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아들 교룡을 꿈꾸다 2

공무원으로서 나의 과거, 현재, 미래는.....

by 김정선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出)의 저자


나는 농부의 아들이다.

어린 시절, 새벽 들녘에서 시작된 하루는 늘 땀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은 농부의 삶의 기본이었고

그것은 곧 나의 행정철학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공직자이기 이전에, 성실한 농부의 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때부터 농부들의 힘겨운 삶을 보고 자라서인지 몰라도 공직 수행 기간 중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기본 성향이 고지식(옹고집)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고, 임기응변에 서툴며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였다.


원래 농부의 삶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신조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서, 세상을 움직일 만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여 ‘공정성’을 저해하는 등의 공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에 대해 비정상적일 정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나의 한자 이름 ‘正宣’이 뜻하는 대로 “바르게 베푸는” 것에 대해 항상 번민하였다. 세상은 정의로워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였다.


그래서 금수저나 흙수저나 가릴 것 없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적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공정한 사회를 꿈꾼다. 진정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상관없이 그들의 자식들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잠재 능력을 발현할 수 있게끔 필요한 교육을 고르게 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몽골초원.jpg <내몽고에서 *1997년>


그런 이상적인 사회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식들의 학력 수준이 상당 부분 결정되고, 그에 상응하여 사회·경제적인 지위도 결정되며, 따라서 주도적인 자신의 노력만으로 ‘삶의 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차피 세상은 불공정하다.


나의 과거, 현재로부터 미래를 보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 재직 중에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서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백그라운드를 이용하는 것을 무척이나 혐오하고 적대시하였는데, 그로 인해 나의 처지가 상당히 외로운 상황에 놓인 적이 많았었다.


어찌 보면 마음을 편하게 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해서도 나의 행정 철학에 맞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편해했다.


많은 공직자들은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어 현재보다 나은 자리로 옮기거나 더 높은 직위로 승진하는 것을 갈구하기 때문에, 행정 현안이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폭탄 돌리기식으로나 아니면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쉽다.


반면에, 나는 현안이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것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등의 이유로, 공직에서 근무하는 동안 주위 분들과 많은 갈등 관계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내 나름 조직 발전을 위한 “건설적 갈등”을 야기하는 전사라고 자위해 보지만,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나의 리더십을 폄훼하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하고 면밀하게 실태를 분석해야 해서,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해왔던 것에 익숙해져 있던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에너지와 시간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뭔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직면하게 되면 비록 그 사안이 상급자가 시킨 사안이라고 해도 “꼭 해야 하는지” “실행에 옮겼을 때 어떤 문제가 예상되는지”를 꼼꼼히 분석해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최소로 하면서 실행 가능한 제3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부서장으로 재직 중에 추진한 대부분의 일들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관심 사안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인지 몰라도, 나의 양심과 행정 철학에 비춰 크게 어긋난 것은 없었다고 자신한다.


이것은 나의 직위가 서기관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음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직 생활 중에 가장 경계했던 것이 좋지 않은 일로 구설수에 올라 고향 마을 어르신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인식되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일 것이다.


정치행정 일원론과 이원론 간 교차점을 찾아서

나는 행정영역이 정책 결정 및 가치 분배 기능을 수행하는 정치영역과 상호의존적이라는 ‘정치행정일원론’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행정영역 본연의 기능인 효율적 정책집행을 위해 정치영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정치행정이원론’ 입장을 옹호한다.


과거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던, 청계천복원사업이나 서울대중교통체계 개편과 같은 주요 정책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나는 “왜 행정공무원들은 그런 큰 그림(빅 픽쳐)을 제시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는 자주 정치인이 결정한 것을 잘 집행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회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큰 그림(빅 픽쳐)을 그려내고 의제화하여 정책과제로 풀어내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파오마.jpg

사실 그러려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비전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행정공무원들이 하기에는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당장 오늘과 내일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먼 미래를 보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에게는 승진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먼 장래를 보면서 장기 정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당장 실적이 나오는 단기 현안 처리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부채 의식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며

나는 대학 재학 중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80년대의 민주화 투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당시 시위 도중에 데모하다가 경찰에게 걸리게 되면, 공무원 시험 면접에서 탈락된다는 소문 등을 접한 이후로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민주화 요구 시위가 한창이던 시기를 도서관이나 기숙사 공부방에서 주로보냈다.


