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出)의 저자
“나는 한 장의 예산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출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 작은 에피소드는, 생활체육회라는 조직의 ‘운동’과 ‘정치’가 어디서 어긋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준다.
2억원이 부른 전출명령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생활체육회(生體)와 관련된 얼마 되지 않은 소규모(2억 원) 의원발의 사업예산에 대해, 나의 체육정책에 대한 소신(혹은 철학)에 기초하여 집행에 반대하다가 그것이 결정적 원인이 되어 마포구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1년 6개월간의 체육진흥과장 재직 기간 동안 나와 3개 서울시체육회와 켜켜이 쌓여 왔던 내적 갈등이 생활체육회 사업관련 의원발의 예산 불집행으로 드디어 폭발하게 된 것이다.
나의 고집불통 (히)스토리에 정점을 찍은 사건이었다.
생활체육회 소속 종목별 단체들의 행정지원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행정요원 인건비에 사용될 2억 원의 사업비가 의원발의로 편성·확정되기까지 내가 줄곧 반대했었는데, 결국은 반영되어 사업예산을 집행해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서울시 예산으로 확정되었음에도 집행하지 않고 상반기를 넘기게 되었으니 그들에겐 ‘눈에 가시’처럼 비쳤을 것이다.
생활체육은 자율성이 생명이다
생활체육회 회장은 민간인이 하지만 사무처장은 서울시장의 측근으로 임명되는 게 관행이었다. 생활체육진흥관련 법령 등에 시·도지사가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생활체육진흥 사업 추진 명목으로 매년 막대한 시의 재정이 투입되고 있기에 시장의 측근이 사무처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이 확보될 수 있었다.
그런 사무처장은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매사 시장의 좋은 이미지를 수십만 생활체육동호인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데 그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각종 생활체육행사에 서울시장을 참여시켜 부지불식간에 다수의 생활체육인들과 접촉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기획하여 잠재적 지지자로 만드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정치와 체육이 얽힌 미묘한 관계
서울시장 측근 인사들도 생활체육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치열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몇백 표, 몇천 표가 선거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생활체육행사에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해 연말 시의회 예산편성 심의 중에 생활체육회에서 시의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을 통해 2억 원의 사업비를 의원발의 예산으로 편성, 시의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사업 내용인즉 생활체육회 소속 종목별 단체들의 회계처리업무 등 행정 전반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행정보조인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소요 예산인 것이다.
나는 예산 심의 단계부터 본 사업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서, 편성된다 해도 집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하게 했다.
생활체육은 엘리트체육 육성정책과는 그 기조를 달리한다. 생활체육은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잘못하면 생활체육회원들이 정치적으로 오염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까운 세금이 특정인들을 위해 쓰여 형평성을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이 편성돼도 집행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생활체육회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체육활동에 애로를 느끼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체육활동을 하여 건강한 몸과 정신을 겸비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 조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서다.
구체적으로 생활체육 강사를 육성하고, 그런 강사들이 체육활동 취약계층을 찾아가서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서울시가 지원하는 것이지, 종목별 단체들의 원활한 행정업무 처리를 위한 경비에 사용하라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비는 당연히 회원들 회비 등으로 운영하는 것이원칙이라는 생각이 나의 뇌리에 지배적이었기에, 회계관리 보조인력이 필요하다면 생활체육회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울시는 매년 상당한 수준의 재정을 생체에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생체소속종목별협회에 지원해주는 예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가 생활체육종목별 지원예산을 편성하여 일괄적으로 생체 사무처에 지원해 주면 사무처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기준에 따라 종목별로 적정 배분하고 있었다.
“절대”라는 말은 공직에서 금기다
어찌 됐든 담당 부서장인 나의 강력한 반대 의견 표명에도 불구하고, 예산편성에 반영되었고 어쩔 수 없이 집행해야 했는데도 나는 집행하지 않고 버티었다. 예산편성이 확정되어도 집행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뒤집는 게 어려웠다.
2009년 2010년 당시만 해도 서울시 부서장(과장)들의 권한은 현재와는 상당히 다른 수준 이었다. 시 의원들과의 역할관계도 지금과 같은 상하관계는 아니었다. 지금처럼
시의원이 실·본부·국장을 의원사무실로 호출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번 내뱉었던 말을 뒤집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공직자가 말할 때에는 보다 신중하게 해야 하고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
나의 신념이나 가치판단의 잣대로 봐서는 안 될 일도 다른 시각에서 보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절대”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술자리에서 날아든 최후통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지만… 생활체육회에 지출해야 할 2억 원의 사업예산을 끝까지 지출하지 않고 있으려니 사무처장이 마지막 경고를 나에게 날렸다.
