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짧고 행정은 길다!

서울특별시장≠서울시체육회장

by 김정선

Once Upon a Time in SMG, 2010.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 저자


“서울특별시장과 체육회장은 같지 않다.”

체육회라는 이름 아래, 정치와 예산, 조직 팽창 욕구가 뒤엉킨 현실. 시민의 혈세를 지키기 위해, 조직 내부와 유력 정치인 사이에서 끝없이 ‘대거리’했던 어느 공무원의 기록입니다.


지금은 서울시장이 서울시체육회장을 겸직할 수 없게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서울시장이 엘리트체육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시·도 단위체육회장을 겸직할 수 있었다.


서울시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하던 시절

서울시 체육회 사무처장 등 임원들은 서울특별시의 장(長)인 서울시장과서울시체육회의 장(長)인 서울시장이 같은 분이기 때문에, 서울시와 체육회는 동급이라는 억지와도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런 억지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체육회 등 체육단체는 지자체 단체장 등의 유력 정치인을 앉혀서 지자체 등 공공기관의 행·재정적 지원을 더 많이 받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주로 국회의원들이 대한체육회의 가맹종목별 협회장등을 맡았었는데, 그들은 서울시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체육단체가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외압을 행사하기 일쑤였다.


체육회는 왜 조직을 키우려 했을까?

그 외에 체육회는 사무처 조직을 확대하려는 욕망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사무처 정원 증원을 시에 요청하였다.

사무처 임직원 인건비 등 체육회 운영경비의 대부분을 서울시가 지원하고 있어 사무처 조직이 확대되면 결국은 시민의 혈세가 더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관련 부서장인 체육진흥과장은 세금이 낭비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주 그들과 논쟁을 벌여야 했었다.

특히, 시의 허가 없이 정원을 초과하여 사무처 행정직원을 임의로 채용하거나 체육회가 서울시 수탁을 받아 운영 중인 직장운동경기부 경기인을 임의로 충원하는 것에 대해서 시정토록 조치하기도 하였다.

체육진흥과장 1년 6개월의 재직 기간 중 서울시장의 이름을 빌려서 조직 규모를 키우려는 그들의 욕망을 억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다.


체육진흥과장의 고군분투

체육진흥과장은 생활체육회를 제외한 체육회와 장애인체육회의 이사회 멤버이다. 이사회에 참석할 때마다 그들의 몸집불리기의 문제점 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체육회가 나아가야 할 비전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본의 아니게 2년여간 마포구청, 수도권광역발전위원회 파견근무 등으로 이어진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도는 계기가 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찌 됐든 엘리트 체육인 육성을 목표로 하는 서울시 체육회 임원들은 같은 시장을 모시고 있는데 체육진흥과장이 너무나 비협조적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종종 표출하곤 하였다.

나는 수시로 “서울특별시장과 서울시체육회장은 동격이 아니다”. 그 법적 지위가 다르다는 것을 누누이 설명하였다.


2009년 당시 서울시가 서울시체육회에 지원하는 사무처 직원 인건비 등 보조금과 위탁사업 경비를 합치면 249억 원이나 되었다. 투명하게 시 지원금이 사용되도록 사전과 사후에 걸쳐 엄정한 지도감독이 필요했다.


인력증원 논쟁과 예산 방어전

당시 나의 판단으로는, 서울시체육회가 사무처 행정직원을 서울시 동의 없이 임의로 충원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충분한 논리적 근거도 없이(직무분석 없이) 사무처 정원을 늘리려고 한 것이었다고 판단하였다.

사무처 인력 충원은 시 재정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체육회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반대하게 된 것이었다.


3개 체육회의 불필요한 사무처 조직 확대를 억제하고 절감된 재원을 스포츠영재 육성에 투자하던지, 아니면 취약계층 청소년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한 스키·요트와 같은 고급 스포츠 체험프로그램 운영 등의 스포츠 복지사업 등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려고 했다.

그 외 체육진흥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비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스포토피아’와 체육복지 비전

그래서 중장기적인 체육진흥정책을 마련하고자 『2020체육진흥계획』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였고, 「스포츠를 통한 시민이 행복한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캐치프레이즈 “스포토피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포토피아(Sportopia)란, 남녀노소, 빈부, 장애·비장애 인 구분 없이 모두가 원하는 체육활동을 자유 롭게 하여,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짐으로써, 가족 간 화목하고 남 을 배려하며 상호 존중할 줄 아는 시민들로 넘쳐나는 행복 한 사회(Sportia=Sports+Utopia).


