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지킨다는 것 : 장충체육관 리모델링의 숨은 이야기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出, 북랩) 저자
장충체육관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닌 서울시민의 역사이자 문화입니다.
“어떤 건물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이자 시민의 정체성입니다. 1960년대 지어진 장충체육관은 그런 의미에서 단지 오래된 체육시설이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한 ‘서울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충체육관이 한때 ‘면세점 복합시설’로 대체될 뻔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고척야구장의 완전 돔으로 전환 등은 서울시가 체육진흥을 위한 하드웨어 측면에서 기념할 만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중 장충체육관은 까딱 잘못했더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었다.
‘체육관 대통령’과 김일의 박치기, 그리고 한국 스포츠의 산실. 장충체육관은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의 무대였고, 역사적 장면들이 남겨진 장소입니다.
장충체육관은 1960년대 초 지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돔 구조 형태의 체육관으로서 그 역사성으로 인해 소중한 서울, 한국의 정신적·물질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장충체육관에서 선거인단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체육관 대통령”으로 불리게 된 연유를 제공하였고, 각종 씨름대회 등 체육 경기가 활발하게 치러진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장충체육관에 대해 잘못 알려진 루머: 필리핀 원조설은 사실이 아니다. 장충체육관은 한국 1세대 건축가 인 고 김정수 씨가 설계했으며, 삼부토건이 맡은 엄연히 한국 기술력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출처:http s://www.fmkorea. com /6375224010)
특히, 1966년 한국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 선수가 이곳에서 탄생하였고, 프로레슬링 경기(박치기왕 김일), 아마추어 농구 등 실내스포츠의 모태 역할을 한 곳이었다.
“철거가 아닌 복원”을 선택하다 안전등급 C 판정을 받은 이후, 서울시는 존치와 복원을 기본 방침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역사성을 보유한 장충체육관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안전상에 문제가 나타났다. 안전진단 결과 “C”등급을 받아 구조보강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전문체육시설로서의 기능회복 및 콘서트 등의 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시설로 성능 개선을 위해 리모델링을 해야만 했다.
내가 부서장으로 발령받기 전에 이미 그 역사성을 인정하여 200여억 원의 시 재정을 투입하여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기본 방향을 결정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내가 담당과장으로 부임한(2009.2.) 후 바로 리모델링 추진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리모델링 전 장충체육관 뒤쪽에 높이 세워져 있던 굴뚝을 존치하는 것도 검토하였는데, 당시에는 굴뚝을 영상 스크린처럼 활용하여 “김일의 레슬링 모습” 등 체육관과 관련 있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매체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당시에도 에너지절약형 친환경 건축을 강조하는 시점이어서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도 추가하고, 핸드볼·배구·농구 등 모든 실내종목 경기가 가능하도록 플로어도 확대하고,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체육관까지 지하연결통로로 연결하는 것까지도 포함하여 최초 돔 형태의 체육관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것으로 기본계획을 마련하였다.
면세점으로 대체될 뻔한 체육관
중구청과 일부 국회의원, 민간자본이 “8층 복합문화시설”로 신축을 제안해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않았던 상황이 발생했다. 2009년 4월에는 중구청장이 서울시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민간투자사업으로 장충체육관을 스포츠 및 문화관광 복합건축물로 재건축” 하는 것을 제안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중구가 지역구인 국회의원이 “체육과 문화가 함께할 수 있는 가변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하여 줄 것을 건의하였다.
처음에 중구청장이 제안했을 때, 복합문화체육 시설로 신축하는 것에 대해 체육계, 건축 계획·구조, 문화재, 문화관광 분야의 내로라하는 각계 전문가 등 11명에게 의견을 구한 결과, 8명이 도시계획관련 법령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남산 경관과 녹지 보호, 장충체육관이 갖는 역사성 등을 고려하여 반대 의견을 제시한 바 있었다.
이는 서울시의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계획을 접한 신라호텔 측에서 서울시 재정투자 방식이 아닌 민간투자 방식으로 체육과 문화시설이 결합한 복합시설을 조성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민간 자본을 활용하여 장충체육관을 체육활동과 문화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시설로 신축하면서, 그중 일부 시설은 면세점과 같은 판매시설을 입점시켜 민간자본 투자에 대한 수익을 보장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장충체육관을 헐어내고 그 부지에 약 8층 이상 규모의 신축건물을 지어서 그 중 지하층과 지상 2, 3층 정도는 체육관 및 문화공연이 가능한 복합시설로 하고 나머지 층은 면세점 등 판매시설을 입점시킨다는 것이다.
