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아니라 행동의 문제다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 저자
공정하지 않은 채용, 평등하지 않은 벌칙.
그 속에서 “시민의 눈높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불법주차 단속과 채용청탁이라는 작지만 실감나는 사례에서 시작해,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 평등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성찰해 본 기록이다.
내가 예전에 교통지도과장으로 4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불법주차로 단속된 시민들이 단속을 무효화시키고자 지역 시의원 등을 통해 청탁을 하던 상황을 많이 경험 하였다.
물론 서울 전역의 불법주차 단속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그런 청탁을 불허하도록 직원들에게 강조하였고, 관행적으로 성행하던 ‘단속스티커 빼주기’ 같은 그런 관행은 사라졌다.
물론, 김영란법에 따라 위와 같은 청탁은 처벌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접하면서 그런 청탁을 하는 시민들의 심리가 궁금해졌다.
과태료를 납부할 돈이 없어서? 아니면 그 돈이 아까워서 유력자에게 청탁을 넣어 단속스티커를 빼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이해했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단순히 돈과 관련된 이유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불법주차단속 과태료는 일반 승용차는 건당 4만 원인데, 고지서 발부 전 의견진술기간에 미리 납부하면 20% 할인된 3만 2천 원을 납부하면 된다. 물론 하루 장사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에게는 꽤나 큰 금액일 수 있지만, 멋진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분들에게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겉보기에 멀쑥하게 차려입고 꽤나 지위가 있어 보이는 분들도 나에게 전화로 스티커 딱지를 빼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꽤나 있었는데, 그분들이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추론할 수 있다.
첫째, “내가 누군데” 형인데, 이는 주차단속 스티커를 빼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 행정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픈 심리로부터 출발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둘째, “감히 나를 단속해” 형으로, 일반적으로 주차단속에 걸리는 사람들은 힘없는 일반 서민들인데, 세금도 많이 납부하고 사회 기여도 많이 하는 유력자까지 단속을 하는 것에 대해 순간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는 유형이다.
그래서 단속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생각에서 돈은 얼마든지 들더라도 단속을 무효화 하려고 시의원 등이나 유력자들에게 의뢰하는 것이다.
위 두 사례의 경우에 4만 원짜리 과태료 스티커를 빼내기 위해 주위 유력자들에게 두세 배 이상의 금전 지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임은 자명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위반행위라 할지라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에 대한 계층별 생각이 공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정”과 “평등”의 개념이 과태료금액 수준 결정에도 반영되어야 할 것 같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질서위반 과태료금액 수준이 위반 대상자의 소득수준 등에 따라 차등 부과되고 있다 한다. 상류계층과 일반 시민과의 과태료 수준이 소득수준 등에 따라 다르게 결정된다면, 법과 제도에 대한 다수 시민의 공감이 더 강해지고 사회응집력도 높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다.
상류층은 보다 강화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일반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질서유지 위반사항이라도 보다 더 강한 법적, 사회적 규제가 따라야 한다.
4만 원 수준의 주차단속 과태료 금액은 “없는 사람”들에게는 큰 돈이 될 수 있지만,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하찮은 금액일 수 있다. 따라서 위반자가 수용할 만한 수준의 과태료 수준이 되기 위해 소득수준 등을 고려한 과태료 수준으로 대상별로 차등 부과하는 것을 제안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민의 4대 의무의 하나인 납세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물론 공정과세라는 기본 정신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들은 공정과세의 이념이 제대로 적용된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상류층들은 일반 서민보다는 많은 세금을 납부한다. 대신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편익은 납부한 세액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여 정보와 인맥의 공유를 통해 교육, 취업,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법과 제도가 인정한 틀 안에서 자본과 부, 계층, 명망의 합법적 대물림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한국 사회가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디지털고도화사회가 진전될수록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계층 간 심화된 갈등의 정도를 완화하면서 사회구성원 간에 공존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진 계층이 앞장서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자본” 총량을 증가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다 많이 가진 계층들의 부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이를 억제할 장치(예: 상류층에 대한 상속세 강화)를 마련하여야 하고, 행정벌적인 성격의 과태료 금액 수준도 소득수준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몇몇 행정질서벌이나 행정형벌상 부과하는 과태료를 대상으로 시범운영 후 효과나 문제점 등을 평가하면서 점차 확대 시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요즘은 국민 개개인의 소득수준 및 재산 보유현황을 전산시스템으로 쉽게 알 수 있어 시범운영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통지도과장에 4년간 근무하면서, 매년 단속 공무원 선발과정에 외부로부터 채용청탁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공정한 인사 선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당시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선으로 채용청탁을 의뢰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나는 일체 이런 청탁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교통지도과장으로 일하면서 얼마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다고 자신의 양심을 팔아가면서 청탁을 들어준단 말인가! 내가 4년 동안 역점을 두었던 것이 “시민들로부터 박수받는 공정한 단속 시행”이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 수단으로 단속체계고도화가 필요했고,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 역량 있는 단속인력 충원이었다. 단속현장은 사명감과 소양(실력)이 없으면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심야 시간대 택시 승차거부 단속이나 상습적인 불법주차현장에서의 주차단속은 시민들께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신체적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심한 욕설 등이 난무하는 무질서의 현장에서, 단속 공무원들은 업무적 전문성과 인내심으로 무장하여야 교통법규 위반자들에 대해 필요하고도 적정한 단속을 할 수 있다. 그들은 강한 멘탈과 육체적 건강을 보유해야 한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자리에 맞는 사람이 선발되어 책임감 있게 일하게끔 사회시스템이 짜여 있어야 진정「공정한 사회」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출생 극복방안 중 청년들의 취업 관련 좌절감을 없애주기 위해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이 공공부문 민간부문 할 것 없이 담보되어야 한다.
또한 막대한 시민의 세금이 투여되는 국가나 지자체 산하 공기업 등이 공공성과 효율성을 겸비한 경영 조직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이)사장·상임감사 등 주요 직위를 대통령이나 지자체 장 당선에 도움을 줬던 정치인들에게 보은인사 차원에서 나눠주는 구습을 폐지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라고 하면 기관장 선발과정도 그 기관의 특성에 맞는 전문경영인이 맡아야 하는 게 아닌가! 선거에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해당 기관 업무와 하등 관계없는 정치인이 기관장으로 선발되는 엽관제가 적용된다는 것은, 디지털고도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맞지 않은 제도라 생각한다.
공기업은 공공성과 효율성을 겸비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한 특정 정치세력이 “승자독식” (The Winner Takes It All) 하는 틀이 먼저 바뀌어야 하겠다.
공기업 등의 사장 인사부터 책임감과 전문성을 겸비한 전문경영인으로 채용하면, 신규직원 채용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공정성과 투명성은 확보된다.
일개 서울시 교통지도과장도 공정하고 투명한 단속인력 채용을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한국 사회의 최고위 지도자(리더)들은 더 큰 틀에서 자신들의 손아귀에 놓여있는 ‘떡’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감히 제안해 본다.
공정은 시스템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신념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는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읍니다*