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v.s 해야 할 일

선택이 인생을 결정

by 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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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 저자


선택이 인생의 향방을 결정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면,

“해야 할 일”만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유명 축구선수의 말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이 곧 인생의 모양을 결정합니다.

이 글은 공직생활의 어느 순간을 돌아보며,‘내가 하고 싶은 일’과 ‘조직이 요구하는 일’ 사이에서의 고민과 시행착오, 그리고 결국 스스로 내린 결론에 대해 담담하게 적어본 것입니다.


전직 유명 축구선수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말이 나의 가슴에 확 꽂혔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중,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면 나중에는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이 강연의 요지이다.


“하고 싶은” 일에 신나했던 과거가 만든 오늘의 나

내가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회한 섞인 말투로 자주 입 밖으로 내뱉은 말과 일맥상통한 것 같다.

“조직에서는 상사의 가려운 다리를 먼저 긁어 주고 나서,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자기의 가려운 곳을 긁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에서 성공할 수 있다.

보통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그래도 가끔은 눈에 띄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조직 상사가 가려워하는 곳보다는 나에게 가려운 곳을 먼저 긁어댔었던 것 같다.

‘해야 할’ 것 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내 처지는 전직 축구선수의 말처럼‘ 하고 싶은’것 보다는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 같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과거의 삶의 연속선에 있고, 미래의 나의 모습을 알려면 현재의 나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대로 한 결과 : 구청 등으로 파견근무

나의 공익 우선 사고로 인한 행위들로 인해 내가 몸담았던 부서와 관계되는 이해당사자들에게 많은 불편함을 준 것도 사실이다. 비록 나 자신은 당당하게 살았다고 자평은 하지만 말이다. 그런 과거의 모습은 나의 현재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하고 싶은”대로 산 결과, 나는 마포구청으로 수도권광역경제발전위원회와 같은 외곽 기관으로 전전하게 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2년)이었지만 나에게는 뒤를 되돌아보고 일선행정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시간이었다.

물론, 2년의 기간을 허송세월로 보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파견조직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요량으로 혁신적인 분위기 조성에 부단히 노력하였고 조직 관행이나 루틴에 안주하지 않으려 했다. 그 과정에 물론 ‘건설적 갈등’도 의도적으로 조장하기도 하고 나름 의미 있는 성과를 내서 조직에 기여한 바도 있었다.


예상치 못한 파견, 마포구청에서의 성장기

마포구청 근무는 내가 1994년 첫 보직을 강동구청 민방위과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래 두 번째 구청에서 근무하는 것이었다.

비록 원하지 않은 파견이었지만 구청에 혁신적인 기풍을 심어주려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 구청이라는 행정조직에서 펼쳐지는 정치적 삶과 행정적 삶의 조화와 균형에 대한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고, 훌륭하신 구청장과 부구청장으로부터 큰 깨달음과 지혜를 배우는 등 나의 인생 성장에 소중한 것을 주었다.

내가 강동구청에서 1994년 공무원 첫 보직이 민방위과장이었다. 나는 당시 형식적으로 관행적으로 운영되던 민방위교육과 훈 련을 개선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고 그 과정에 담당 계장, 주임들과 많은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중에 서기관으로 승진하면 강동구청 국장으로 다시 가서 민방위교육의 대전환을 꾀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꿈은 2010년 마포구청 기획재정국장으로 파견 가면서 이루지는 못했다. 민방위교육은 구청에서는 행정관리국장이 담당하고 있다.


민방위교육, 그 불편한 진실과 문제의식

강동구청 민방위과장 시절에 나를 줄곧 괴롭혔던 것이 두 가지인데, 첫째는 민방위교육 참석율이 100% 인 것, 둘째는 4시간짜리 민방위교육을 두 시간이나 두 시간 반 이내에 끝내 주는 것 이었다.

민방위교육 참가율 100% 건에 대해서는 실태조사 후에 시청 상급부서에 허위 보고했다는 사실과 함께, 불편한 현실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는 것까지도 생각했었다. 민방위교육 불참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린가!

그런데 매년 상급기관인 서울시청 민방위과에 강동구청 민방위교육 불참‘0명’으로 보고하고 있었으니….

당시만 해도 지금과 비교해서 어눌한 시기여서 동사무소 민방위업무 담당 공무원은 힘 있고 속칭 ‘빽’있는 직원만 맡을 수 있는 보직이었다.


양심과 현실 사이, 갈등의 순간들

동사무소에서는 보이지 않게 많은 대민업무와 함께 적십자회비 모금,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을 해당 동 거주 주민으로부터 모금을 해야 하고, 그 실적에 대해 구청으로부터 평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민방위업무 담당자가 민방위교육 등의 편의를 봐주면서 대신 적십자회비 등 각종 성금 모집과 ‘바터’ 교환하는 딜을 하곤 하였다. 이런 사례는 당시 관행이었다.

