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를 넘어서 정의로”-단속은 누굴위한 것인가!

편의주의적 단속관행 혁신

by 김정선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 저자(2025.1., 북랩)



줄탁동시 없이는 혁신도 없다

변화는 함께 쪼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한번 형성된 루틴을 스스로 타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겠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된다는 의미의 “줄탁동시(줄啄同時)”가 전제되어야 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지탱해 온 교통지도단속 루틴의 혁파를 위해서는 줄탁동시를 할 만한 내부의 호응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루틴의 익숙함과 편안함이 가져다 주는 “나른함”을 거부하고 그것을 깨부수려는 내부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진흙 속 진주들과 함께한 4년

익숙함을 깨려 한 사람들, 조용한 개혁의 동지들

그래도 내가 4년간 근무하면서 “자칭”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나와 함께 “줄탁동시”할 수 있는 “진흙밭의 진주”들이 함께 해줬기에 가능했다.


그들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그들과 함께 어렵게 이루어 놓은 “교통지도단속체계 고도화” 작업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교통지도과“ 이름이 서울시 조직도상 보이질 않게 되었다.

다음은 ”시민들로부터 박수받는 교통지도단속“이 가능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추진해야 했던, ”편의주의적 단속 관행 혁파“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실적이 만든 괴물- 하루 200건 단속의 진실

시민은 보이지 않고 숫자만 쌓인다.

”단속용 CCTV 카메라가 장착된 단속차량(줄여서 “단속차량”)을 이용해 하루에 200건 이상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한 공무원도 있었다. 5분 간격을 두어 동일 구간을 “단속차량”으로 순회하게 되면 그 이상으로도 단속이 가능한데, 나는 단속공무원들에게 더 이상 이런 편의주의적 단속을 하지 않도록 강제했다.

차량 단속을 하다가도 보도, 횡단보도, 소화전 등에 불법주차가 되어 있으면 “단속차량”에서 하차하여, “인력단속”으로 전환하고, 단속 필요성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골목길 등 생활도로에서는 단속하지 못하도록 했다.


주차단속과 같은 규제업무는 자칫 잘못하면 ‘편의주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게 되고 행정력과 예산 등 행정자원만 낭비되는 나쁜 일이 되기 쉽다.


단속은 계륵이 아니다

표계산과 조직의 무관심 속에서 애매해지는 책임

단속업무와 같은 규제행정은 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는 특성상, 시 내부로부터도 칭찬을 듣기가 어렵다. 강하게 단속하게 되면 선거에서 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선출직들이 많아 기관 내부에서도 비판받기 일쑤다.


그러나, 또 단속을 안 하면 안 한다고 시민들로부터 역민원을 받을 수 있어 “계륵(鷄肋)”과 같은 취급을 받기 쉽다. 그래서 단속 공무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적당히 해야 한다. 너무 열심히 해서도 안되고 너무 티 나게 안 해도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손쉬운 단속’ ‘편안한 단속’ 그래서 ‘스트레스 없는 단속’ 등과 같은 편의주의적 단속의 함정에 빠져들기 쉽다.

조직 내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단속업무의 특성상, 실무책임자인 실·본부·국장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단속 공무원들이 알아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무책임자인 부서장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면, 글자 그대로 단속공무원만 살맛 나는 편의주의적 단속의 극치로 빠져들기 쉽다. 단속 공무원이라면 어느 누가 힘들고 어려운 단속을 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싶겠는가!

과거 편의주의적 단속의 극치를 보여줬던 사례를 소개해 보겠다. 예전에는 CCTV 카메라 단속차량 한 대로 두세 시간 만에 무려 200건 이상의 불법 주차된 차량을 단속하기도 하였는데, 그로 인해 해당 자치구에서 제발 상황을 봐가면서 단속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보통 도로상에 불법주차된 차량이 동일 장소에서 5분 이상 있게 되면 CCTV 카메라 단속차량이 지나가면서 5분 간격으로 두 장의 사진을 촬영하여 자동으로 단속하는데, 주로 휴일 등산로 입구에 장시간 주차된 차량들을 대상으로 위와 같은 불합리한 단속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불법주차는 맞긴 하지만 단속을 안 해도 시민들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는 상황인데도 단속실적을 채우고 우수한 평가를 받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하는 것이다.

보행권은 외면, 골목길만 단속?

시민안전보다 쉬운 실적을 택한 단속

불법주정차로 극심한 교통혼잡을 유발한다던지, 보도·횡단보도 등과 같이 보행자의 안전을 저해하는 장소에서 집중적인 단속을 해야 하는데, 그런 장소에서는 막상 단속하려고 하면 차주와 싸워야 하고 심한 욕설을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단속 공무원들은 지극히 소극적으로 ‘단순계도’ 혹은 ‘이동조치’로 갈음하고, 진정 단속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는 한적한 이면도로(생활도로)에 주차된 차량들만 단속하게 되는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단속관행에 빠져들기 쉽다.


4년간 교통지도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하면 단속 공무원들의 편의주의적 단속관행을 혁파하여 시민 눈높이에 맞춰 꼭 필요한 단속을 하는 ‘공정한’ 단속체계를 현장에 뿌리내리도록 할 수 있을까였다.