“정치는 짧고 행정은 길다”라는 멘트를 외람되게도 체육회나 체육단체 관계자들에게 자주 언급하였다.


체육인들은 모든 민원을 시의원, 국회의원 등 유력자들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는 오랜 관행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그런 행태를 비꼬면서 절차적 합리성과 타당성 등을 강조하려는 취지로 이런 어휘를 활용한 것이다.

아마 그들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당시 의원발의를 통한 사업예산 편성(반영)에 심한 거부감을 가졌었다. 돌이켜보니 거의 알레르기 수준의 반응을 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체육단체들이 국회의원, 시의원 등의 유력자들을 종목별 회장 등으로 영입하여, 서울 시민들의 혈세를 마치 자기들 호주머니 쌈짓돈으로 간주하여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생각으로 서로 가져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의원발의 예산, 나는 왜 거부했나

체육진흥과를 체육단체의 목적 달성을 위한 그들의 들러리 부서, 대서방(代書房)처럼 취급하는 데 대해 불편함을 많이 느꼈고 저항하려 하였다.


체육단체들이 체육진흥과를 어떤 방식으로 대서방 취급을 하였는지 보면 이런 식이었다.

일례를 들면, 국회의원이 협회장으로 겸직하고 있던 어느 구기 종목 협회에서, 체육진흥과장 앞으로 예산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팩스로 보낸 후, 즉시 나의 상급자인 문화국장에게 전화하여 그런 사실을 알려주고 수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식이었다..

보통 외부에서 접수한 민원성 문서에 대해서는 부서 실무진이 타당성 등에 대해 검토 후 보고서를 작성하여 윗선에 보고드리는 것이 관례인데….

당시만 해도 국회의원의 파워가 꽤나 컸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이 아닌 보좌관이 전화만 해도 서울시 문화국장이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을 쉽게 보았던 것 같다.


나는 당시 의원발의 예산 중 타당성이 다소 미흡하다고 판단되는 건에 대해서는 집행하지 않는 고집도 부려보고, 반대의견을 명확하게 내기도 하였다. 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그렇게 그들과 각을 세웠던 것일까?

국회의원과 체육단체장의 공생관계

과거 유력 정치인들이 체육단체장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체육단체라는 정치적 후원 세력을 뒷배로 삼을 수 있는 효과 외에 체육단체에서 지급하는 수천에서 수억 원의 연봉과 법인카드 사용 등 많은 혜택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그 반면에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는 속담이 있듯이 체육단체장에 오른 국회의원 등은 위에서 말한 각종 혜택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회의원이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하여 당해 체육단체를 위한 공적재원 따오기랄지, 중앙정부 등의 체육단체 감사 등에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등의 로비스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공생관계가 형성되어 지난 수십 년간 관행화되었던 것이다.


결국은 제도개혁으로 나아가다

어찌됐든, 이런 나의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겠지만, 국회의원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이 각종 체육단체장을 맡으면서 나타나는 공적재원의 불공정한 사용, 체육단체의 정치화 등에 따른 자율성 훼손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을 통해 2014년부터 국회의원 겸직금지의무 대상에 체육단체장을 포함시켜, 국회의원들이 더 이상 체육단체장(이사장 혹은 회장)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루틴’에 혈혈단신 온몸으로 ‘대거리’한 나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본다. 나의 30여 년의 공직 생활 중 1년 6개월여 간의 체육진흥과장 재직 기간이 제일 의미 있고 생동감 있는 시간이었다.


참고로 지난 2024 파리올림픽 이후 문화관광체육부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고강도 감사와 관련하여, 이를 가능케 한 원인(遠因)의 하나로는‘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조치라 할 수 있다.

만약에 유력한 국회의원이 배드민턴협회장을 맡고 있다고 가정하면, 그런 고강도 감사가 가능할 것인가는 의심할 만하다.


마무리하며: 혼자였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체육회라는 조직과 맞서 싸우고 정치권의 영향력을 거슬렀던 시간은 외롭고 불편한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시민의 세금을 대변한다는 신념으로, 절차와 원칙을 지키고자 했던 지난 1년 6개월. 그 치열했던 시간은 나의 30년 공직 생활 중 가장 의미 있고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은 느리게 바뀌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원칙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과거를 소중히, 미래를 소소(笑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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