답하곤 했다. 그저 단순한 안부를 주고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얕은 연락 속에서 깊은 마음을 요구받았다, 곤란해졌다. 더욱더 나는 힘들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반쯤 포기하고 다시 그의 연락을 받았다. 사람을 끊어내서 무엇하나 싶은 마음에 행동을 번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여전히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만을 했고, 나는 들어주기만 해야 했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아도, 감성적인 진심 어린 공감을 해주어도 곤란해졌다. 이제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자신만의 세계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고, 그렇다고 세계를 바꾸려 들면 하지 못하도록 막는 그런 모습들… 혼란스러워하는 상대방과의 대화는 내 안까지도 혼란스럽게 했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딘가를 향하던 목적지가 늘 있기 마련이었다. 그게 마음이든, 몸이든, 생각이든. 어딘가로는 향하곤 했다. 연을 끊어낸다고, 흔히 말하는 ‘손절’을 했을 때 갈 곳이 없어진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릴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책임이라면 마음과 몸과 시간을 다 내어준 내게 있겠지. 나는 또다시 그의 연락을 받을 것이고, 쳇바퀴 같은 관계 속에서 대화할 것이다. 그렇게 또 나는 소진되어가겠지. 그렇다고 끊어냈을 때의 내가 정 행복한 것도 아니라서 나는 그냥 이렇게 살련다. 남들은 이게 더 좋다고 해도, 나는 이렇게 살련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쳇바퀴 안에서 그 사람과 함께 뛰는 것이 아니라 챗바퀴를 혼자 열심히 굴리는 그를 여유롭게 앉아서 쳐다만 보려고 한다. 그래야 목적지가 사라진 내 마음이, 볼거리가 사라졌을 때의 내 마음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