쉬운 단속에 갇힌 행정의 타성

단속 공무원조차 제도를 탓하게 되는 현실

10건의 단속보다 꼭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1건의 단속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끔 단속실적평가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도 하였다.


택시불법운행단속도 마찬가지였다. 택시의 부당한 바가지요금징수나 명의이용금지 의무위반(“도급택시”) 등 그 피해 정도가 상대적으로 심각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속도 하지 못하면서 주구장창 택시 승차거부 단속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교통지도과장 4년간 재직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를 쓰면서 이러한 편의주의적 단속에 일대 개선을 가져왔다.


이 바보야, 본질은 건수가 아니야!

정량에서 정성으로, 단속의 품질을 되묻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단속들을 하다 보면 과거 물량 위주의 쉬운 단속보다 단속건수가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간부는 단속실적(건수) 감소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면서 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야, 이 바보야! 본질은 건수가 아니고 품질이야!”

이 말이 나의 마음속 대답이었다. 매년 서울시와 자치구의 일천여 명의 단속 공무원들이 300만여 건의 불법주차 단속을 하고 있지만, 서울의 주차 질서는 개선되지 않고 도시의 곳곳이 마치 주차장처럼 변해가는 상황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불법주차는 이면도로(생활도로)에서 어린이 등 교통약자의 안전한 보행을 저해하는 나쁜 행위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하여 ‘단순한 행위’로 방관만 할 것은 아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야 함에도 단속권한을 가진 구청장 등은 선거에서 이해득실을 따져 소극적 행정행위로 ‘불법주차 단속’을 취급하고 있다.

즉 단속을 강하게 하면 표가 떨어진다는 생각들을 하기 일쑤여서 주차단속은 ‘천덕꾸러기’와 같은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실적에서 ‘필요성 중심’으로

시민 눈높이에 맞춘 단속기준 정립

이러한 현실적 제약 여건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불법주차 단속에 대해 ‘탄력적’ 개념을 적용하였다.


시민의 안전에 직결되는 보도, 횡단보도, 정류소와 같은 장소에 대해서는 견인조치가 수반되는 강력한 단속, 더 나아가 “운전자가 있어도 단속”과 같은 강도 높은 단속수준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이동조치’ ‘계도’와 같은 약한 수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불법주차 중 “운전자가 현장에 있는 경우”에 도로교통법상 경찰도 단속할 수 있지만, 서울시와 자치구 단속 공무원들도 단속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주차단속은 시와 자치구 단속 공무원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단속하지 않는 반면, 시와 자치구에서는 “운전자가 현장에 있는 경우”에도 단속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야장천 “현장에 운전자가 없는 경우”만 단속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행정을 하고 있었다.


‘운전자 유무’는 단속의 기준이 아니다.

단속기준의 본말전도, 사문화된 법조문을 현실로 끌어낸 실행

공정한 단속이란 무엇인가? 위반 정도에 따라 단속강도(수준)가 결정되는 것 아닌가!

현장에서 단속 공무원이 단속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운전자의 현장에 있느냐, 없느냐”라니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그래서 꼭 단속해야 할 위반 정도가 중한 경우에는, 운전자가 현장에 있어도 단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도로교통법상 사문화된 조항을 현실로 끌어내어 단속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강남 등 대형음식점이 많은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는 ‘발렛파킹’에 의한 보도상 상습불법주차에 대해 철퇴를 내리고자, 단속 공무원 4명 이상으로 한 조를 구성, 현장에서의 예상되는 완강한 저항을 제압하면서 단속할 수 있는 “집중단속조”를 구성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발렛파킹 단속의 최전선

강남 불법 주차와의 전면전, 집중단속조 운영기

보통 2명이 1개 조를 구성하여 단속하게 되면 현장에서 건장한 발렛파킹 요원들에 의해 단속원이 제압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단속 공무원은 주차단속을 해달라는 민원이 접수되면 단속차량을 타고 나가서는 차량에서 내리지도 않고 형식적으로 “불법주차 차량 단속합니다”라는 안내방송만 반복하면 된다.


그러면 발렛파킹 요원이 잠시 차량을 이동시키는 것 처럼 하다가 단속차량이 떠나면 다시 원래 장소에 차를 가져다 놓는 식인 것이다.

도로 곳곳에 설치된 “고정식 CCTV 단속카메라” 하단의 조그마한 표시판에 “운전자가 있어도 단속합니다”라는 문구가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내용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불법주차 문제에 대해 강력한 단속이 필요한 차량에 대해서는 ‘세게’ 단속하겠다는 “탄력적” 단속전략을 표명한 것으로 당시 고뇌의 산물이었다.

마무리하면서 : 단속공무원도 영혼이 있다

편의주의는 공직자의 자긍심을 갉아먹는 좀이다

나는 확신한다. 편의주의적 단속 루틴의 혁파를 통해 단속공무원들의 역할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고....


편의주의적인 단속 루틴은 단속공무원의 영혼을 갉아먹는 좀과 같은 해악을 끼친다. 자긍심도 사라지게 하고, 그저 그냥 출근하고 때 되면 월급받는 그런 무의미한 행태를 반복하는 하등 인간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돈’보다 중요한 질문 하나

당신의 행위는 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는가?

인간은 돈으로만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때론 인간의 행위가 자기가 속한 사회에 어떤 의미로 투영되는가?가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함께 해준 분들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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