그 당시에도 내심으로는 현실도피하고 있다는 상당한 수준의 불편한 마음이 있었으나, 시골에서 어렵게 서울로 올라와 공부하고 있는 처지에서 적극적인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선산과 논밭을 팔고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학비를 보태고 있는 처지에서, 잘못되면 나의 미래가 불투명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차마 시위에 참가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민주화 투쟁에 나선 그들과 경쟁심리도 있었다. 나는 당시 시대조류를 바꾸는 일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바꿔놓은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깨끗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말해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시대변환의 격류에 몸을 던지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의 불편함을 어루만졌다.

자기합리화.png

그런 연유로 나는 행정가로서 정책입안과정에 부서장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공정성” “정의로움”의 개념을 포함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대학재학 중에 마음에 담아뒀던 “부채(負債)의식”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리고픈 마음을 줄곧 견지하였다.


정치행정일원론 입장에서 행정가로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단순히 승진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가치있는 일을 남기고 공직을 떠나는 ‘행정가’가 되고 싶은 생각과 집념이 강했다.


깨끗한 물에서도 물고기가 살고 있다

“애야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단다” 이 말은 나의 선친께서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때부터 나에게 가끔 해주신 말씀이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사교적”이지 못한 나의 성격을 두고 답답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판단된다. 당시 시골의 내 또래 친구들은 나와는 달리 다소 ‘껄렁껄렁’하거나 ‘와일드’한 편이어서 순둥이처럼 보이는 아들놈이 좀 더 또래들과 잘 어울렸으면 하는 바람이셨을 것이다.


그런데 철이 들어서 알아보니 1급수에서도 사는 물고기는 있었다. ‘쉬리’, ‘버들치’가 대표적인 1급수 어종이란다.

<쉬리>

나는 가끔 현재의 약간 궁색한 나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선친께서 지어주신 나의 한자 이름 ‘正宣’에서 그 단초를 찾으려고도 하였다. “바르게 베푼다”는 이름 풀이가 나의 인생을 규정지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때론 나의 이름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正”을 보다 다른 한자로 바꾸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좋은 이름에는 “正”과 같은 강한 느낌을 풍기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은 오랜 세월 나와 함께하면서 나를 규정 지은 ‘正宣’을 다른 한자로 변환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부정해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개명하고자 했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똘끼”와 같은 무대포 정신은 힘 있는 자들이 백그라운드를 활용하여 공적 재원을 선점하려고 하는 경우에 “바르지 않다”는 판단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대거리를 하기도 하며 외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끔은 “행정(行政)은 행정(行正)이다”라는 의미로도 해석하였다. 한정된 공적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이 시대 공무원이 책무이어야 한다.

ㅂ버들치.png <버들치>


이러한 나의 생각을 적정하게 표현한 것이 행정을 “올바름을 행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모자란 생각일 수 있겠지만.....


마무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두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공직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엔,

『노기복력 老驥伏櫪, 지재천리 志在千里, 열사모년 烈士暮年, 장심불이 壯心不已』

이 시구가 깊게 아로새겨져 있다.


오래도록 나는 웅크린 교룡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날갯짓을 지켜주는 자리에 있고 싶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서 곧게 서 있으려 한다.


『노기복력(老驥伏櫪) 지재천리(志在千里) 열사모년(烈士暮年) 장심불이(壯心不已)』?

“나이 든 명마는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천리 앞을 바라보고, 기개가 있는 자는 나이를 먹어도 기개를

잃지 않는다” 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조조가 한나라 말엽(서기 207년) 53세에 오환(烏桓)을 정벌하고 20여만 명의 포로를 잡는 큰 전과를 올리고 개선하는 길에 자신의 웅심과 포부를 담은 귀수수(龜雖壽)라는 한시를 지었 는데 거기에 담긴 내용이다.



*이 글은 글쓴이의 저서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出)의 내용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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