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버스 v.s 스킵버스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出, 북랩) 저자
하나는 조용히 자리를 잡았고, 하나는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금세 사라졌다.
정책은 언제나 실험이지만, 그 실험 뒤에는 수많은 선택과 책임이 따른다.
이 글은 내가 직접 기획하고 경험했던 두 가지 정책 실험 –하나는 성공했고, 다른 하나는 실패했던 –
그 교차점에서 얻은 교훈을 기록해두기 위한 것이다.
2008년 당시에도 현재의 ‘약자동행’ 버스를 운영한 사례가 있다. 일명 ‘도깨비 버스’라고 명명했는데,
“시내버스는 서민의 발”과 같다는 말이 있다.
특히 이른 새벽에 3시 반이나 4시쯤에 첫차가 차고지를 출발하는데, 첫차를 주로 이용하는 분들은 도시 빌딩으로 출근해서 회사직원들이 업무를 보기 전에 청소를 마무리해야 하는 청소노동자, 새벽 인력시장에 일자리를 찾아가는 건설일용직근로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른 새벽 첫차에도 불구하고 승객들로 버스 내부는 발디딜 틈이 없는 때도 많은데, 이런 노선을 대상으로 노선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버스노선이 적자 노선이어서(이용 승객이 적은 경우) 부득이하게 노선을 단축하거나 변경하는 경우에, 특히 추운 겨울철에는 찬바람을 받으면서 버스를 갈아타야만 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줄 수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서울의 시내버스는 준공영제로 운영되고있다. 서울의 68개 시내버스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입금과 지출하는 운송비용의 차이 즉, 운송적자분을 서울시가 보전해 주고 있다.
그래서 2008년도만해도 연간 버스가 벌어들이는 수입금이 약 1조원, 지출하는 비용이 약 1조 2-3천억원 정도여서 서울시가 그 차액인 2-3천억원을 시내버스업계에 지원하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시내버스 노선은 버스운행에 따른 운송비용이 수입금보다 더 들어가는 적자노선이었다.
2007년도 당시에 시내버스 1대당 1일 평균 88,455원의 적자를 보이고 있었다.
전체 387개노선 중 흑자노선은 58개 노선으로 약 15%에 불과하였다.
버스노선의 특성상 출퇴근시간대는 승객이 집중되다가, 그 외 시간대는 버스가 텅텅 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일 수 있다.
그래서 승객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운송수지 개선을 위해서는 노선을 단축해서 운행 중인 버스 대수를 감축하거나 승객이 너무 적은 노선은 다른 노선과 통합 운영하는 등의 극약처방이 가해지게 된다.
즉 운행 중인 버스 대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운송수지 개선 방법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버스 서비스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운송수지 개선과 상충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다음은 노선단축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서비스 수준 하락을 최소화하면서 운송수지 개선도 가능했던 “도깨비 버스노선” 탄생 일화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한번은 금천구 시흥2동에서 강남역까지 39.9km(왕복)를 운행(시간 139분)하는 5412번 시내버스에 대해 여건 변경을 이유로 불가피하게 노선을 단축시켜야 했다.
원래 계획은 노선을 단축한 만큼 단축된 노선은 다른 노선을 연결시켜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금천 시흥2동에서 버스를 탄 승객은 강남까지 가기 위해 이제는 중간 정류소인 서울대입구역에서 다른 버스를 갈아타야 해서 불편하게 되었다.
특히나 겨울철 엄동설한 새벽에 이동하시는 분들은 전에는 한 번에 갈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중간에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하니 얼마나 불편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이른 새벽에 강남의 빌딩 숲으로 청소하러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시내버스다 보니 지금 말하는 “약자동행”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선조정팀 직원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씨름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도깨비 버스”였다.
금천구(시흥2동)나 관악구에서 강남역으로 청소하러 가시는 분들이 중간에 내리지 않고 바로 강남까지 가실 수 있도록 새벽 특정 시간대(04:30∼05:30)에는 전체 노선을 운행하고,
그 외 시간대에는 시흥2동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만 단축 운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초 계획했던 운송수지 개선의 효과는 반감되겠지만 어려운 분들이 이용하는 버스노선을 특정 시간대에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이용 불편을 최소화하는 성과가 있었다.
요즘도 가끔 뉴스에서 국무총리 등 고위 관리들이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시내버스 첫차를 타면서 민생탐방을 하는 뉴스를 접할때면, 예전에 내가 시도했던 “도깨비 버스” 신설과 관련된 예전의 기억이 새롭게 나곤 한다.
다음은 내가 버스과장으로 8개월간 일하면서 대표적 탁상행정이라 할 수 있는 스킵버스(skip) 도입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모 방송사 저녁 메인뉴스에 서울시의 스킵버스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스킵버스는 운행거리가 긴 버스노선에서 승객이 적은 정류소들은 건너뛰어 운행함으로써 외곽에서 도심까지, 도심에서 외곽까지의 이동시간을 단축시키고자 한 것으로 마치 “급행버스”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
당시 3개 스킵버스 시범운영 노선: 370번(강동차고지∼은평차고지),9404번 광역(용인하갈동∼신사역), 9709번 광역(맥금동∼서울역)
모든 정류소를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승객이 적은 정류소는 중간 중간 건너뛰고 운행함으로써, 출퇴근시간대 목적지까지의 운행시간을 단축시켜 시민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데 의의가 있었다.
방송에서는 스킵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을 인터뷰까지 하면서 긍정적 반응을 보여줬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던 것이다.
당초 버스중앙차로를 운행하는 장거리노선 중 3∼4개에 대해 시범운영 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8개월 정도 근무하고 다른 부서로 떠난 이후,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선 처리되었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현실 여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명분에 집착한 탁상행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당시 370번 시내버스가 강동차고지에서 은평차고지까지 66.1㎞(왕복)나 되는 거리를 운행하였는데, 기존의 370번 노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출퇴근시간대에 승객이 적게 타고내리는 정류소는 쉬지 않고 건너뛰는 “급행버스” 8300번을 별도로 신설하였다.
이렇게 하면 370번 일반노선이 왕복 218분 걸리는 운행시간을 100분으로 단축할 수 있어, 출퇴근시간대 직장인 등의 버스에 대한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런데 시행 후 문제점이 나타난 것이다.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소에 진입한 시내버스들이 승객 승하차를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경우에, 스킵버스(급행)들이 무정차하여 통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류소를 스킵하려면 정류소 차로 구간이 넓어야 하는데, 보통 중앙버스차로가 버스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게 되어 있어 앞선 버스가 승하차를 위해 정차하는 경우에 뒤따라오는 스킵버스가 추월하여 운행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민망한 실수였다.
사전에 충분한 현장점검 등을 통해 타당성 등을 면밀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말이다.
정책의 명분에 지나치게 심취하게 되면 “정책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되고 정책결정 전에 거쳐야 할 이해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수렴, 현장점검 등을 소홀히 할 수가 있다.
자기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정책화되면 서울시, 전국 최초라는 명예의식 등에 빠져들어 지나치게 오만해질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정책의 ‘부정적 측면’을 더 무겁게 살펴야 한다.
도깨비버스와 스킵버스. 하나는 시민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본 결과였고,
하나는 탁상에서 출발한 명분의 모험이었다.
정책은 늘 실험이지만, 그 실험이 현장에 발을 딛고 있는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내가 몸소 겪었던 이 두 사례가 다음 누군가의 실무에 작은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글쓴이의 저서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