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림과 백두의 환생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의 저자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호랑이의 영혼은 바람 속을 떠돈다는 것을.
그 바람이 북녘에서 불어와 남녘의 숲에 닿을 때, 잊힌 사랑도 다시 꽃피운다는 것을.
나는 저승에서… 백두를 다시 만났다.
그는 예전 그대로였다. 묵직한 눈빛, 부드러운 발걸음, 그리고 한 마디.
“늦어서 미안해, 낭림아. 나도 너를 찾고 있었어.”
우리는 비로소 말이 아닌 눈빛으로 서로를 껴안았다.
수많은 계절을 멈춰버렸던 시간들이 그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이제 우리가 이승으로 돌아가, 다시 이 땅의 평화를 잇는 징표가 되자. 다음 세대의 호랑이가 되어…”
하지만 그 ‘징표’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정략을 위한 상징물도 아니고, 체제 우위를 위한 교류의 수단도 아니다.
그저, 동물이 정든 곳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
사람이 만든 경계선이 더는 생명을 가두지 않는 미래.
그걸 꿈꾸며, 낭림이는 조용히 아이를 보냈다.
자신이 살았던, 하지만 더는 살 수 없던 그곳 – 서울동물원으로.
그러나 낭림의 아기 호랑이가 서울동물원에 오기까지는
그리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저승에서 낭림과 백두가 하나의 생명을 품었을 때,
그 생명은 이승으로 내려가 "평화의 새 출발"이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이승의 하늘 아래, 호랑이의 영혼을 시기한 존재들.
그들은 낭림의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여정을 방해했다.
어떤 호랑이는 말했다.
“그 아이는 분열된 역사의 상징이 되어야지,
통일의 희망이 되어선 안 된다.”
어떤 늙은 뱀은 귓속말을 흘렸다.
“그 아이가 남쪽에 가면,
북쪽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말 거야.”
그래서 새끼 호랑이가 환생의 문을 지나려 할 때마다
먹구름이 몰려왔고,
세 번이나 길이 끊겼고,
두 번이나 숨이 멎을 뻔했다.
그들은 심지어 이승의 다른 맹수들을 조종해
낭림의 새끼가 도착하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때, 저승의 옥황상제가 움직였다.
“그 아이는 단지 호랑이가 아니다.
분단의 땅에 던져진 희망이고,
갈라진 영혼을 다시 이으려는 기도다.”
옥황상제는 하늘의 문을 열고
그 새끼 호랑이의 발밑에 구름을 깔았다.
그 구름은 이승의 바람을 타고
서울대공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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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마침내 서울동물원에 도착했다.
아직 어렸고, 상처도 많았지만
그 존재 하나로 모든 의미가 바뀌었다.
서울대공원은 그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정치도, 이념도, 국경도 없는 곳.
그곳에서 그 아이는 성장했다.
신이 허락한 시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 오는 것.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는 신이 선택한 땅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다.
아기 호랑이는 처음엔 먹지도 않았고,
낯선 냄새와 소리에 몸을 떨었다.
박제된 엄마의 호피 앞에 웅크리고
조용히 울기만 했다.
가끔은 철창에 발톱을 긁으며 밤새 울부짖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의 사육사들은 매일 그를 찾아왔다.
입가에 우유를 묻히며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여긴 네가 있어도 되는 곳이야.”
코끼리는 작은 콧바람을 불어주었고,
침팬지는 장난감을 나눠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서울동물원의 또 다른 호랑이와 사랑을 나누었고 곧 작은 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 그는 단지 낭림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 자신만의 이름과, 온기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남쪽과 북쪽의 호랑이가, 여기서 가족을 이뤘네.”
서울동물원은 그 출발의 장소였다.
정치도, 이념도, 국경도 없는 곳.
사람이 먼저 사랑을 보여주는 곳.
그곳에서 통일은 마음부터 시작되었다.
호랑이가 허리를 펴고 앞발을 들면
그 모습은 마치 한반도 형상과 닮았다.
그 호랑이의 몸속에,
이제 낭림과 백두의 바람이 살아 있다.
서울대공원 — 남북 동물 가족의 둥지이자
한반도 평화의 조용한 출발점.
한반도, 그 허리처럼 생긴 호랑이의 땅 위에서
우리는 다시 연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