민방위교육 참석 실태에 대해 4개 동사무소를 조사한 결과, 잘하고 있는 동에서는 70%, 그렇지 않은 동에서는 50% 정도의 참가율을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양심선언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일깨워 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은 당시 강동보건소 의약과장으로 근무 중이셨는데, “민방위교육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와도 같은 것인데, 양심선언 해봤자 당신만 바보된다”면서 극구 만류하셨다.

그동안 지인이나 친척분들로부터 들어왔던 얘기들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민방위교육을 거래 수단으로 활용하여 동사무소에서 주민들로부터 필요한 모금 활동 등에서 도움을 받아 온 것이다.

한번은 이른 아침에 실시하는 민방위대원 비상소집훈련을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왜 이리 여성분들이 많이 보이던지? 물론, 관련법상 지역민방위대장을 통·반장들이 맡게 되어 있어 어느 정도 여성들이 보이는 것은 상관없지만 참석자의 상당수가 여성이어서, 그 이유를 한 여성분에게 물어보니 “바쁜 남편을 대신하여 훈련에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런 현상을 보고도 관계되는 공무원, 민방위대장 모두가 방관하는 것이 아닌가! 그만큼 민방위교육은 형해(形骸)화 되어 있던 것이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계륵’과 유사한 수준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내민 돈과 외면한 손.... 공직자의 딜레마

참관을 마치고 귀청하려는데 동사무소 민방위 담당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두 장을 꺼내서는 내 손에 쥐여주는 것이 아닌가! 식사나 하라고 하면서…. 나는 깜짝 놀라 손을 뿌리치면서 “내가 돈 받으려고 공무원 된 줄 아느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 공무원을 무안하게 해줬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94년도에는 기초행정단위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상급기관에서 출장 나온 직원들에게 그런 ‘성의표시’를 하는 게 관례였을 것인데, 초임 과장으로서 그것을 눈감아주지 못하고 큰 소리로 무안을 줬으니 얼마나 속좁은 사람의 잘못된 처신이 아니고 뭐였겠는가!


나만 너무 진심이었던 걸까?

다음으로는 민방위교육을 일찍 끝내줘 버리는 것에 대해 나는 매우 불편해했었는데, 담당 계장은 4시간짜리 민방위교육을 꽉 채워서 하면 ‘폭동’이 발생한다고 하면서 빠르면 두 시간, 조금 늦으면 두 시간 반 이내에 교육을 끝내주는 것이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그들에게 교육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질이 문제라고 하면서 담당 계장에게 개선할 것을 수 차례 요구하였으나, 그들은 나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그들의 방식대로 계속하였다.

그들과의 갈등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나는 다른 부서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일단락되긴 하였지만 매우 아쉬움이 많았었다.

당시에는 나처럼 민방위교육에 진심이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심인 나는 담당 계장 등과 갈등하면서 개선시키려 하고 양심선언까지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으니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는 얼마나 한심하였겠는가!


실패한 이상,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소망

나는 민방위교육이 시민 생활안전교육으로 대전환하는 것을 구상하였다.

모든 교육참여 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이나 비상탈출 시 로프활용 탈출방법 등 유사시 생존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실습하고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하고, 소양교육을 해당 자치구 관내에 거주하는 유명 인사들로 강사풀(Pool)을 구성하여 활용하는 것이 대전환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런 방안은 현실화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내가 서기관으로 승진하면 다시 강동구청 국장으로 가서 사무관 시절 민방위과장으로 실패했던 민방위교육 대전환을 도모하는 것을 굳게 다짐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나 마포구로 파견 나갔을 때에는 담당 국장이 아닌 기획재정국장으로 가게 되어 민방위교육 대전환을 도모할 수 없었다.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결국 당시 민방위교육과 훈련을 담당한 사람들의 비양심적이고 반혁신적 업무행태로 인해 오늘날 구청의 민방위과는 폐지되고 민방위 업무는 담당 공무원 두세 명이 하는 일로 축소되어 버렸다.

혁신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는 것이 이치인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최소한 나의 자랑스런 두 아들에게 부끄럼 없는 아빠로서 남겨졌으면 좋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 "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인간"

나의 현재의 모습을 가져온 과거의 모습은 사무관 초임 시절부터 켜켜이 쌓여가기 시작한 것이다.


때늦은 깨우침 ; 남의 가려운 곳을 먼저 긁어주자

앞으로는 나의 가려운 곳을 긁는 것보다는 남의 가려운 곳을 먼저 긁어 주어야겠다.

인생 전반부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에야 이런 결심을 한다는 것이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이 글은 글쓴이의 저서『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의 문제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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