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은 '추억의 복원소'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의 저자
기억의 시작, 창경원에서 서울대공원까지
아주 오래전, 내가 매우 어렸던 시절.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기차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들판과 마을들,
그 모든 풍경이 어린 내게는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그날 도착한 곳은 창경원.
지금은 동물원이 아닌 궁궐로 복원된 그곳이지만,
당시엔 동물과 식물, 연못과 보트가 함께 있던 종합 공원이었다.
아버지는 내 작은 손을 꼭 잡고 사자, 곰, 원숭이를 보여주셨다.
눈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동물들을 보며 깔깔거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다 연못에서 보트를 탔는데,
그 보트가 흔들리면서 불안한 마음에 나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아주 어렸을때의 기억이지만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도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빠가 있으니까.”
그날의 기억은 내게 있어 동물원의 첫 장면이자, 아버지와의 첫 모험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누군가와 함께 본 동물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관계의 기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창경원 동물원에서의 기억이 이어지는 서울대공원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가끔 과거 아버지와의 창경원 시절을 떠올리면서,
나의 소중한 첫째 아이와 함께했던 서울대공원의 회상에 빠지곤 한다.
20여년전, 그 아이는 기린을 보고 놀라워 했으며, 낙타를 타고 무서워했고,
뱀을 목에 두르고 사진을 찍으면서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 동물원은 변했지만,
'가족과 함께한 기억'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서울대공원은 내게 창경원의 연장이자, 또 다른 출발점이다.
아버지에게 받았던 따뜻한 기억을
이젠 내가 아이에게, 그리고 서울대공원의 미래 세대에게 조용히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서울대공원은 단순한 동물원이 아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이곳은 ‘기억의 앨범’이자 ‘추억의 복원소’다.
1999년 무렵,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시골에서 아버지 친구분들 네 분이 서울로 올라오셨고, 나는 자연스럽게 서울대공원으로 그분들을 모셨다.
그 시절, 어른들이 서울에 오시면 ‘의례적으로 방문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우리는 함께 돌고래쇼를 관람했다.
물 위로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의 모습에 박수를 치고 탄성을 내뱉던 어르신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 서울대공원은 우리 가족의 단골 장소가 되었다.
2006년 첫째 아이가 태어난 뒤, 아직 아기였던 아이를 품에 안고 원시조각상 앞에서 찍은 사진.
2009년엔 낙타를 타보겠다고 용감하게 도전했던 아이와, 거대한 호랑이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 무렵만 해도 기린이 여섯 마리였던 대공원엔 지금은 두 마리만이 남았다.
잊을 수 없는 장면도 있다.
동양관(파충류관) 앞에서 아이가 노란 뱀을 몸에 두르고 사진을 찍던 날이다.
처음엔 겁을 내던 아이가 사육사분의 격려에 힘입어 ,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뱀을 목에 두르고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 나는, 그 어린 존재가 세상과 마주하는 용기를 배워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때 그 장면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성장의 장면이었다.
마치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병아리의 몸짓이라 할까.....
어느덧 아이는 자라 청년이 되었고, 나는 공직 생활의 마지막 단계를 향해 가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많이 변했다. 동물복지와 교육 중심의 운영으로 방향을 틀었고,
놀이 중심의 공간에서 생태와 공존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서울대공원은 여전히 세대와 시간을 잇는 공간이다.
과거를 떠올리고, 오늘을 음미하며, 내일을 그릴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서울대공원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 그 옛날에는 동물원만해도 연간 3~4백만 명이 방문하던 곳.
지금도 매년 17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이곳에서,
나처럼 추억을 소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그들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겹쳐지는 곳, 그곳이 바로 서울대공원이다.
이제 나는 서울대공원의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더 보태고 싶다.
나의 작은 기억들이, 이 공원을 찾는 또 다른 가족들의 행복한 장면으로 이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