생활체육회 사무처장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해서 처음에는 여럿이 만나 식사하고 이어서 자연스럽게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2차를 시작했다. 단둘만 있는 자리에서 사무처장이 나에게 사업예산 집행을 촉구하는 게 아닌가! 나는 불쾌하기도 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집행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드리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엘리트체육 분야에 매년 250억 원 이상의 시 재정을 투입하고 있던 상황에서 생활체육회에 2억 원 정도 추가 투입한다고 얼마나 원칙에 위배되었을까!
2009년도 서울시가 생활체육회에 43억 원의 민간위탁금(인건비 및 사업비)을 지원, 장애인체육회에는 34억 원을 지원하고 있었음
좀 더 큰 안목을 가지고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사실 나는 생활체육회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 시민이 스포츠를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함을 유지하는 ‘스포토피아’를 비전으로 삼았는데, 함께 추진할 실행 파트너로서 생활체육회를 염두에 두고 집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 양측의 시각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 일이 아마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았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8월쯤) 마포구청으로 파견근무 명령을 받게 되었다.
쩐주를 얕보지 마라 –내가 서울시였다
현명하게 생각했다면 “전선을 확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활체육회와의 갈등 외에 엘리트체육회, 장애인체육회와의 갈등도 동시다발적으로 야기하고 있었기에 불안한 시기였지만 어찌 됐든 1년 6개월간 과장으로 재직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매우 영광스러운 사건이었다.
서울시가 비인기 엘리트 체육 종목을 육성하기 위해 20여 개(핸드볼, 펜싱, 빙상 등) 종목에 대해 직장운동경기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130억 원 수준을 서울시체육회를 통해 지원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직장운동경기부 감독들과 간담회를 갖고 의견수렴 등을 하고자 하였는데 참석한 감독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쩐주를 무시하는 사례1)
물주로서 서울시 담당과장이 회의를 소집하였음에도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당시에 직장운동경기부에 대한 운영비 지원 관련해서 민원이 제기된 상태여서 개선방안 마련 등을 위해 회의 개최가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무슨 기싸움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소 험악한 상태에서 서울시가 생각하는 직장운동경기부 운영개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빨리 끝내버린 기억이 있다.
당시(2009년) 서울시체육회에 위탁운영 중인 서울시직장운동경기부(단장: 문화국장, 부단장: 체육진흥과장)는 17개 종목 19개 팀으로 선수 116명, 지도자 28명으로 총 144명의 규모였음. 설치·운영 근거로는 『국민체육진흥법』에서 직장인 1,000명 이상인 공공단체는 1종목 이상의 운동경기부를 두도록 규정하고, 서울시에서는 『서울시 직장운동경기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임.
아무래도 서울시체육회는 서울시장을 회장으로 모시고 있다는 생각으로, 시 집행부의 지도·감독을 받지 않으려는 생각들이 만연해 있었 던 것 같았다. 내가 부서장을 맡기 이전에는 서울시 어느 누구도 체육회를 실질적으로 지도·감독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뒤틀린 욕망을 거부하였다
체육회 임원들에게 잘 보여서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하려는 뒤틀어진 욕망을 가지고 부서장의 직무를 수행했던 분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이 그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거나 원칙을 정립하려는 것일 뿐인데, 그런 나를 굳이 구청으로 보내려고 했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과거에는 쩐주인 서울시가 돈만 대고 운영에는 가급적 관여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외부에서는 서울시를 “바지 사장” 쯤으로 얕보지 않았을까? 나는 서울시가 바지 사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 것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시가 비인기종목을 육성하기 위해 직장운동경기부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께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직장운동경기부가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야 할지는 체육인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간섭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고 하는 말은 시의적절한 표현이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직장운동부경기부 역시 적정하게 관리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내가 쩐주인 서울 시민을 대표해서 사필귀정 차원에서 제대로 영(令)도 세워 시민의 혈세로 마련된 130억 원의 예산이 적정하고 투명하게 사용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대해 그리 반발을 심하게 하였던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다.
나도 만약 그 시절에 세속적인 생각과 욕망에 물들어 있어서 3개 체육회의 욕망에 적당하게 짝짜꿍하면서 파트너로 소통했다면 오늘날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답은 명약관화하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의 행태를 어찌 글로 옮길 수 있겠는가!
마무리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예산을 막았기 때문에 전출되었는지는 끝까지 밝히기 어렵겠지만, 내가 공직자로서 지켜야 했던 ‘선’은 명확했다.
공직의 명예는 충성보다, 판단에 대한 책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당시 나는 ‘서울시’의 이름으로, 내 소속이 아닌 전체 행정을 대신해 책임졌다고 생각한다.
쩐주를 얕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외로웠던 만큼, 지금은 이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이, 누군가의 결정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이 글은 글쓴이의 저서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出)의 내용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