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설사업 발주 선진화 방안 – 1편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出, 북랩) 저자
공공건설사업 발주 선진화 방안 – 1편
이 글은 내부 “고발”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담담히 “고백”하고 함께 고민하고자 시작한 작은 기록입니다.
상수도공사를 비롯한 공공건설사업에서 반복되는 불투명한 계약과 대리공사의 관행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나 특정 업계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병폐를 함께 공론화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치유방안을 탐색하자는 취지에서 쓰여졌습니다.
비판이 아닌 제안이고, 공격이 아닌 고백(苦白)입니다.
공공건설 현장에서는 ‘일만 잘 끝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절차적 공정성보다는 결과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실질적 시공 주체와 계약상 수급인의 분리, 즉 대리공사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 공사 품질과 무관하게 수수료 중심의 계약이 체결되며, 형식만 남은 절차가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사업의 본래 목적보다 문서상 정합성과 행정편의가 우선되는 환경에서는 현장 실무자의 헌신조차 왜곡되기 쉽습니다.
혼인신고서에는 첫사랑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실제 결혼식장과 가정은 다른 사람이 차지한 셈.
“여기 한 총각이 있었다. 그는 어렵게 첫사랑의 여인을 만나 깊이 사랑하고 여러 하객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면서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혼인서약을 하였다. 그런데, 꿈같은 시간도 잠깐,
혼인 서약을 함께한 여인은 어떤 연유에서든 사라지고 다른 여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아닌가!
신랑은 맨 처음에는 당황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혼인 서약을 함께한 첫사랑의 여인보다
현재의 여인에 더 익숙해졌다. 현재의 여인은 결혼과 출산 경험이 많아 결혼생활도 더 원만하게
하고 자식도 더 많이 낳아 더욱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그래서 신랑은 더 이상 혼인서약을 함께했던 첫사랑의 여인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낙찰자는 이름만 올리고 수수료만 챙긴 채, 실제 공사는 지역 현장업체가 맡는 이 구조는 공정과 투명성을 훼손하는 대표 사례이다.
이 같은 구조는 낙찰자와 실제 시공자의 책임경계를 불명확하게 만들고, 공사 중 문제 발생 시 행정이 개입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로 이어진다.
결국 발주자는 법적으론 명의상 계약자만 상대할 수밖에 없고, 실제 책임자는 그림자처럼 존재하게 된다.
건설산업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지난 정부가 건설근로자노조가 이권카르텔을 형성하여 각종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하면서 강력한 규제를 시행한 바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부에서 비판하는 건설노조들의 비정상적 행위들은 건설산업이 태생적으로 갖는 약점, 현실과 법·제도와의 괴리로 인한 불투명성과 불공정성으로 인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건설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불법하도급과 대리 시공이 더욱 교묘하게 자행되고, 유관업체 간 카르텔 구축을 통한 이권 챙기기로 인해 계약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 역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들 한다.
특히〈계약낙찰자와 실제 공사 시행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웬만한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고질적인 악습으로 인해, 공사 현장의 안전도와 시공결과물의 품질 저하를 촉발하여 건설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빌붙어서 부당이득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똥파리처럼 들끓게 된 것이다. 게다가 3D 업종을 기피하는 청년들은 건설산업을 더욱 경원시하게 될 것이다.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사망사고 발생 1위라는 불명예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건설업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일했던 수도사업소에서는 상수도 누수복구공사나 급수관로 연결공사 등을 위해 매년 10여 개 이상의 상수도 시공업체를 선정하여, 『연간단가공사계약』 등을 체결하여 수도사업소가 필요로 하는 공사들을 시공하도록 하고 있다.
2024년 한 해에 15개 상수도공사 업체가 수도사업소와 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를 진행하였다.
세부적으로, 연간단가공사업체 8개(수도관 부설공사 5, 누수복구 1, 시설물 유지보수 2, 도로포장 1), 장기사용수도관 교체공사업체 7개이다. 총 발주금액은 230억 원 정도였다.
그런데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매년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선정된 상수도공사업체는 바뀌는데,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현장소장이나 일용직 근로자들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소장은 공사업체가 바뀌면 이전에 적(籍)을 뒀던 원청업체를 퇴사하고 새로운 공사업체에 입사하는 방식이다. 서류상으로는 합법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상수도 공사현장은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기에, 매년 낙찰자가 바뀌더라도 실제 시공은 기존 지역업체가 지속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낙찰자는 공사실적과 수수료를 챙기고, 사업소는 민원처리에 편하다는 이유로 이 구조를 묵인해왔다. 서류를 맞추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업체는 안정적인 일감을 보장받고, 낙찰자는 실적과 수수료를 가져가며, 발주기관은 민원 부담을 줄일 수 있어 각자에게 이득이 되는 구조로 굳어져왔다. 이것도 일종의 “카르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법적 투명성과 공정한 경쟁원칙에는 위배되며, 결국 시민이 손해를 떠안는 구조이다.
투명하지 않은 계약구조는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행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먼저, 공사발주부터 계약체결까지 투여되는 엄청난 행정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수수료 몫으로 사라지는 일부 “공사비” 는 세금 낭비 외에, 근로자의 근로환경과 노후화된 차량이나 장비 등의 개선을 위한 재투자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리공사 업체는 수수료를 떼어주고 남은 돈으로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 자재비, 장비비 등 제경비를 줄이기 위해 “몰아치기 공사” 등을 강행할 수밖에 없어, 안전사고 발생이 우려되고 시공결과물의 품질 손상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공업체의 부족한 공사비를 메꿔주기 위해 잦은 사업계획 변경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시에서 발주하는 관급공사에서는 일용직 근로자 인건비를 시청 발주부서에서 근로자 계좌로 직접 입금해 주고 있어서 임금체불과 같은 불법행위는 원천적으로 차단될 뿐 아니라,
주요 자재는 관급으로 발주부서에서 직접 구매하여 공급하고 있어 공사 품질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상수도공사 현장에 그 공사 규모에 따라 서울시설공단이나 외부 전문업체에 공사감리를 맡겨 공사 진행 전 과정을 감독하고 있어, 안전사고 발생을 미연에 예방하고 공사비가 허투루 새 나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만, 대리공사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지경에 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시공역량 확인 등으로 개선이 시도되고 있지만, 정작 ‘누가 시공하는가’에 대한 실질적 관리가 부재한 한 구조적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는 실적 평가 강화나 입찰 전 사전심사 확대 등을 도입했지만, 실제 시공 현장에서 누구 손으로 공사가 이뤄지는지에 대한 관리가 부재한 한,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상수도공사,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공공건설사업은 시민의 세금과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공공의 약속이다.
수십 년간 반복되어온 대리공사 구조, 명의만 존재하는 계약, 지역 중심의 묵인된 하도급 관행은 이제는 멈춰야 할 때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지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잘못된 구조를 함께 인식하고, 그 속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를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이다.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앞장서서 투명한 발주 방식, 책임 있는 시공 구조, 그리고 정당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전환을 추진하길 기대해 본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는 이런 불합리한 관행들이 깨끗이 사라진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상수도공사를 비롯한 공공건설사업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립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힘든 고백(苦白)을 한 것으로 양해하여 주기 바란다.
P.S. 어떻게 하면 이런 악습을 개선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 미진하지만 글쓴이의 생각들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저자의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 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