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류에 얽힌 호랑이 '낭림'의 이야기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북랩)의 저자
1993년, 북녘의 깊고도 깊은 산, 낭림산맥에서 태어났다.
그 산은 바람이 사납게 불고, 설한풍도 나를 멈추게 할 수 없는 자유의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을 주었던, 산 너머의 수컷이 있었으니까.
그는 북쪽 산맥 너머 백두산 자락에 살던 수컷이었다.
나는 그를 ‘백두’라 불렀다.
백두는 내게 있어 바람이고, 하늘이고,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의 삶에 개입했다.
나는 포획되었고, 평양 중앙동물원의 철창 안에서 낯선 냄새와 언어 속에 몇 해를 지냈다.
그는… 내가 돌아간다고 했는데, 정말이라고 했는데… 기다렸을까?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나를 남쪽으로 보냈다.
“정상회담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김정일이 보낸 ‘평화의 상징’.
인천 연안 부두로 들어온 나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살게 되었다.
이름은 ‘낭림’. 낭림산맥에서 왔기 때문에.
서울의 하늘은 높고 맑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늘 낭림산의 바람결과 백두의 눈빛을 떠올렸다.
아래에서는 사람 아이들이 “호랑이다!” 소리치며 환호했지만,
나는 철창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는 잘 있느냐, 백두야!
눈 오는 날, 너와 함께 걷던 그 능선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사육사들은 내가 너무 조용하다고 했다.
다른 수컷 호랑이들이 오기도 했지만,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백두가 아니었으니까.
2014년, 나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호랑이 평균 수명 15살을 훌쩍 넘긴, 21살의 나이였다.
사람들은 나를 박제로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서울동물원 동물사 안에 서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사진을 찍고,
가끔은 어르신들이 말한다.
“얘가 그때 북쪽에서 왔던 호랑이라더라…”
나는 지금도 백두와 함께 걸었던 눈밭을 꿈꾼다.
언젠가 그 바람결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게 나, 암컷 호랑이 '낭림'이의 마지막 바람이다.
“한반도에서 포획된 마지막 호랑이, 낭림.”
그의 이야기는 단지 동물의 기록이 아니라,
이념과 자연, 인간과 생명의 경계에서 피어난
하나의 전설이다.
이어질 낭림이야기 2편을 기대해 주세요!
P.S.
이 이야기는 1999년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김정일 전 위원장의 특별지시로 남한에 보내졌던 호랑이 “낭림”이 서울동물원에서 15년간 생활하면서, 숫컷 호랑이들의 구애를 거부하며 독신으로 살다가
2014년 스물 한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던 슬픈 사연을 의인화하여 극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