역사와 경관을 지키기 위한 도시계획의 저항
앙각 규제, 문화재보호, 남산 경관 등 다양한 법령이 철거와 신축을 가로막습니다.
이에 대해 오랜 시간에 걸쳐 조직 내·외부 전문가 그룹의 자문과의견을 구하는 절차를 진행하였다. 조직 외부로는 도시계획·문화·체육 관련 분야 전문가 간담회와 현장 출장조사 등을 추진하였는데, 장충체육관이 갖는 역사성과 남산 녹지 확충, 인접한 서울 성곽관련 문화재 측면을 고려하여 곤란하다는 의견을 결집할 수 있었다.
조직 내부로는 도시계획, 문화재 분야 부서장 회의를 여러 차례 개최하여 민간투자를 통한 신축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정리하였다. 여러 제약 요건이 있었지만, 관련 규정상 그런 높은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법적 제약이 있었다.
그곳에는 바로 옆에 한양도성 성곽이 위치해 있어 도시계획이나 건축 관련 조례상 앙각(仰角) 규정을 적용하여 신축 건물이 성곽을 가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두세 개 층 정도의 낮은 건물만 신축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앙각이란 ‘올려다보는 각도’라는 의미로, 앙각 규제는 문화재에 대한 전망을 가리지 않기 위해 근처 건물 의 높이를 제한하는 것이다. 문화재 경계 지점에서 100m 이내에 건물을 지으려면, 문화재 경계 담장에 서 27도 위로 그은 사선 높이를 넘어서는 안 된다.
그 외 도시계획 시설이 ‘공원시설’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이의 변경이나 해제가 필요하고, 용도는 ‘주거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판매시설 설치가 가능하려면 ‘준주거지역’이나 ‘일반 상업지역’으로 변경해야 민간투자방식의 신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시계획조례 개정이나 도시관례계획 변경을 추진하여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서울시가 공정성 시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민간 논리보다 공공성을 선택한 결정권자의 한 표
시장의 판단으로 결국 리모델링으로 확정되며, 역사성과 기능성이 모두 보존됩니다.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장충체육관의 역사성과 도시계획관련 규정상 신축이 불가능한 사유 등을 이유로 신라호텔 측의 제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최종적으로 보고했다. 장충체육관을 헐어내고 8층 이상의 신축 건물로 대체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면 신라호텔에 대한 특혜라고 엄청난 질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천만다행으로, 최고의사결정권자인 시장이 정확한 판단을 하여준 덕분으로 리모델링으로 결정되어 장충체육관의 역사성을 현재까지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천만다행이다.
도시계획은 권력이다, 그리고 나는 그 중심에 있었다
민간자본과 정치논리 사이에서 느낀 무력감과, 그래도 지켜낸 자부심이 교차합니다.
사실 나는 당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였다. 서울시가 200억 원이 넘는 돈을 쓰면서 리모델링하는 것보다는 민간자본을 활용하여 시가 필요로 하는 체육관 현대화를 도모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잘 마무리는 되었지만, 외부에서는 서울시가 관련규정에 얽매여 외부로부터 제기된 창의적인 정책 제안을 배제한다고 하면서, 법령과 제도를 고쳐서라도 위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수 있다는 외부로부터의 압박을 느끼면서, 실질적인 권력은 “돈”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이 건으로 인해 도시계획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도시계획’이 돈이 되고 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요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빠가 만든 거야”라는 말에 담긴 자긍심
“아빠가 지켜냈어” 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장충체육관 앞에서 아들에게 남긴 말. 그것이 공직의 보람이자 도시를 지킨 증거입니다.
나는 장충체육관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둘째 아들 시준에게 장충체육관을 가리키면서 ‘아빠가 만든 거야’ 하고 자랑하기도 한다.
장충체육관이 지금도 도심 속 살아 있는 역사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익성과 편의성보다 공공성과 역사성을 앞세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규정이, 때로는 관행이 벽처럼 가로막을지라도도시를 위한 바른 결정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공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이었음을, 이 글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글쓴이의 저서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