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짧고 행정은 길다- 2편

-장체(障體) 몸집 불리기 제동-

by 김정선

Once Upon a Time in SMG, 2010년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 저자


지나친 '정의감'이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걸 누구나 느껴봤을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의 지나친 공익 수호라는 일념과 그런 태도로 인해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을 준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체육단체에 대한 나의 태도와 행동으로 많은 갈등 관계를 만들어 냈다. 체육단체의 일처리 관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관행을 개선하려고 많은 참견과 지적을 하였으니….

그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불편함은 그들로부터 나를 밀어내는 추동력으로 작동하였다.


서울시 장애인체육회와 갈등

당시 서울시장애인체육회 회장은 서울시장이, 부회장은 유력한 국회의원이 맡는 게 관례였다. 내가 담당 과장으로 재직할 때 모 국회의원이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두 가지 일로 갈등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장애인스포츠 월간지 발간』 건과 『체육회 사무처 정원 조정』과 관련한 건이다.

장애인체육회에서 시의원 등을 통해 장애인체육회 월간지를 발간하기 위해 상임위원회 예산심의 과정에 의원발의로 하여, 다음연도 예산사업으로 확정되었는데 내가 반대하여 편성된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


논리는 단순하였는데, 당시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어울림체육’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던 시점이어서 소식지도 그런 의미를 담아서 ‘통합 발간’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당시 복지정책의 큰 방향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을 강조하고 있던 시기였다.


내 생각으로는 당시에 서울시체육회에서는 이미 “월간 체육”이라는 정보지를 발행하고 있었고, 어울림체육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던 터라 장애인만을 위한 정보지를 굳이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엘리트체육 월간지에 통합하여 발간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갈등을 뒤로하고 구청으로....

이 건에 대해서는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해 8월 마포구로 떠난 이후에야 예산집행이 가능했을 것이다.

두 번째 건으로는 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의 직위를 서울시체육회의 그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내용의 조직확대안에 대해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은 것이다. 당시 장체(障體)사무처장 지위를 시체(市體)의 그것과 같은 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리였다.

시체(市體)는 장체(障體)에 비해 사무처의 업무량이나 근무 인원이 두세 배가량 큰 조직이다.

서울시 장애인체육회(장체)에서 그 안건을 사전에 서울시와 협의 없이 이사회 안건으로 바로 상정한 것이다.


서울시 체육진흥과장은 이사회 이사로서 이사회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서울시 재정 투입이 수반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사전에 시와 협의하여야 함에도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여 안건을 통과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서울시는 핫바지가 아니다

감독기관인 서울시를 “핫바지”로 취급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절차적 무례함과 함께 나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그 이사회 회의 장소를 당시 부회장이었던 분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하겠다고 하면서 체육진흥과장도 그리 오라는 것이 아닌가!


당시 장애인체육회 사무실은 잠실주경기장에 위치했는데, 이사회 회의를 그곳에서 하던지, 아니면 제3의 장소인 서울시청 회의실에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유력 국회의원이 부회장으로 있다고 해도 장체는 서울시의 지도감독을 받는 체육단체 아닌가!

서울시를 대표하는 체육진흥과장을 국회의원 개인 사무실로 오라는 게 말이 된다는 것인가!


나는 이사회 안건도 못마땅하던 차에 이사회 회의 장소도 국회의원 사무실이라는 것에 마음이 크게 불편하여 이사회 회의에는 불참하는 것으로 하고, 당해 심의 안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부(否)”를 큼직하게 표시하여 팩스로 보내버렸다.

결국 나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혈기 왕성했던 40대 초반의 열혈남아였던 시절의 객기라고 할까? 아니면 만용이라 할까? 당시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씌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혹시 삼국지연의의 예형?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한나라 마지막 황제를 핍박하여 황위를 선양 받는 것에 불만을 품은 선비 예형이 죽으려고 환장하면서 조조에게 폭언을 일삼고, 결국은 조조의 꾀에 빠져 머나먼 타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것이었던가! 예형(禰衡)이 왜 그리 무모하게 조조에 대해 불만을 조조 면전에서 그리 심하게 입에 담기 힘든 독설을 내 뿜어내면서까지 했던 것인지!


나는 그 당시 예형을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은 처신은 생활체육회(生體)와도 유사하게 발생하였다.


당시에 나는 힘 있는 유력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면서 서울시 체육진흥과는 대서방(代書房)으로 전락해 버린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팽배해 있었으며,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시 재정을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식의 즉, 공금(公錢)을 공짜 돈(空錢)으로 인식하는 체육계에 팽배해 있는 세태와 관행들에 일종의 반기를 들었다고 나 스스로를 치켜세워보고 싶다.


스포토피아 비전 구현

서울시가 꾸려나가야 할 체육정책은, 주거지에서 도보로 운동하고 싶은 체육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곳곳에 생활체육시설들을 확충하고, 체육 영재들을 발굴·육성하고, 취약계층 어린이들이 고급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신감을 키우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인생설계에 도움을 주는 체육복지와 같은 정책 등을 추진해야 한다.


사실 나의 신념에 빠져들어 장체 임원들과 싸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장체의 오랜 숙원인 장애인으로 구성된 “서울시 장애인직장운동경기부”를 창단하는데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장애인 체육 진흥에 기여

전국 시·도 중 처음으로 장애인휠체어농구부를 창단하여 이를 장애인체육회가 위탁 운영하도록 하게 하였다. 현재(2024년)는 장애인직장운동경기부가 탁구, 양궁, 휠체어컬링, 골볼, 육상, 역도, 수영 등 8개 종목(8개 팀)으로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당시 장애인 직장운동경기부를 창단하려면 관련 조례를 개정하여 엘리트 직작운동경기부의 선수 및 감독 정원도 대폭 늘려야(110명⇒180명) 했고, 서울시장애인체육회에 위탁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해야 했다.

장체와의 갈등2.png

나에게 1년 6개월은 정말 ‘핫’한 시간이었다.

나는 1년 6개월간 험난한 역경을 거치면서도 체육진흥과장으로 장기 재직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고척돔 구장 건립과 같은 전문체육시설의 원활한 확충(장충체육관 리모델링 포함 등),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스포토피아 비전 제시, 장애인직장운동경기부 창단과 같은 나름 체육진흥을 위한 그간의 업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싶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뜨거웠던 것 같다.

때로는 치기 어린 판단도 했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공익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나의 모습을 만든(들) 원인(遠因)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과거를 소중히 여기면서 미래를 그려본다.

소소(笑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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